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초, 김상희는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만 해도 법관을 꿈꾸던 수재였고, 교내에서 학생회장과 신문반 활동까지 도맡던 ‘모범생’으로 통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기회 하나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KBS 전속가수 모집 광고를 우연히 보고 응모한 것이 시작이었다.
수백 명의 지원자 중 상위권에 선발되며 전속가수의 길로 들어섰고, 그것도 부모님 몰래였다.
첫 무대는 얼굴 없는 가수로, 본명 대신 예명 '김상희'를 쓰게 된 이유도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본명 최순강 대신, 가장 좋아하던 글자 ‘희’와 친구들의 이름에서 따온 ‘김’과 ‘상’을 붙인 이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무대 위 인생. '울산 큰애기', '대머리 총각',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같은 히트곡으로 사랑을 받았고, 미니스커트와 뱅헤어 등 파격적인 스타일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선 매우 드문 여성 MC로도 활약하며, 최초의 ‘여학사 가수’라는 타이틀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가수라는 직업이 전통적인 집안에서 환영받던 시절은 아니었다.
김상희가 결혼을 결심했을 당시, 시댁은 무려 600년 전통의 종갓집이었다.
전주 유씨 집안, 제사와 차례는 물론 종부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시되던 곳. 그런 집안에서 가수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시댁 쪽에서는 “가수가 종부가 되면 집안은 누가 챙기냐”며 반대를 했고, 친정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고생스러운 집안에 딸을 보내냐”며 또 반대를 했다.
두 집안 모두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그때, 한 사람만은 조용히 강했다. 바로 김상희의 남편 유훈근이었다.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둘이서 결혼하겠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달리, 단단한 의지로 결혼을 밀어붙인 유훈근 덕분에 두 사람은 결국 부부가 됐다.
1967년 결혼 이후, 지금까지도 단란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KBS 프로그램 <당신의 멜로디>에서였다.
김상희는 이 프로그램의 MC였고, 유훈근은 해당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였다.
이 프로그램은 김상희가 국내 최초 여성 MC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당시 김상희는 MC 섭외를 받았을 때 사표를 각오했다고 한다. 방송국 안에서도 전례 없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를 믿고 밀어붙인 이가 있었고, 그 사람이 바로 현재의 남편이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이어졌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다.
결혼 이후에도 유훈근은 아내의 활동을 적극 지지했다. “눈에 몇 시간만 안 보여도 걱정된다”는 말처럼, 두 사람은 지금도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하고 있다.
유훈근은 김상희를 두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가수,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여전히 존중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김상희의 삶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학자로서의 꿈과, 가수로서의 열정, 종부로서의 역할까지 모두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1980년대에는 남편이 정치적 이유로 망명하며 방송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라디오 DJ, 학장으로 활동을 이어가며 존재감을 지켜왔다.

신중현 사단의 실험적인 무대부터 국제 음악제 참가, 사회적으로 금지곡이 될 만큼 파격적인 음악 도전까지.
김상희는 늘 ‘기존의 틀을 벗어난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들은 어느 하나 쉬운 길이 없었다.
돌아보면, 가수 김상희의 무대는 노래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무대였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지금도 그는 당당하게 노래하고 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