[박근태의 '자동차와 사회']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제품 수준에서 산업 전환의 핵심은 지배 디자인의 교체이다. 포드의 모델T 등장 이후 약 1백 년 간 자동차의 지배자는 내연기관차였지만, 새로운 지배자는 전기자동차이면서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 SDV)’가 될 것이다.
새로운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는 테슬라의 모델S는 최초의 전기자동차도, 최고의 전기자동차도 아니지만 최초의 SDV라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테슬라 자동차들의 핵심 경쟁력은 전기자동차로서의 성능이 아니라 SDV로서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전기자동차와 내연기관차의 핵심 차이는 사용 에너지와 동력원이라는 점이 명확하고, 전기자동차가 이미 상당 수준 보급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전기자동차는 생소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SDV는 그 이름도 생소하고 개념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기자동차의 성공은 결국 내연기관차와의 가격 동등성, 즉 원가 인하에 달려 있지만, SDV는 자동차의 정체성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자동차업체에게는 더 힘겨운 과제이다. 이는 단순히 제품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 제조업체,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심지어 주변 산업의 사업 모델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자동차산업의 핵심 화두인 SDV에 대해 살펴보자.
SDV라는 낯선 이름
우리에게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라는 개념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래서 일부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 순화(?)하기도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개념의 핵심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현상, 새로운 개념이 어색하고 낯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익숙한 표현으로 바꿀 게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표현에 익숙해지는 게 옳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는 말 그대로 자동차의 가치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의해 '정의'되는 자동차이다. 즉 자동차의 본질이 변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의해 자동차의 가치가 창출된다는 의미를 담은 개념이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이동 수단이었으며, 이동 수단으로서 자동차의 가치는 “잘 달리고(주행), 잘 돌고(선회), 잘 서는 것(정지)”과 같은 기본 기능에 의해 결정되었다. '주행'은 엔진 출력, 정숙성, 승차감 향상, ‘선회'는 조향 안정성 향상, '정지'는 제동 성능 향상 등이 중요했고, 이런 기능들은 대부분 기계적인 하드웨어에 의해 실현되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는 지금까지의 자동차와 달리 그 기능이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정의/결정되는 차량이다. 따라서 하드웨어를 교체/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교체/개선하여 성능/기능을 개선/추가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이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자동차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이고,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다.
왜 SDV?
1.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부응
왜 전통적인 자동차와 정체성이 다른 SDV가 부상하고 있을까?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 둘째, 자동차의 진화 결과, 셋째, 자동차 회사의 사업상 필요. 먼저,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이다.
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이동 경험의 만족이 중요해지면서, 자동차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게다가 기본 특성 자체가 내연기관 엔진에 비해 이동체의 동력 기관으로 더 적합한 전동 모터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전기자동차가 확산되면서 자동차의 동력 성능이 상향평준화되었고, 핵심 경쟁력으로서 엔진 기술의 중요성이 퇴색하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테슬라가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는 자동차,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하드웨어 우수성에서 차별화된 기능과 서비스, 운전자 경험, 그리고 이의 지속적인 개선으로 변하고 있다.
공장에서 출고된 후에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실상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기존 ‘하드웨어 정의 자동차’로는 이런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로 이용자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와 경험, 가치를 제공할 수 있고, 차량의 수명 주기 내내 이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SDV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차와 달리 SDV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는 실재하며, 이후 증가할 것이고, SDV 전환에 실패한 업체는 생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 자동차의 진화 결과1)
지난 수 십 년 동안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 사용이 확대되어 왔다. 첫 번째 시기는 1980년대에 시작된 내장(embedded) 소프트웨어 시대로 199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초기의 전자제어장치(ECU)는 최소한의 프로그램 코드로 제한된 기능을 제공했고, 운영 체제 없이 간단한 제어 프로그램만 필요했다.
두 번째 시기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시대로 2000년대 초반 인포테인먼트 및 텔레매틱스 시스템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운영 체제(OS)가 필요했고, 이는 '미들웨어'를 가져왔으며 결국 어떤 OS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마지막 시기는 SDV 시대이다. 2010년 이후 커넥티드 카의 점유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스마트폰이 확산되어 자동차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연결되면서 연결성과 그에 따른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연결성에는 OTA(Over-The-Air: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사이버 보안이 필요하며, 이로 인해 클라우드 및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문이 열렸고, 이는 2020년 이후 중요해졌다. 2020년 차량 1대 당 소프트웨어 코드가 전투기의 4배에 해당하는 1억 줄에 육박했고, 인포테인먼트, 통신 및 관련 ECU가 소프트웨어 코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소프트웨어 중심 아키텍처, 클라우드 및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무선 연결, 사이버 보안이 포함된 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SDV 시대가 열리고 있다.
1) 이 부분은 Egil Juliussen(2022), “Software-Defined Vehicles: Impact on ADAS and AVs”의 일부를 요약한 것임.
3. 자동차 회사의 사업상 필요
우선, 판매량 감소와 대당 영업이익의 감소로 판매 수익이 감소하면,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판매 이후에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스마트폰처럼 자동차 소유자가 연결성 및 차량 내 구독 기반 서비스와 같은 추가 기능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면 자동차 회사는 판매 이후에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SDV로 차량 수명 주기 동안 더 나은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게 된다.
다음으로, 차량을 통해 사용자와 차량 운행 관련 정보를 수집하면, 자동차 회사는 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사용자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자사 자동차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활용해 자동차보험 사업을 직접 하며, 국내 자동차 보험사들은 커넥티드 서비스 가입 정보를 활용한다.
셋째, 전기차와 같은 미래차의 등장으로 제품 원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표준화와 더 간단하고 관리하기 쉬운 아키텍처 모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이것이 SDV로 진화하는 차량 전기/전자 아키텍처의 기반이 된다.
넷째, 이렇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하고, 중앙 집중식 아키텍처로 전환하면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하드웨어를 유지하면서 소프트웨어를 더 자주 업데이트할 수 있다. SDV를 통해 자동차 회사가 R&D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SDV의 핵심 요건
1.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
하드웨어 교체 없이 기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서 다양한 기능을 개선해야 하므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는 SDV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개념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란 하드웨어를 추상화하는 계층을 도입하여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체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아래 그림1 참조).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의 핵심 개념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기/전자 아키텍처 및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그림1)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

2. 중앙집중형 전기/전자 아키텍처
전기/전자 아키텍처란 전자적 제어에 필요한 컴퓨팅 하드웨어와 전원/통신용 배선 등 물리적 요소들의 설계 구조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각 부품별 ECU가 기능을 통제하는 분산형 아키텍처였으나, 현재는 차량 시스템이 첨단운전자지원(ADAS), 차체 및 섀시, 에너지 및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와 같은 기능 영역별로 그룹화되고, 각 영역 ECU가 기능을 통제하는 도메인(domain)형 아키텍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연산량이 많은 소프트웨어 구동, 이를 위한 고성능 컴퓨터 자원의 효율적 활용, 단일화된 제어 등을 위해 중앙집중형 아키텍처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집중형 아키텍처에서는 차량 시스템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구역(zone)별로 그룹화되고, 중앙컴퓨터가 전체 기능을 통제한다.
그림2) 자동차 전기/전자 아키텍처의 진화

기존 분산 아키텍처에서는 모든 ECU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메커니즘을 통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늘날 잘 갖춰진 자동차에는 파워 스티어링, 에어백 작동, 도어 잠금 등 각각 특정 목적을 가진 약 100개의 서로 다른 ECU가 있다. 90~100개의 서로 다른 ECU를 관리하면서 한 개를 업데이트해도 다른 ECU와 계속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각 ECU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기존 구조에서는 나중에 소프트웨어를 추가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따라서 설치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OTA 업데이트를 구현하고 추후 소프트웨어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ECU를 소수의 고성능 ECU로 통합하고 각각에 업데이트 기능을 탑재해야 한다. 중앙집중형 아키텍처가 필요한 것이다.
SDV라는 생존 시험
전환기에는 새로운 현상과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지름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미래 자동차의 지배자가 될 SDV에 대해 살펴보았다.
SDV는 자동차 회사가 소프트웨어로 가치를 창출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할 것으로, 따라서 계속 생존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진정한 시험대는 고객이 궁극적으로 SDV에서 의미있는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엉따(시트 열선)’ 기능의 구독 서비스(BMW)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완성사들이 SDV 구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SDV는 완성사만 생존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완성사가 각 기능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제품을 공급업체에 주문하고 납품받았지만, SDV 시대에는 하드웨어만 납품 받고 소프트웨어는 완성사가 직접 개발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되면 부품사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 대폭 줄어든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산업 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 박근태는 ‘전기자동차가 다시 왔다?!’의 저자다. 20년 넘게 자동차회사 연구소에서 자동차 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로봇 태권 V’보다 노동조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대자동차노동조합 남양본부장,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노사관계학(석사)과 경영학(박사)을 공부했고, 독립연구자로 자동차산업과 노동, 노사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