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 공통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김형진의 걸쭉한 뉴질랜드 이야기]
'공영제' 버스에 돈 안내고 타는 사람들
한인들, 뉴질랜드 사회보장 변칙 활용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
선의와 배려를 악용하지 않아야

일상에서 만나는 무임승차

저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 외곽 지역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환승 스테이션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있는데, 10대 초중반의 품행이 불량해 보이는 친구들 대여섯 명이 버스에 타려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그들을 태워봤기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뒷사람이 계산할 거라면서 우르르 올라타고 나면 마지막에 타는 친구가 버스카드를 내밀지만, 보나 마나 잔액 없는 카드일 것이 분명합니다.

'요금 안 낼 거면 모두 다 내리라'고 해도 절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서로 욕설을 하면서 떠들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심지어 담배나 마리화나를 피우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임승차로 인근 쇼핑몰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물건을 훔치고 난장판을 만드는 등 아주 쓰레기 같은 무리들입니다. 이런 절도와 경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촉법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거의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오클랜드 교통국에서는 버스 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그런 승객들하고 충돌하지 말고 못 본 척 태워주라는 지침을 내려보냈지만, ‘아재심(心)’으로 충만한 대한의 꼰대에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씀.

“요금 안 내면 안 태워준다. 교통카드 먼저 찍어라.”

버스 앞문을 가로막고 서서 단호히 얘기했지만, 여러 명이 막무가내로 비집고 올라타려고 합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승객이 보다못해 그들에게 질서를 지키라고 호통을 쳤지만, 오히려 그 노인에게까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더군요. 갑자기 혈압이 확 치솟아 올라서,

“너희들은 100불을 내도 안 태워 줄 꺼니까 저리 꺼져!”

라고 말했더니 저한테도 쌍욕을 해대면서 옥신각신 말싸움 몸싸움까지 하는 통에 난리가 났습니다. 사실은 100만불(One Million Dollar)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 헌드레드(One Hundred)가 먼저 입에서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100불로 대폭 할인되어 버렸습니다.

“뻐킹 아시안! 고 백 투 유어 칸츄리(Fucking asian! Go back your country)!!”

인종차별적인 말까지 듣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짧은 영어로는 도저히 말싸움 상대가 안 되겠고, 밀치거나 손찌검이라도 했다가는 회사에서 쫒겨나게 될 판이라 평소에 장풍을 익혀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찰나, “이런 빌어먹을 놈들!!!” 하는 외침과 함께 쿵쿵쿵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뒷자리에 타고 있던 승객들 중에 근처 마트에서 일하는 덩치 좋은 마오리 여자 승객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그리고 버스 출입문을 가로막은 채 욕설을 가득 담아 그 진상들을 시원하게 꾸짖기 시작합니다. 무서운 기세에 눌린 그 말썽장이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다가 이내 저 멀리 사라져 버리더군요. 그 아가씨가 저에게 살짝 윙크하면서 “기사님, 괜찮으시죠?” 하길래 저도 감사의 표시로 앞으로 제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게 되면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마도 먼 옛날 중국 당양파에서 단기필마로 조조의 군사들과 싸우던 조자룡이 헌 창을 여러 개 버려가며 아두 아기를 지켜내다가, 마침내 장판교에서 도와주러 나온 장비를 만났을 때의 심정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합니다.

밤 23시 25분 운행이 끝난 버스 안에서 환승정거장인 히비스커스 스테이션(Hibiscus Station)를 바라본 모습.

무임승차 눈감는 교통당국

뉴질랜드의 대중교통, 특히 시내버스는 우리나라의 준공영제와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노선을 정해놓고 입찰을 통해 선정된 민간 버스회사가 해당 노선을 운행하는 구조입니다. 노선 설정권은 시가 가지고 각 버스회사는 그에 맞춰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수익금은 운행 실적에 따라 배분받고 적자분은 시에서 보전 해주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운행 시 수금한 요금은 모두 시 교통 당국으로 보내지며 회사는 계약에 정해진대로 운행당 일정 금액만을 교통 당국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승객이 내는 요금과 회사의 수익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무임승차를 하는 승객들과 마찰을 일으켜 말썽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돈을 내건 말건 신경 쓰지 말고 안전운전에만 집중하라는 지침을 버스 기사들에게 내렸습니다. 시 교통국에서도 역시 무임승차 등으로 시비가 붙어 기사 폭행으로 이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특히 코로나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시민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요금을 내지 못하는 승객들에 대한 부분은 당국이 부담할 테니, 불필요한 다툼을 일으키지 말고 그냥 태워주라는 지침을 공식적으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악용해 기사들을 무시하고 (특히 동양인 기사들에게),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타거나 교통카드 충전을 못했다며 거짓말을 하면서 당당하게 무임승차를 요구(부탁이 아닌)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깜박하고 충전을 못했는지는 그 표정을 보면 99%의 신뢰도로 알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교통카드는 대부분이 후불식인 한국과는 달리 모두 선불 충전식이며, 인터넷이나 전화로 충전을 한 후 24시간이 지나야 사용할 수 있는 원시적인 시스템이라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학생이 단말기에 카드를 대는 척만 하면서 입으로 ‘삑’ 소리를 내면서 타길래 카드 똑바로 대고 타라고 말했지만, 저를 무시하고 뒷자리로 가는 겁니다. 뒤따라가서 그 학생이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붙잡고는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돈이 없으면 정직하게 기사에게 부탁하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큰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학생의 부모가 시 교통국에 저를 신고했고, 버스 내부의 CCTV를 통해 그 상황을 확인한 회사 측에서는 제가 그 학생에게 물리적인 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저에게 강한 경고를 내렸습니다. 어처구니없었지만, 사회 전체적인 질서보다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강한 문화적 차이 탓에 이러한 일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여성이나 미성년자, 심지어는 애완견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주면 크게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한국 가정에서의 권력 순위가 엄마, 자녀, 강아지 그리고 맨 마지막 최하층민이 아빠인 경우와 같은 맥락이죠.

2019년 10월 29일 서울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오른쪽)과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사회보장협정에 서명했다.

복지수당을 즐기는 한국인 무임승차족들

약 10년 전, 식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식당이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은 주말이 아닌 매주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로 사회복지 수당이 지급되는 날이죠. 그 목요일마다 제가 일하던 식당에 오던 한 가족이 있었는데, 항상 엄마와 아빠는 제일 비싼 요리를 주문해서 먹으면서, 데리고 온 4명의 자녀들에게는 스시롤 2알씩만 주는 겁니다. 엄마가 먹고 있던 치킨 요리가 먹고 싶었는지 그중 한 아이가 엄마의 접시에 손을 대자, 엄마가 그 아이를 때리면서 식당 밖으로 쫒아내려 하더군요. 보다 못한 제가 엄마를 말리면서 아이들에게 치킨 몇 조각 가져다줬습니다.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실업수당이랑 자녀 양육수당으로 먹고사는 것들이 아이들한테 해도 너무 하네. 쯪쯪쯪...”

지켜보고 있던 식당 사장님이 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한국말로 혼잣말을 하시더군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자녀 가정에 양육 수당을 지급하는 복지 제도가 있는데, 그 수당이 나오는 날에 자기들은 흥청망청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정작 자녀들에겐 인색한 것이죠. 이 부부를 계속 단골손님으로 모셔야 할지 마음이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제가 적지 않은 나이에 청운의 뜻을 품고 이곳 뉴질랜드로 와서 영주권을 준비하던 약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매년 영주권 심사 기준이 조금씩 까다롭게 바뀌어 갔습니다. 일부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는 먼저 이민 온 사람들의 부적절한 행동들에서 기인한 바가 큽니다. 일단 영주권을 받고 각종 수당을 수령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다음에는 일을 하지 않고 실업수당을 받습니다.

뉴질랜드 기술이민에 대한 점수표

1백만 불이 넘는 집에 살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매일 골프장을 드나들면서, 다니지도 않는 학교에 등록을 해놓고는 학생수당을 신청합니다. 학생수당은 학생들이 부모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돈 걱정 없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보조해주는 복지 제도입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학교에 입학을 하면 신청 자격이 부여 됩니다. 학교 등록금은 나라에서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고, 평생에 걸쳐 아주 조금씩 갚아나가면 됩니다. 직업이 있을 때만 받는 급여 중 일정 비율로 상환하게 되어있으니, 이들은 그 학비 융자금을 갚을 계획은 아예 없는 거죠.

제 아들의 학교 졸업식에서 알게 된 학부모 중에 기독교 목사가 계신데, 종교인 분야로 영주권을 비교적 쉽게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은 목회 활동 대신 실업수당, 학생수당 받으면서 사는 게 더 낫다는 얘기가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걸 직접 듣고는, 만남에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런 선배 이민자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누적되어 사회에 부담을 주게 되면서 영주권 심사 기준도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있지도 않던 영어 능력 평가가 추가되기도 했고, 지원자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생활력에 대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연봉에 대한 기준선도 계속해서 상향조정 되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결국 영주권을 받았으니, 저도 능력이 상당히 괜찮은 사람인 것 같긴 합니다.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 꼬박꼬박 잘 내고 있습니다.

배려를 악용하는 얌체들

오래전에 ‘부당거래’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배우 류승범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라며 부르짖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회보장제도를 '호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약간 부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서로가 십시일반 힘을 모아 약자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려는 일종의 배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사례들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 사건들이며, 훨씬 더 많은 정직한 복지 수급자들이 사회보장제도 덕에 힘을 내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리적인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도 사회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만 해도 사회적인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 일진대, 이러한 배려를 악용하여 오히려 선량한 시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뒤통수를 치는 얌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장치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답답해 집니다.


글을 쓰는 김형진 님은 이렇게 본인을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 운전 하고 있는 꼰대심 투철한 대한의 '아재'입니다. 제가 이 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