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계의 걸 크러쉬 아이콘, 샤를로트 페리앙 #1

그 시절에 어떻게 저런 가구를 만들었을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말할 수 밖에 없었떤 강철관 소파와 테이블. 거기다 이 디자인 걸작을 탄생시킨 이들이 여성이었다고? 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 혁명같았떤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20세기 디자인이 한눈에 잡힌다.
아일린 그레이(좌) 샤를로트 페리앙(우) @ALLETS

20세기 초반 디자인과 건축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두 명의 여성 선구자가 있었으니 바로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였지만 남성 중심의 풍토 속에서 꿋꿋한 행보로 빛나는 업적을 남긴 두 사람. 25년의 연령 차이가 나기에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교차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태생적 환경과 성격 작업 방식 활동 당시의 평가 그리고 건축&디자인계 거물 르 코르뷔지에와의 인연(또는 악연). 많은 점에서 달랐으나 공통점 역시 확실했던 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인생을 소개한다.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의 실천가
페리앙은 10년간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Archives Charlotte Perriand
샤를로트 페리앙의 가구가 놓인 장면. 카시나에서 복각해 선보이는 가구들 @Cassina

샤를로트 페리앙은 19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1999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아일린그레이 못지않게 장수한 셈이다.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던 그레이와 달리 재단사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생활의 냄새를 일상적으로 맡으며 컸다. 그래도 외동딸로서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던 그녀는 1925년 장식미술중앙연합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직접 ‘셰이즈 롱’의 모델이 되기도 한 페리앙 @Archives Charlotte Perriand
페리앙은 누구나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뉴욕현대미술관에 공간 모델링이 전시되어 있다 @MoMA

명망 있는 살롱전에 초청받아 24세의 나이에 주목받은 그녀는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에 합류해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 일을 맡았고 모던 디자인의 역사를 장식한 ‘LC’ 시리즈 등을 남겼다. 자신이 유일한 클라이언트였던 아일린 그레이의 여유로운 빌라와 달리 페리앙은 누구에게나 공급 가능한 조립식 보금자리를 설계하는 등 진보적인 활동에 앞장섰다. 효율성과 기능에만 주목했던 모던 디자인에 대한 비판을 딛고 수공예 기법과 소재를 도입했으며 파블로 피카소 알렉산더 칼더 페르낭 레제 등 근대미술 거장들과 협업한 작업들도 높이 평가받았다. 디자인과 건축은 물론 도시 계획 순수 미술 크래프트 큐레이팅을 넘나들며 활동했던 페리앙은 그야말로 ‘새로운 생활 예술(Art de Vivre)’를 제시하고 실천한 선구자로 남았다.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 멤버들과 함께한 페리앙 @Archives Charlotte Perriand
‘다이닝 룸 28’을 위한 작업(1929) @F.L.C./ADAGP, Paris

아일린 그레이와 달리 르 코르뷔지에와의 인연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졌다. 살롱전 후 무작정 그의 사무실을 찾아간 페리앙은 처음에는 문전박대 당했다. 이미 기혼자였지만 미모와 재능에 자부심이 가득했던 그녀는 꽤나 분해했다고 전해진다(성격도 아일린 그레이와 딴판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르 코르뷔지에는 직접 전시를 둘러본 후 페리앙을 채용했다. 건축은 최첨단이지만 가구는 진부하다고 평가받던 르 코르뷔지에 사무소 입장에서 필연적 선택 아니었을까. 아무튼 지금 20세기 클래식 디자인의 대표인 ‘LC’ 시리즈에는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의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가 있으나 실질적인 디자이너는 샤를로트 페리앙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린 그레이의 재능을 시기해 찌질한(?) 연막전까지 펼친 르 코르뷔지에였지만 딸뻘 나이에 천진하면서도 선봉적인 면모를 보여준 페리앙과는 10년을 동료로 지냈다.

출처 : Cassina

르 코르뷔지에의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페리앙의 작품인 ‘LC’ 시리즈 중 스티브 잡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1인용 소파 ‘LC3’.

출처 : Cassina

크롬 프레임에 둥근 좌석과 허리 받침을 가미한 ‘LC7 스몰 암체어’. 1927년 페리앙의 아파트에 처음 놓인 의자로 1965년에 처음으로 대량 생산되었다.

출신 배경과 개인적 삶도 달랐고(그레이는 비혼에 양성애자였고 페리앙은 두 번 결혼했다) 활동 영역이나 생전의 평가도 달랐던 두 사람이지만 확실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어떤 남성 크리에이터보다 총체적 디자인의 완성(즉 소품과 공간과 라이프스타일까지 조화를 이룬 삶)을 지향했고 앞서 실천한 선구자였다는 사실. 우리가 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이름을 꼭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EDITOR 정성진(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