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경쟁하지 않을 자유
며칠 전,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말이 갑작스럽게 주목받았다. 두 달 전 이탈리아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이었는데, 한국의 경쟁 교육이 지옥 같았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내용이었다. 임윤찬은 “한국이 경쟁이 치열해 모두가 최고가 되려고 애쓰고, 때로는 이를 위해 남을 해치기도 한다. 그 현실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고 표현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대한민국의 지나친 경쟁 교육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시험과 평가라는 끝없이 반복되는 지난한 시간을 견딘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윤찬과 같은 예술가라면, 그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에 한국의 교육 현장은 정말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사 제목은 대부분 ‘폭탄 고백’이라고 했다.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말이다. ‘입시 지옥’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쓰여 왔고,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경쟁 교육의 문제점을 공공연히 비판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이 말이 폭탄 고백일까.
어쩌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경쟁 교육이 몇십 년째 해결되지 못한 채 더 심각한 문제로 곯아가고 있고, 청소년들이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허다하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우리는 애써 감추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감출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니, 감춰도 되는 문제인가? 생명이 걸린 일이다. 죽고 싶었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임윤찬 한 명이 아니라, 수천수만 명이다. 질병관리청과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중 최근 1년 이내에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무려 12.7%다. 모든 경우가 학업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직 시험 성적만을 위한 공부 기계로 길러지는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고통을 이겨내고 생의 의지를 갖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은 경쟁 교육 시스템이다.
어쩌면 임윤찬처럼 경쟁 교육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고, 그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어떤 방법으로든 치유하고자 노력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만난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이 그런 상처를 받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부모님이 원하니까, 다른 길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뿐이다.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무기력하다. 학교와 학원, 도서관과 독서실을 준비된 차에 실려서 옮겨지는, 아무 감정 없는 물건 같이 보인다. 그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것은, 그렇게라도 자신에게 자극을 주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잔인한 경쟁 교육으로 상처받은 자신에게 스스로 생채기까지 내가는 아이들을 이제는 감추지 않아야 한다. 이 교육이 지옥이라는 말이 ‘폭탄 고백’이 아니라, 진짜 폭탄 같은 이 입시 경쟁 교육을 멈추자고 더 많은 사람이 말해야 한다. 경쟁이 우리를 뛰어나게 만들었다는 착각과 환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지난 9월 25일, 광안리 바다에서 어린이 대상 친환경 예술 축제가 진행됐다.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이 그린 커다란 돌고래 깃발이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어린이들은 그 곁에서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라는 가사의 ‘바람의 빛깔’ 노래였다. 맑은 가을 하늘과 푸른 바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그 바람에 힘차게 헤엄치는 돌고래들, 그 앞에서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어린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자신의 남은 생을 기꺼이 다 줄 수 있는 어른 윤호섭의 모습이 찬란하게 빛났다.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부디 참여한 어린이들의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자리잡아서, 힘든 순간마다 일으켜 세워줄 힘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임윤찬이 연주하며 음악 속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해 살아남았듯, 모든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삶의 순간을 발견할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아이들에게는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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