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고비 출시 첫 주 만에 우려 현실로…‘171㎝ 55㎏' 여성 “전화로 샀어요”

허지윤 기자 2024. 10. 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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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비만 환자 대상으로 허가된 비만약
미용 목적으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서 입수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종로약국에서 약사가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식약처는 위고비가 의사의 처방 후 약사의 조제·복약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의약품이라고 설명했다./연합뉴스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의 오남용 우려가 국내 출시 첫 주 만에 현실화했다. 일부 소비자들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허점을 활용해, 미용 목적으로 위고비를 유통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20일 취재 결과, 다이어트 개선 보조제와 의류 등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홍보하는 일부 인플루언서들이 위고비를 구한 후기를 올리며, 위고비 홍보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 제약기업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치료제이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GLP-1을 흉내 내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를 낸다. 위고비는 국내에서 비만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허가돼, 국내 유통사인 쥴릭파마코리아가 지난 15일부터 약국들의 위고비 주문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팔로어 11만명이 있는 인플루언서 A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요즘 핫한 위고비를 구했다”며 “키 171㎝에 55㎏으로 시작해, 일주일 뒤 몸무게를 공개하겠다”고 홍보성 게시물을 올렸다. 잠재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홍보 방법으로 꼽히는 해시태그(#)로 ‘위고비’, ‘위고비 후기’도 붙였다.

위고비는 BMI(체질량지수·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나, 이상 혈당증이나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등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으면서 초기 BMI가 27 이상인 과체중 또는 비만 환자 등에 처방하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허가한 전문의약품이다. 의사 처방과 약사 조제·복약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식약처가 위고비 출시일인 지난 15일 온라인 불법 판매·광고 행위를 한 달간 집중적으로 단속한다고 경고했지만, 버젓이 미용 목적으로 위고비를 입수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홍보 활동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만 환자가 아닌 이들이 공급 물량 부족으로 품귀 현상을 빚은 의약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데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허점이 이용되고 있었다.

키 170㎝ 이상에 체중 50㎏대라고 밝힌 인플루언서 B씨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나만의 닥터’ 앱에서 전화 한 통으로 처방을 받았다”며 “처방전을 앱에서 약국으로 바로 전송하고, 약국으로 찾으러 가면 된다”며 비대면 플랫폼을 통한 구매 방식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팔로어 수가 30만명이 넘는 B씨는 이후 몇 시간이 지나 “지금은 나만의 닥터 앱에 없어서 못 구한다”며 “닥터나우에서 가능하다”고 알렸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 나우./닥터 나우

B씨가 언급한 나만의 닥터, 닥터나우는 인터넷에서 진료와 처방이 가능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다. 제휴 의료기관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중개하고 처방약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행 규정상 환자가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의약품을 처방받은 후에도 약은 직접 수령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악용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약을 대리인이 수령하는 경우도 있다. 약국이 치료제를 수령하러 온 사람이 약의 처방 대상에 맞는지 면밀히 확인하기 어려워 의약품의 무분별한 처방과 오남용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제한적으로 시작했다가,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2월 말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 이후 주요 플랫폼들의 이용도 증가했다. 닥터나우는 의약품 유통업체인 비진약품을 설립해 올 8월부터 본격적인 제휴약국 영업도 시작했다.

의약계 전문가들은 위고비 출시 전부터 비대면 진료를 통해 위고비가 무작위로 처방돼 오남용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고비보다 먼저 나온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삭센다’도 비대면 플랫폼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앞서 삭센다를 4781회 직접 조제해 택배 판매한 의사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불법 유통의 가장 큰 문제는 약물 부작용이다. 이탈리아 베로나대 연구팀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위고비나 오젬픽의 불법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들이 자살과 같은 부작용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베로나대는 지난 8월 위고비, 오젬픽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단순한 다이어트약으로 생각하고 오남용했다간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뜻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해 장폐색과 관련된 부작용을 약물 설명서에 추가하기도 했다. 췌장염과 신장 기능 저하, 담낭 질환, 저혈당 등도 위고비의 부작용으로 보고돼 있다. 미국에서는 위고비의 무분별한 개인 불법 거래를 막고자 노보 노디스크 미국 법인이 전용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위고비와 오젬픽을 식품의약국(FDA)의 취급 승인을 받은 곳에서만 판매하도록 조치했다.

한국법인인 노보 노디스크제약은 “전문의약품의 허가 목적 외 사용에 관해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관련 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며 이를 감지, 예방, 교육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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