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유족 10명 중 6명 극단선택 생각..최선의 대책인 이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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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자살 유가족의 극단선택을 예방하기 위해 각종 지원 및 대책을 내놓고 있다.
장씨는 "자살 유가족이 고통 속에만 파묻혀 지내는 게 아니라 직접 예방활동을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며 "이후 동료지원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거 아세요?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 '당신의 고통을 잘 알아요' '당신을 돕고 싶다'는 한마디만 해도 유가족의 숨통이 트입니다. 동료지원 활동가는 현재 10명뿐인데,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이 더 늘어야 해요."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 "당신의 고통을 압니다" "많이 힘들겠어요" 우리 일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 말 한마디가 자살 유가족에겐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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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가족에서 동료지원 활동가로..임상심리사 장준하씨
[편집자주] 정부는 자살 유가족의 극단선택을 예방하기 위해 각종 지원 및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거창한 대책이라고 모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힘들겠어요" "당신의 고통을 알아요"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 흔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말 한마디가 유가족에겐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회복자들을 만났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세기의 만남'이 있던 날이었다. 2018년 4월 말, 판문점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장준하씨(당시 41세)와 그의 동생, 부모는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횟집에서 TV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때만 해도 장씨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섯 살 아래 동생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닷새 뒤 아무리 연락해도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자살유족 10명 중 8명, 우울증 경험"
"경찰과 소방을 불러 동생 집 문을 강제로 개방해 들어갔죠. 동생은 이미 극단선택을 시도한 뒤였어요. 그날 동생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가족을 만난 것이었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임상심리사 장씨의 말이다. 동생이 숨을 거둔 당시 장씨는 기독교재단 자살예방센터에서 강사 양성교육을 받고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받던 장씨는 하루아침에 자살 유가족이 됐다.
보건복지부의 2015~2021년 심리부검 면담 결과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60%가 극단선택을 생각했다. 극단선택 사망 1건이 발생하면 5~10명의 유족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조사도 있다.
"동생의 시신을 확인한 후 제 마음은 차가운 겨울이 됐어요. 그때 분명 봄이었는데, 동생의 유품을 보면서 저는 추위에 떨어야했지요. 몸 어딘가에 마음이 있다면 정확히 그곳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박힌 것 같았어요."
장씨는 동생을 만날 때마다 '뿌리가 같다'고 느꼈었다. 섬세한 성향의 두 사람은 누구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형제는 학창 시절부터 영화와 음악을 얘기했다. 동생은 홍콩 영화감독 왕가위의 열혈 팬이었다. 영화 이론을 전공한 동생은 대학원을 다니며 영어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장씨는 동생의 사후 의료기록을 열람했다. 동생은 10년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당시 영업사원이던 장씨는 경력전환을 위해 대학원을 다니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동생을 세심히 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동생의 죽음 이후 장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따듯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듣고 싶을 뿐이었다. 장씨는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몰랐다. 동생의 죽음을 고백하는 장씨와 그것을 듣는 사람들 사이엔 결국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
자살유족 자조모임에는 같은 아픔과 슬픔이 있었다. 자조모임이란 유가족들이 한 달에 한 번 만나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모임이다. 한 번 만날 때마다 3~4명이 모여 유품·갈등 등 특정주제를 놓고 질문을 하며 1시간 동안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일종의 '집단상담' 같은 개념이다.

"2018년 7월 자조모임에 처음 갔을 때 중년여성을 만났어요. 10년 전 첫째 따님을 잃었고 이제는 둘째 따님을 위해 사는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그분은 '많이 힘들겠네요'라고 저를 위로해 줬어요.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고 있더라고요. 얼어붙었던 제 마음이요."
같은 달 서울의 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자살 유가족의 사회 참여'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강연자는 정신건강의학계 권위자인 A교수였다. 그는 "극단선택 예방을 위해 유가족이 또 다른 유가족 지원 활동에 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달라"고 독려했다.
"저는 자살 유가족입니다. 어떻게 하면 극단선택 예방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장씨는 그 방법을 물었고 A교수는 관련 프로그램을 알려줬다. A교수는 강의가 끝난 후 장씨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저 또한 자살 유가족입니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장씨는 "자살 유가족이 고통 속에만 파묻혀 지내는 게 아니라 직접 예방활동을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며 "이후 동료지원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회복이란 '딱딱한' 등껍질이 생겼다는 것"
장씨는 지난해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운영하는 동료지원 활동가 교육을 이수했다. 9차례에 걸쳐 총 72시간 교육을 받았다. 해당 프로그램은 △자살 유가족의 특징 교육 △자조모임 실습 △자살 데이터 교육 △인문학적 소양교육으로 구성됐다. 현재 동료지원 활동가는 서울과 경기도, 제주도 등에 총 10명이 배치돼 있다.
장씨는 동료지원 활동가 2기로 선발돼 올해부터 거주지 인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료지원 활동이란 신경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다른 환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다. 장씨는 동료지원 활동가로서 한 달에 한 번 자조모임 리더로 참여해 모임 주제 선정과 구성을 하고 있다.
장씨의 본업은 임상심리사다. 2020년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일하게 된 센터에 처음으로 출근하던 날이었다.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이 자해한 현장으로 응급출동을 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거듭됐다. 동생을 잃은 아픔과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생각했다. 그는 센터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거 아세요?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 '당신의 고통을 잘 알아요' '당신을 돕고 싶다'는 한마디만 해도 유가족의 숨통이 트입니다. 동료지원 활동가는 현재 10명뿐인데,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이 더 늘어야 해요.”
햇살이 어깨에 내려앉던 여름날 장씨는 회복되고 있었다.
"자살 유가족은 당시 기억을 잊을 수 없어요. 그냥 안고 가는 것이에요. 회복됐다는 것은 '딱딱한' 등껍질이 생겼다는 점을 의미해요. 그 기억을 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다는 것이지요."
◇자살 유가족 살리는 구조의 메시지
지난 8월4일부터 정부의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는 수도권 등 전국으로 확대돼 시행되고 있다. 원스톱 서비스란 자살 사망 후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이 경찰서로 출동해 유족에게 지원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심리·정서 환경·경제 지원도 함께 추진해 일상회복을 돕는 사업이다.

정부의 이같이 대책에 실효성이 없다고 하기 힘들다. 다만 그 어떤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라는 게 장씨의 말이다.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 "당신의 고통을 압니다" "많이 힘들겠어요" 우리 일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 말 한마디가 자살 유가족에겐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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