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 김광수? “새 감독은 김진욱으로 갑시다!”

[이재국의 베팬알백] ㉝제8대 사령탑 김진욱 감독 시대 개막과 2012년 가을야구

두산 베어스 김승영 사장(왼쪽)이 2011년 10월 10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제8대 사령탑 김진욱 감독 취임 기자회견 자리에서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두산베어스

“어디십니까?”

“네, 사장님. 지금 집에 있습니다.”

2011년 10월 9일. 페넌트레이스가 끝나고 나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진욱 투수코치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쉬고 있다가 김승영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김 사장의 다음 말에 깜짝 놀랐다.

“제가 지금 집 앞까지 왔는데 집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예? 저희 집 앞에 계신다고요? 올라오십시오.”

‘근데 사장님이 우리집까지 왜 오셨지?’

김 사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짧은 시간에 김진욱 코치는 오히려 궁금증이 커졌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김 사장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 사장만 온 것이 아니었다. 옆에는 김태룡 단장이 서 있었다.

“제가 믹스커피와 캔커피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냉장고에 마실 게 커피만 있네요.”

김 사장은 김진욱 코치가 가지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뒤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말했다.

“감독을 맡아줘야겠습니다.”

“감독요?”

“네, 그렇습니다. 감독을 맡아주세요.”

“솔직히 저도 2군 감독이 평생의 목표였습니다. 유망주 선수들을 잘 키워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를 주신다니….”

“아니, 2군이 아니라 1군 감독입니다.”

“예? 1군 감독요?”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9일 김진욱(51) 1군 투수코치를 제8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 등 총액 8억 원에 사인했다. 올해 8개 팀 중 5위에 머물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두산은 김경문 전 감독이 지난 6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김광수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어왔다.』 <연합뉴스 2011년 10월 9일자>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33번째 이야기는 두산 베어스 제8대 사령탑 김진욱 감독 선임 과정과 2012시즌 도전기다.

OB 베어스 사이드암 투수 김진욱은 별명이 '주윤발'이었을 정도로 KBO리그 대표 미남 스타로 꼽혔다. 훗날 두산 베어스 제8대 감독이 된다. ⓒ두산베어스

◆ 포스트 김경문…새 사령탑 후보 압축

2000년대 들어 두산에게 가을은 늘 분주한 계절이었다. 하지만 2011년 10월은 을씨년스러웠다. 2006년 이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오랜만에 남의 가을잔치를 먼발치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구단도, 선수단도, 팬들도 익숙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마냥 허탈한 마음으로 가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다음 시즌을 위해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했다. 두산은 페넌트레이스가 끝나자마자 새 사령탑을 선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9월부터 야구계에는 두산 새 감독 후보를 놓고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고 있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게 6월에 김경문 감독이 자진사퇴한 뒤 김광수 수석코치 체제로 기나긴 잔여 시즌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에는 또다시 선동열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고, 호사가들 사이에 자천타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이 난립했다.

그래서 두산 프런트 수뇌부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후보를 추려 나갔고, 그룹에 올릴 최종 후보를 엄선했다. 이번에는 김경문 감독 선임 때처럼 프런트 직원들의 투표를 거치지 않았다.

“후보로는 김광수 감독대행을 비롯해 양상문 해설위원, 김진욱 투수코치 등으로 압축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김광수와 김진욱 코치를 저울질했습니다.”

당시 감독 선임 작업을 했던 김승영 전 사장의 말이다.

2011년 두산 김광수 감독대행의 모습.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시즌이었다. ⓒ두산베어스

김광수는 1982년 원년 멤버로 1991년 은퇴할 때까지 OB 베어스 유니폼만을 입은 원클럽맨. 당시까지 지도자 생활도 두산에서만 해온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었다. 6월에 김경문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자 감독대행을 맡아 38승38패로 5할 승률을 올리며 무난하게 팀을 잘 추슬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두산은 2011년에 마운드, 특히 불펜이 붕괴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우승팀으로 반등하기 위해서는 마운드 재건이 시급했던 상황. 그래서 대표적인 투수 전문가로 꼽히던 양상문 당시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어스는 그동안 대체적으로 내부 코치 중에서 감독을 선임하는 전통을 이어 왔다. 외부 인사가 곧바로 베어스 감독으로 발탁된 유일한 예외 사례는 1994년 말 영입한 김인식 감독이었다.

이런 연유로 양상문 감독의 이름은 가라앉고, 구단 내부 코치 중에서 2군과 1군 투수코치를 맡았던 김진욱 코치가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이때만 해도 외부에는 김진욱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다.

항간에는 선동열 전 삼성 감독도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김 전 사장은 “선 감독은 아니었다”면서 “2003년 김인식 감독이 물러나고 당시 선동열 KBO 홍보위원과 협상을 했지만 결렬됐던 일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김진욱 감독이 2012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투수 고창성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 감독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두산베어스

◆ “삼촌 같은 분”…김진욱을 새 감독으로 결정한 이유

“새 감독은 김진욱으로 갑시다.”

10월 9일 오전, 당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김승영 사장이 뽑아 온 새 사령탑 후보들을 살펴본 뒤 김진욱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키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룹의 재가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은 차를 돌려 압구정동 김진욱 코치 집으로 찾아갔던 것이었다.

“사실 김승영 사장님이 집에 오셔서 ‘감독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당연히 2군 감독 자리인 줄 알았어요. 저는 평소 2군 감독은 한번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래서 기뻤죠. 제 개인적으로는 김광수 선배가 1군 감독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김광수 감독대행을 정식 1군 감독으로 하고 나한테 2군 감독을 맡기나 보다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2군이 아닌 1군 감독’이라고 말씀하길래 깜짝 놀랐어요.”

김진욱 전 감독은 자신이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선임된 그날의 상황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는 “사장님의 설명을 듣는 순간에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멍해졌다”고 돌이켰다.

두산 구단이 10월 9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발표를 하기 전까지 김진욱 코치는 언론과 야구인들 사이에서 감독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김진욱 코치 자체가 프로야구 1군 감독에 대한 야망과 꿈이 없었다. 평소에도 1군보다 2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게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얘기해 온 인물이었다.

김진욱 감독의 현역 시절 투구 모습. 그는 2군 감독이 돼 유망주를 육성하는 것이 야구인생의 목표였지만 1군 감독이 됐다. ⓒ두산베어스

1군 지도자 생활에 대한 거부감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김경문 감독 시절 성적 부진이 이어지자 5월 31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두산은 1군과 2군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을 단행했다. 당시 1군의 윤석환 투수코치와 2군 김진욱 투수코치를 맞바꾸기로 결정하고 구단에서 전화로 김 코치에게 “1군에 합류하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김 코치는 “안 된다. 난 가기 싫다”며 고집을 피웠다. 자신은 이천에 있는 2군 투수들을 돌보겠다는 얘기였다. 은퇴 후 분당중앙고와 구리인창고 감독을 지낸 뒤 2006년 친정팀 두산 구단에 코치로 합류했지만 이때까지 줄곧 이천 2군에서만 생활을 이어온 그였다.

구단에서 “2군 이원석을 1군 엔트리에 등록해야 하는데 데리고 올 사람이 없다”면서 “이원석을 차에 태워서 인천으로 데려와 달라”고 설득한 뒤 인천에 온 그를 1군 코치로 눌러 앉힐 수 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6월 11일 자진사퇴하자 김진욱 코치는 당시 김진 사장을 직접 찾아가 “저도 이제는 2군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또 고집을 피웠다. 김진 사장이 “2군에 가더라도 일단 시즌 끝나고 가라”고 설득해 1군에서 김광수 감독대행을 보좌하게 했다. 그만큼 1군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김 코치였다.

(2011년 8월에 김진 사장이 두산 베어스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면서 김승영 단장이 새 대표이사로, 김태룡 운영본부장이 새 단장으로 승진됐다.)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김승영 신임 사장이 김진욱 코치 집으로 찾아가 “감독을 맡아줘야겠다”고 했을 때 김 코치가 즉각적으로 ‘2군 감독’으로 이해하고 반응했던 것도 평소 자신은 2군 지도자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OB 베어스 시절의 김경문 포수와 김진욱 투수. 훗날 김경문은 제7대 감독, 김진욱은 제8대 감독에 오른다. ⓒ두산베어스

그렇다면 두산은 왜 김진욱을 제8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김승영 전 사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장 직원, 코칭스태프, 선수들한테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김진욱 코치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어요. 성실하기도 했고 해박한 야구 이론과 뚜렷한 철학으로 선수들을 잘 지도한다는 얘기가 꾸준히 들려왔어요. 무엇보다 2군 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스킨십을 잘하고 소통에 능한 지도자라는 평가가 나와 후한 점수를 얻었죠.”

실제 2군 코치 시절 두산 선수들 사이에서는 그를 두고 “삼촌 같은 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코치와 선수라는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선수의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카운슬러 같은 존재로 선수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또한 대개 구단에서 감독을 교체할 때는 전임 감독과 대비되는 성품과 색깔의 인물을 선임할 때가 많다. 이는 두산 구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다른 구단 역사를 둘러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1980년대 ‘관리야구의 대명사’ 김성근 감독이 물러났을 때 ‘자율야구’를 주창한 이광환 감독을 선임했다.

이어 1994년 윤동균 감독이 강하게 휘어잡는 스타일로 팀을 이끌다 선수단 집단이탈 사태가 터지자 부드럽고 온화한 리더십의 김인식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두산 김진욱 감독이 손시헌의 등을 만지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인식 감독 후임으로는 다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선수들은 김 감독의 표정 하나만 보고도 알아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경문 감독 스타일의 부작용과 균열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김경문 감독을 오래 경험한 선수들 중 어린 시절과 달리 머리가 커지면서 앞에서는 “예”라고 하고선 뒤에서 불만을 갖는 선수들도 생겨났다.

2011년 두산의 추락은 시즌 초반부터 부상 선수들이 속출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이런 미묘한 팀 내 기류에 기인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두산은 김 감독의 장기 집권이 끝난 뒤 전임 감독의 색깔과 대비되는 김진욱 감독을 선임했다. 물론 감독으로서 역량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여기에 2군과 1군 코치 시절 보여준 합리적인 투수 기용과 선수 관리, 온화한 성품과 부드러운 리더십, 선수들과 거리낌 없는 스킨십 등이 플러스로 작용했다. 김승영 전 사장도 "그런 점을 고려한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2012년 두산 베어스 김진욱 감독(오른쪽)과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언스 감독 출신의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 ⓒ두산베어스

◆ 일본프로야구 감독 출신 이토 쓰토무를 수석코치로

두산은 수석코치도 예상 밖의 파격적인 인물을 발탁했다. 일본프로야구(NPB) 2327경기 출전 경력에 빛나는 레전드 포수 출신으로 세이부 라이언스에서 감독(2004~2007년)까지 역임한 이토 쓰토무를 영입한 것이었다. 이토는 1962년생으로 김진욱 감독(1960년생)보다 두 살 아래였다. 그러나 나이를 떠나 일본프로야구 감독 출신이 격을 낮춰 KBO리그 초보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를 맡는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전례도 없었다.

“이토 씨가 2011년 LG 스프링캠프(오키나와)에서 인스트럭터를 한 인연으로 그해 시즌 도중에 잠실 LG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맞은 편에 있는 우리 구단 사무실에도 인사를 하러 와서 처음 만났죠.”

두산 김태룡 단장은 일본인 이토 전 감독을 두산 수석코치로 선임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첫 인연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인사를 하면서 ‘우리 구단하고도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지 함께할 용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만 하더라도 인사치레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해 시즌이 끝나고 정식으로 ‘우리 팀 수석코치로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일본프로야구에서 감독까지 지낸 인물인데 흔쾌히 수락을 했어요.

수석코치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의 의사. 김태룡 단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들은 김 감독도 “좋다”고 반응했다.

“제가 초보 감독인데 이토는 일본프로야구에서 감독 경험을 해봤잖아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릴 때 옆에서 큰 도움이 될 거라 봤어요. 또 저는 투수 출신이지만 이토는 포수 출신이니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했죠. 무엇보다 우리 팀 포수들의 기량이 크게 업드레이드될 것 같아서 저도 곧바로 찬성했습니다.”

김진욱 전 감독의 얘기다. 이때만 하더라도 김진욱 감독과 이토 수석코치는 서로의 보완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2012년 KBO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8개 구단 감독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삼성 류중일, SK 이만수, 롯데 양승호, KIA 선동열, 두산 김진욱, LG 김기태, 한화 한대화, 넥센 김시진 감독(왼쪽부터) ⓒ두산베어스
2012년 개막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한화 대표 박찬호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많이 하는 동안 다른 선수들이 경청하고 있다. 삼성 이승엽, SK 정근우, 롯데 홍성흔, KIA 윤석민, 두산 김현수, LG 이병규, 한화 박찬호, 넥센 김병현(왼쪽부터). ⓒ두산베어스

◆ 박찬호 김병현 이승엽 김태균 KBO리그행…KBO 사령탑 신(新) 지형도

2012년은 두산뿐만 아니라 KBO리그 전체가 격변의 해였다. 우선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를 거친 해외파 투수 박찬호와 김병현이 각각 한화와 넥센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던 국가대표 4번타자 출신의 이승엽과 김태균도 전 소속팀인 삼성과 한화로 복귀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KBO리그 사령탑의 지형도도 새롭게 그려졌다. 두산 김진욱 감독뿐만 아니라 LG도 김기태 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해 잠실 라이벌 구단의 초보 감독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KIA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전 삼성 감독 선동열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해 타이거즈 팬들을 흥분시켰다.

삼성 류중일 감독과 SK 이만수 감독, 롯데 양승호 감독은 정식 감독이 된 뒤 2년째를 맞이했고, 한화 한대화 감독은 3년차 사령탑이었다. 200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KBO리그 감독들의 얼굴이 대거 바뀐 채 2012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김진욱 감독과 이토 수석코치 체제를 갖춘 두산은 선수단 구성과 운영에서도 큰 변화를 줬다.  우선 2011년 평균자책점 4.26으로 8개 구단 중 6위에 그친 마운드부터 대수술에 돌입했다.

외국인투수 더스틴 니퍼트와 스캇 프록터가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하고 있다. 니퍼트는 선발, 프록터는 마무리를 맡았다. ⓒ두산베어스

KBO리그 2년차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11승10패, 평균자책점 3.20)를 에이스로 삼고, 새 외국인투수 스캇 프록터(4승4패,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79)를 영입해 마무리를 맡겼다.

프로 데뷔 후 주로 불펜에서 활약해 온 이용찬(10승12패, 평균자책점 3.00)과 노경은(12승6패, 평균자책점 2.53)이 2012년 선발로 자리 잡아 생애 첫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고, 기대주에만 머물던 홍상삼이 셋업맨으로 활약(5승2패1세이브, 22홀드, 평균자책점 1.93)하면서 잠재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또 다른 유망주 파워피처 김강률과 충암고 출신의 고졸 신인 사이드암 투수 변진수(훗날 변시원으로 개명)가 불펜의 한 축으로 가세했다.

투수 전문가 김진욱 감독 시대를 맞이한 두산은 2012년 평균자책점이 3.58(리그 3위)로 크게 개선되면서 가을잔치로 향하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방망이의 힘이 약해진 부분이 아쉬웠다. 2011년 팀타율 0.271로 롯데에 이어 2위에 올랐지만 2012년에는 0.260(4위)로 내려갔다. 팀 홈런수도 2011년 92개에서 2012년 59개로 뚝 떨어졌다.

여기에는 ‘두목곰’ 김동주의 부상과 부진(타율 0.291, 2홈런, 27타점)이 가장 컸다. 또 다른 거포 최준석도 부상 속에 타율 0.250, 6홈런, 30타점을 올렸을 뿐이었다. 김현수도 주전으로 활약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3할대에 미치지 못하는 타율(0.291)을 기록했다. 홈런(7개)과 타점(65개)도 가장 좋지 않았다.

구리인창고 감독 시절 김진욱 감독의 제자였던 내야수 윤석민(2004년 2차 3라운드)이 만년 유망주의 틀을 깨고 김동주를 대신해 4번타자로 들어서 두 자릿수 홈런(10개)을 터뜨린 부분은 수확이었다. 특히 8월 이후에만 6개의 홈런을 몰아쳐 마침내 잠재력을 터뜨리는 듯했다.

2012년 두산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김진욱 감독(왼쪽)이 4월 7일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잠실 홈 팬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4월 돌풍과 롤러코스터 시즌3위로 준PO 진출

김진욱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정규시즌 데뷔전에서 쓴맛을 봤다. 4월 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에이스 니퍼트를 내고도 2-6으로 졌다. 두산은 3년 만에 개막전에 패하면서 ‘개막전 최강자’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8일 난타전 끝에 넥센에 13-1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자신감을 찾은 뒤 4월 한 달 동안 10승1무5패(승률 0.667)라는 놀라운 전적을 올렸다. 롯데와 공동 1위를 달리는 돌풍을 일으켰다.

5월 들어 부진에 빠졌다.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LG에 1승2패로 밀리고, 16일 잠실 한화전부터 20일 잠실 LG전까지 시즌 첫 5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5월에 11승15패(승률 0.423)를 기록하면서 시즌 21승1무20패로 순위는 4위로 떨어졌다.

2012년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두산 베어스 선수들의 모습 ⓒ두산베어스

6월엔 노경은의 활약 속에 반전을 이뤘다. 2003년 프로에 데뷔한 뒤 첫 선발투수로 나선 6월 6일 잠실 LG전에서 6.2이닝 동안 탈삼진 10개에 3안타 1실점으로 역투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비록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팀의 연장 10회 2-1 승리 견인차가 됐다. '선발 체질'임을 보여준 노경은은 이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등판할 때마다 호투를 이어 나갔다.

6월에 13승12패로 반타작 이상의 승률을 올린 두산은 7월초 5연승을 거두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한때 6위까지 떨어졌던 순위도 이때 3위로 올라섰다. 그 이후 2위와 4위 사이를 오가며 상위권에서 경쟁을 펼쳤다.

두산은 정규시즌 68승3무62패(승률 0.523)로 3위로 마쳐 준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었다. 2위 SK(71승3무59패)에 3게임차로 뒤졌고, 4위 롯데(65승6무62패)에 1.5게임차로 앞섰다. 2011년 포스트시즌을 구경하지 못한 두산 팬들에게 2년 만에 가을야구를 선물하게 됐다.

2012년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양 팀 선수단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롯데 손아섭, 강민호, 양승호 감독, 두산 김진욱 감독, 김현수, 이용찬. ⓒ두산베어스

◆ 2년 만의 가을잔치…준PO서 롯데에 1승3패 ‘아쉬운 결말’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롯데.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났던 팀이었다. 당시 두산은 두 번 모두 롯데를 꺾고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했다.

2011년 준플레이오프도 잠실에서 1~2차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두산은 2년 전처럼 안방에서 2연패를 하고 말았다. 과정도, 내용도 뼈아팠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니퍼트가 4회초 연속 안타를 맞고 2실점하자 김진욱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산베어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선발로 내세운 1차전에서 두산은 4회초 3실점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5회말 상대 실책 3개를 물고 늘어지면서 4점을 뽑아내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 7회말 오재원의 적시타로 5-3으로 달아나 승기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8회초 1사 1루서 홍상삼이 손용석 대타로 나선 박준서에게 우월 동점 2점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박준서는 정규시즌 홈런수가 2개뿐이었다. 게다가 생애 첫 포스트시즌 타석. 여기서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박준서로서는 야구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대타 홈런을 때려냈다.

두산은 9회말 1사 1·2루에서 김현수의 총알 같은 직선타구가 1루수 박종윤의 점프 캐치에 걸리는 불운까지 겹쳤다. 1루주자마저 아웃됐다.

연장 10회초 무사 1·3루 위기. 투수 김강률이 황재균에게 1타점짜리 좌익선상 2루타를 허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사 후 손아섭의 스퀴즈번트 때 김강률이 1루수 오재일과 충돌한 뒤 넘어졌다가 1루에 악송구까지 범하면서 2명의 주자를 홈에 들여보내고 말았다. 결국 두산은 다 잡은 듯하던 1차전에서 5-8로 패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연장 10회초 두산 1루수 오재일이 수비를 하다 투수 김강률과 충돌한 뒤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고 있다. ⓒ두산베어스

2차전에서 두산은 1회말 1사 2루서 김현수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선발투수 노경은은 6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1-0 리드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7회초 1사 후 황재균과 용덕한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뒤 9번타자 문규현에게 좌중간 적시타를 내주며 1-1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진 9회초. 1차전에서 눈을 다친 강민호를 대신해 마스크를 쓴 롯데 용덕한이 홍상삼을 상대로 벼락같은 스윙으로 좌월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용덕한은 그해 6월 투수 김명성과 트레이드돼 롯데 유니폼을 입었는데 정규시즌 홈런이 단 1개였다. 그런데 가을야구에서 친정팀 두산에 비수를 꽂는 결정적 한 방을 날렸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1회말 1사 만루서 두산 포수 양의지(왼쪽)가 롯데 3루 주자 조성환을 태그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3차전은 부산 사직구장으로 옮겨 펼쳐졌다. 벼랑 끝에 몰린 두산은 1회초 시작하자마자 최준석의 2점홈런을 포함해 3점을 얻어 기선을 잡았다. 2회말 2점을 내줬지만 7회초 오재원의 2타점 3루타를 포함해 대거 4점을 뽑아내며 7-2로 낙승했다.

두산은 2년 전 안방 잠실에서 1~2차전을 모두 내주고 이후 3연승을 올려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는 기적을 만든 바 있다.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1승이었다.

두산 윤석민이 준플레이오프 4차전 2회초 선제 솔로홈런을 날린 뒤 베이스를 돌고 있다. ⓒ두산베어스

두산은 4차전에서도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윤석민이 2회초 선제 솔로홈런을 때린 뒤 3회초에는 1타점 적시타로 2-0 리드를 만들었다. 이어 8회초 이원석의 1타점 적시 2루타까지 더해져 3-0으로 앞서나갈 때만 해도 승부는 5차전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김선우(5이닝)~김창훈(0.1이닝)~변진수(1.2이닝)의 무실점 피칭 이후 8회말 니퍼트가 승리를 굳히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니퍼트는 10월 8일 1차전에 등판해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108개의 공을 던진 바 있다. 3일 휴식 후 등판하는 상황. 김진욱 감독이 “무리할 필요 없다”며 말렸지만, 니퍼트는 김진욱 감독에게 “우리 팀에서 나보다 더 잘 던지는 투수 있느냐”며 등판을 자청했다. 외국인투수지만 책임감이 남다른 니퍼트는 자신이 승리를 마무리해 승부를 5차전으로 몰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패착이 되고 말았다. 니퍼트가 등판하자마자 선두타자 문규현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김주찬의 1타점 좌중간 2루타로 스코어는 3-1. 이어 박준서의 좌전안타 때 김주찬이 홈에서 아웃돼 1사가 됐다. 여기서 다시 손아섭의 우전안타가 터졌다.

니퍼트가 4연속 안타를 맞는다는 건 흔히 볼 수 없는 광경. 김진욱 감독은 니퍼트를 믿고 기다리다 결국 1사 1·2루 상황에서 투수를 교체했다. 그러나 바뀐 투수 홍상삼이 연속 볼넷을 내줘 밀어내기 1점을 허용했다. 이어 전준우의 희생플라이로 스코어는 순식간에 3-3 동점이 됐다.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 팬들이 부산 사직구장에서 기적을 바라며 끝까지 응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승부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두산이 9회초에 이어 연장 10회초에도 롯데 잠수함투수 정대현을 상대로 연속 삼자범퇴를 당했다.

연장 10회말. 롯데 선두타자 박준서가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손아섭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홍성흔 타석에서 두산은 마무리투수 프록터를 투입했다. 1승2패로 몰리고 있었기에 다음이 없는 두산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프록터가 초구에 평소 잘 구사하지 않던 커브를 던졌는데 홈플레이트 앞에서 원바운드 폭투가 된 것. 포수 양의지가 미트로 엉겁결에 공을 막았지만 옆으로 흘렀다. 공이 멀리 가지 않았지만 2루주자 박준서가 3루로 내달렸다. 다급해진 양의지가 공을 잡아 3루에 던진 것이 좌익수 쪽으로 빠지는 악송구가 되고 말았다. 박준서가 다시 홈을 향해 달리자 롯데 선수들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쏟아져 들어왔다.

롯데가 4-3 끝내기 승리를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됐다. 롯데로선 준플레이오프 사직구장 7연패와 홈경기 9연패의 사슬을 끊어내는 순간이었다. 3-0으로 앞설 때만 해도 다시 한번 리버스 스윕을 꿈꾸던 두산에겐 허무한 결말이었다.

두산 선수들이 2012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롯데에 연장 10회말 끝내기 패배를 당한 뒤 허탈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두산은 1승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두산베어스
“끝나고 나서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니퍼트가 자진해서 등판한다고 했을 때 제가 못 말린 것이 우선 후회됐습니다. 롯데 타자들이 대체적으로 초구부터 직구를 노리면서 과감하게 치는 스타일인데, 니퍼트가 그날따라 계속 직구 승부를 고집하다 연속 안타를 맞았어요. 특히 공이 높았어요. 그래도 니퍼트니까 그냥 믿고 지켜본 게 잘못이었습니다. 빨리 교체했어야 했는데…. 나 스스로 경험 부족이 컸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첫 가을야구에서 쓴 맛을 본 김진욱 전 감독은 10년도 더 지난 그날의 상황이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리는 모양이었다.

전년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팀을 초보 감독으로서 3위로 가을야구 무대에 진출시켰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매 경기 선취점을 뽑는 등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1승3패로 물러났다는 점에서는 '절반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었다. 김 감독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13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2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롯데에 패해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자 김진욱 감독(왼쪽)과 정명원 투수코치 등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