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초상화는 하나의 속보…한강 긴머리-특유의 미소 담으려 노력”
‘속보’ 느낌 나는 초상화 그리고자 ‘금색’ 사용
역사 창조한 사람 업적을 알리는데 기여해 자긍심
초상화 끝내고 ‘채식주의자’ 읽기 시작했어요
한국인 최초로 소설가 한강(54)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노벨위원회 홈페이지에 선정소식과 함께 공개된 한강의 초상화를 그린 스웨덴 화가 니클라스 엘메헤드(47)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노란 황금빛이 감도는 얼굴, 알 듯 말 듯 은은한 미소 등이 한강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15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엘메헤드 작가는 초상화를 그리며 이같은 점들을 신경썼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2년 노벨위원회의 예술 감독으로 임명된 이후 매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세계의 관심을 받고, 또 역사에 오랜 기간 남는 의미 있는 사건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수상자들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세상에 알리고, 이들이 써내려가는 역사의 작은 부분에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 때문에 작업할 때 온몸의 집중력을 쏟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고 즐거움도 느끼며 작업하고 있다.”
―수상자를 그려낼 때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나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을지? 평화상, 문화상 등 수상 분야에 따라 초상화 느낌을 달리하기도 하나?
“수상 분야까지 고려하진 않지만, 대신 수상자 개개인의 얼굴과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수상자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 모양에 힘을 많이 주려고 한다. 초상화를 그릴 수상자 사진은 보통 차분한 표정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으로 고른다. 한강 작가의 초상화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로 머리 모양과 특유의 미소를 담아내기 위해 애썼고, 특히 그의 긴 머리를 10~12개의 굵은 선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이와 더불어 ‘수상자 최초 발표’시 사용되는 그림이기 때문에 항상 ‘속보’의 느낌을 담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무게감 있으면서도 눈에 잘 띠는 표현 방식을 고안해내고자 초반에는 파란색도 사용해보고 했는데, 2017년부터는 다른 색들에 비해 질감과 입체감이 더 잘 느껴지는 금색을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금색 페인트를 활용해 수차례 실험한 끝에, 특수 접착제를 사용해 초상화에 부착할 수 있는 아주 얇은 금박에 정착했다. 하얀 배경에 대조되는 검정 윤곽선, 그리고 질감 있는 금색이 합쳐지면 정말 속보처럼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오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10년 넘게 수상자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작업을 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수상자가 있다면.
“모든 수상자의 고유한 느낌을 반영해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 역시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수상하는 경우 특히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말랄라 유사프자이나 미국 가수 밥 딜런(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그렇다. 특히 예술가로서, 수상자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경우 전세계 수백만 명이 내 작품을 보게 될 거라 생각하면 더욱 기억에 깊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의 살해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한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로, 2014년 불과 17세의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최연소 수상해 ‘중동의 얼굴’이라고도 불린다.)
―수상 선정 심사위원 외에 미리 선정 결과를 알 수 있는 극소수의 관계자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이 우승자가 누군지 물어보진 않나. 스웨덴 출신이니 특정 해의 노벨상 유력 수상 후보로 스웨덴인이 거론되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
“사실 초상화를 작업할 때는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를 당혹시킬 만한 질문을 받을 틈도 없는 것 같다.”
―혹시 한강 작가의 작품도 읽어보셨을지?
“작업이 끝난 오늘 드디어 ‘채식주의자’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많이 읽진 못했지만, 지금까지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읽어보시는 편인가?
“그렇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선에선 (수상 이후 출간하는 작품들까지) 전부 읽는 편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가 2021년 내놓은 ‘클라라와 태양’을 읽었다. 읽고 나서 슬픈 여운이 남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좋았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을 그리는 초상화가 중 한명인 셈인데. 노벨상 수상자들 외에 초상화를 그려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
“개인적으로 역사 속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시작하게 되면 파블로 피카소가 첫 번째 타자가 될 것 같다. 화가로서 봤을 때 그는 매우 훌륭하고 묘사하기에 흥미로운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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