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추적자가 뒤흔든 장르 문법, '글리치'는 정말 세계 무대서 참패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글리치'를 세계 무대의 참패작이라고 단정하려면 구체적인 순위나 시청 지표, 해외 평가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확인된 자료에는 이를 입증할 수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외계인과 UFO, 실종 사건, 사이비 종교, 미스터리와 스릴러, 코미디와 버디물까지 한 작품 안에 밀어 넣었다. 이 과감한 혼합은 신선함의 근거인 동시에 시청자를 밀어내는 장벽이 됐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오히려 익숙하다. 홍지효(전여빈)는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생활,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 이시국을 둔 평범한 여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의 모습을 간헐적으로 목격해 왔다. 정상적인 일상과 설명하기 어려운 환영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한다는 설정은 '글리치'의 핵심을 압축한다.
이 작품이 다루는 것은 외계인의 실재 여부만이 아니라, 평온해 보이는 삶에 이미 발생해 있던 균열이다.
남자친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균열은 사건으로 바뀐다. 지효는 실종을 추적하다가 전자기기의 이상 현상과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흔적을 발견한다. 표면적으로는 사라진 연인을 찾는 미스터리지만, 작품은 수사의 인과관계를 곧장 정리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실종과 비현실적인 징후를 같은 화면에 놓고 어느 쪽도 쉽게 확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안을 키운다. 명쾌한 단서를 차곡차곡 쌓는 장르물을 기대한 시청자에게는 이 지연이 답답함으로 다가갈 수 있다.
허보라(나나)의 등장은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바꾼다. 고등학교 시절 지효와 가까웠던 보라는 UFO와 각종 미스터리 현상에 깊이 빠져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모아 직접 사건을 추적한다.

지효가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며 현실의 규범 안에 머물려 한다면, 보라는 남들이 믿지 않는 가능성을 행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두 사람의 재회는 단순한 공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 인식이 충돌하고 보완되는 과정이다.
전여빈과 나나의 워맨스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여빈은 일상을 지키려는 태도와 설명할 수 없는 경험 사이에서 흔들리는 지효의 불안을 담당하고, 나나는 미스터리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보라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두 인물의 온도 차는 무거운 사건 속에서도 엉뚱한 리듬과 코미디를 만든다. 사건의 진실보다 두 여성이 다시 관계를 맺고 서로의 말을 믿어 가는 과정이 더 선명하게 남는 순간도 적지 않다.
외계인과 사이비 종교를 결합한 설정은 '글리치'의 가장 기괴하면서도 날카로운 선택이다. 외계인은 확인되지 않은 존재이고, 종교 집단은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신의 언어로 바꾼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같은 현상을 보고도 환영, 납치, 계시 또는 음모처럼 서로 다른 해석을 붙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그 경험을 설명할 권력을 차지하느냐다. 이 지점에서 '글리치'는 SF 소재를 믿음의 형성과 집단적 확신을 들여다보는 장치로 활용한다.
다만 여러 장르의 결합이 언제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실종 미스터리의 긴장을 따라가던 흐름에 코미디가 끼어들고, 외계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 때 종교 집단의 기이한 행동이 전면에 나온다.
버디물의 감정선까지 겹치면서 작품의 중심이 계속 이동한다. 이런 불균질함을 의도된 혼란으로 받아들이면 개성이 되지만, 사건 해결의 속도와 논리적 정돈을 중시하면 산만함으로 보인다. 같은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독창적인 장르 전환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몰입을 끊는 돌출부가 되는 이유다.
'인간수업'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진한새 작가의 각본은 익숙한 장르적 쾌감보다 불편한 질문을 오래 남기는 쪽에 가깝다. '글리치'는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빠르게 판정해 시청자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대신 지효가 자신의 감각을 믿어도 되는지, 타인의 확신을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는지 계속 흔든다. 답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는 태도는 작품의 주제와 어울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전개를 충분히 정리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남긴다.

제목인 '글리치'는 일시적인 오류나 오작동을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대상은 전자기기만이 아니다. 결혼과 직장으로 대표되는 지효의 안정된 삶,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는 사회의 기준, 사실과 믿음을 가르는 판단 체계에도 잡음이 생긴다.
지효에게 보이는 외계인은 이 모든 균열을 시각화한 이미지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기괴함은 단순히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식이라기보다 정상이라고 여겨 온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방법에 가깝다.
그러나 상징을 풍부하게 배치하는 것과 극적인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글리치'는 해석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지만, 모든 시청자가 그 모호함을 즐길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지는 않는다.
남자친구의 실종이라는 직접적인 동기로 시작한 이야기가 외계인과 종교, 믿음과 현실의 경계로 확장되면서 초반의 절박함이 분산되기도 한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단순히 낯선 형식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작품이 벌여 놓은 질문과 정서가 충분히 수렴되지 않는 데서 나오는 비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바로 그 불완전한 결합 때문에 '글리치'는 흔한 한국 드라마와 다른 얼굴을 갖는다. 로맨스나 범죄 수사의 정형화된 구조에 기대지 않고, 여성 2명의 관계를 중심에 놓은 채 음산한 미스터리와 블랙코미디를 오간다. 지효와 보라는 사건 해결을 위한 기능적인 한 쌍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서 벗어나 있던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면서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언어와 청자를 얻는다. 이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복잡한 설정을 관통하는 비교적 단단한 감정적 축이다.

결국 '글리치'를 세계 무대의 참패로 규정하는 것은 확인된 근거보다 자극적인 표현에 가깝다. 이 작품에 더 적절한 평가는 대중적 합의보다 취향의 분화를 선택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매끈한 전개와 명확한 반전을 원하는 시청자에게는 불친절하고 산만할 수 있지만, 장르의 충돌과 모호한 상징, 전여빈과 나나의 독특한 워맨스를 즐기는 시청자에게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경험이 된다.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 기괴한 오류가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느냐다.
그 점에서 '글리치'는 완벽하게 정돈된 작품은 아니어도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작품 역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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