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왕즈이 6연승 벽 1년 만에 허물었다…안세영 결승 상대 바뀐 이유

세계 2위 왕즈이(중국)가 싱가포르오픈 준결승에서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세계 3위)에게 게임스코어 1-2로 패배하며 4강에서 탈락했다. 대회 전까지 왕즈이가 야마구치를 상대로 통산 9승 6패이자 2023년 4월 이후 6연승을 달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예상 밖의 결과다. 이 패배로 올 시즌 여자 단식 결승을 독식해온 안세영(한국·세계 1위)·왕즈이 양강 구도에 균열이 생겼고, 결승 시나리오 자체가 전면 교체됐다. 야마구치가 또 다른 준결승을 통과한 안세영과 결승에서 맞붙게 되면서, 이번 싱가포르오픈은 단순한 주간 투어를 넘어 2026 시즌 여자 단식 판세를 가늠하는 분기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왕즈이는 2025년 초부터 세계 2위 자리를 1년 넘게 지키며 안세영의 가장 근접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했다. 올 시즌만 해도 두 선수는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전영오픈, 아시아선수권, 우버컵 등 굵직한 무대에서 연이어 결승에서 충돌했다. 대부분의 결과는 안세영의 승리였지만, 전영오픈에서는 왕즈이가 역전으로 안세영의 공식전 36연승을 끊어내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 시기 왕즈이의 안세영 상대 전적은 통산 5승 20패 수준이었으나, 최소 한 번의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 배드민턴 팬들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야마구치는 202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커리어 최고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부상으로 2026년 초 국제 대회 출전을 잠시 접었다. 그 사이 세계 3위 자리를 천위페이(중국)에게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BWF 월드투어 태국오픈(슈퍼500)에서 우승하며 복귀 후 빠른 궤도 재진입을 알렸고, 3위 랭킹도 회복했다. 야마구치 입장에서 왕즈이는 2023년 4월 이후 단 한 번도 넘지 못한 벽이었다. 올해 세 차례 맞대결에서도 모두 졌다. 그 배경에는 171cm 장신의 왕즈이가 구사하는 강한 스매시와 코트를 폭넓게 활용하는 랠리 전술이 156cm 단신의 야마구치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해온 점이 있다. 이번 경기는 그 구조적 불리함을 야마구치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30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준결승은 21-13, 17-21, 15-21의 최종 스코어로 야마구치의 승리로 끝났다.

1게임은 야마구치의 압도였다. 3-3 동점 이후 야마구치가 9점을 내리 따내며 12-3까지 달아났다. 왕즈이 특유의 정교한 컨트롤 배드민턴은 이 구간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최근 태국오픈 우승으로 끌어올린 자신감이 그대로 경기 운영에 반영된 야마구치는 1게임을 21-13으로 마무리했다.

2게임에서는 왕즈이가 저력을 발휘했다. 인터벌까지 리드를 허용했지만 13-13 동점 이후 흐름을 가져오며 역전에 성공했다. 17-15 상황에서는 40회 이상 이어진 장기 랠리를 따내는 등 집중력을 발휘해 21-17로 게임 스코어를 1-1로 맞췄다. 앞선 두 차례 야마구치와의 맞대결에서도 1게임을 내준 뒤 역전승을 거뒀다는 경험치가 작동했다.

그러나 3게임에서 왕즈이가 흔들렸다. 야마구치가 12-7까지 벌였고, 왕즈이가 12-12 동점을 만들며 한 번 더 뒤집기를 시도했으나 이후 야마구치는 상대의 서브 실수를 포함한 범실을 유도하며 흐름을 내주지 않았다. 최종 21-15. 2게임에서 체력적으로 한계를 보이는 듯했던 야마구치가 3게임에서 오히려 더 탄탄한 수비와 정교한 코스 배치를 보여줬다는 점이 이 경기의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다. 왕즈이의 연속 역전 드라마는 이번에 쓰이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숫자는 '6'이다. 왕즈이가 야마구치를 상대로 이어온 연승 행진이 6에서 멈췄다는 것, 그리고 그 종지부가 찍힌 시점이 태국오픈 우승 직후 2주라는 사실이다. 야마구치는 복귀 이후 체력과 자신감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렸고, 그 최고치가 이번 싱가포르오픈 준결승에서 발현됐다. 단순한 '컨디션 좋은 날'이 아니라 복귀 이후 시즌 운영 자체가 이 경기를 향해 쌓여온 구조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왕즈이 입장에서는 2게임의 역전이 오히려 독이 됐을 수 있다. 40회 이상의 장기 랠리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체력이 소모됐고, 3게임 초반 왕즈이가 먼저 주도권을 내준 것은 그 연장선에 있다. 왕즈이는 2게임에서 역전 우위를 점했지만 야마구치의 체력 소진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채 3게임에 돌입했다. 반면 야마구치는 3게임에서 더 안정된 움직임을 보였다. 수비 배드민턴으로 상대를 소모시키는 스타일이 오히려 장기전에서 왕즈이의 공세를 역이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셈이다.

안세영과 야마구치의 맞대결 전적은 현재 17승 15패로 안세영이 앞서 있다. 숫자만 보면 안세영이 유리하지만, 이 전적 자체가 두 선수 간의 경기가 얼마나 균형 잡힌 승부를 반복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게다가 야마구치는 현재 '올라오는 중'이고, 안세영은 안정적인 시즌을 이어오고 있다. 야마구치가 태국오픈에 이어 연속 대회 결승까지 진출한 흐름은 단발성 반등이 아닐 수 있다.

왕즈이 입장에서는 이번 패배가 올 시즌 안세영과의 결승 재대결 기회를 한 번 더 날려버렸다는 점에서 순위 경쟁에도 영향을 미친다. BWF 월드투어 포인트 구조상 준결승 탈락과 결승 진출의 차이는 단순 순위 변동을 넘어 시즌 후반 시드 배치까지 연결된다.

야마구치가 1년 만에 왕즈이를 꺾고 슈퍼750 결승 무대에 섰다. 안세영과의 역대 전적은 15승 17패, 안세영이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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