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원짜리 파인 다이닝 먹으러 와서 콜라부터 마시는 사람 가장 싫어해” [푸디人]
미식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는 요즘, 큰 자본 없이 20년 가까이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면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수십만원에 이르는 프렌치 파인다이닝으로 살아남았다면 경기 침체로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대단한 일로 평가되죠.
그렇다고 단순히 살아만 남은 것도 아닙니다. 미식가들의 바이블처럼 여기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2017년부터 올해까지 8년 연속 1스타 레스토랑에 꼽혔으며 2022년에는 미쉐린 멘토 셰프 상을 받기도 했으니 살아남을만 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네요.
주인공은 2006년부터 라미띠에(L’amitie)의 오너 셰프를 맡고 있는 장명식 셰프. 그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와 함께 위스키 푸드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는 스페셜 다이닝을 9월 한 달간 선보여왔습니다. 와인과 프렌치 요리의 마리아주는 일반적이나 위스키라니? 무언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선입견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프렌치 퀴진 1세대 셰프인 그는 왜 이런 도전에 나섰을까요?
먼저 메인 식사 전에 가장 먼저 제공되는 한 입 거리 음식인 아뮤즈 부쉬 입니다. 아뮤즈 부쉬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입(bouche)을 즐겁게 하는(amuse) 음식’이라는 뜻이라네요.
차가운 토마토 콩소메 주스로 먼저 목을 축여 식사의 시작을 알립니다. 맑게 걸러진 토마토 수프 같은데 깔끔하게 목구멍을 넘어갑니다. 디쉬를 살펴보면 갑오징어랑 참외, 샐러리, 초리조를 잘 다져 타르타르를 만들었고 위쪽에는 참외랑 자두를 얇게 슬라이스해서 상큼하게 피클링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새콤하고 차갑게 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장 셰프와 인터뷰를 하면서 ‘왜 차갑지 않고 자극적이지 았나’에 대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의 요리에는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따듯함이 항상 베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인터뷰를 참고해주세요~
토마토 콩소메에 이어 스테비아 토마로로 만든 상큼한 소스가 대게 살과 아주 잘 어울려 인상적이었습니다.
병어와 덕자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등·뒷지느러미의 길이와 모양을 드는데, 병어의 뒷지느러미가 더 길고 그 깊이가 커 ‘낫 모양(L자형)’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일반인이 육안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죠. 또한 덕자가 크기가 큰 병어 쯤으로 현장에서 알려진 것은 덕자의 성장 속도가 병어보다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덕자의 껍질은 다른 생선요리와 달리 바싹하지는 않았는데, 덕자 껍질이 바싹하게 구워지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네요. 속살은 야들야들했습니다.
가니쉬로 케이퍼와 펜네를 잘게 다져 덕자 밑에 깔았고, 소스는 밤퓨레와 버터 밀크, 허브의 일종인 타라곤 오일이 뿌려졌습니다. 타라곤은 프랑스인들이 향신료의 여왕으로 여길 만큼 달콤한 향기와 매콤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일품입니다. 예전에는 왕궁의 정원에서만 재배해 상류사회의 귀중한 약초로도 쓰였는데, 요리에는 주로 잎을 사용한다고 하네요.
먼저 장어는 오미자 소스를 살짝 발라서 겉면을 한번 구웠는데 처음에는 지금까지 장어에서 느껴보지 못한 시큼함에 살짝 놀랐으나 점차 장어와 크림소스와 조화를 이루면서 느끼함을 잘 잡아줘 조화된 맛이었습니다. 전복은 화이트 와인에 두 시간 이상 부드럽게 쪄내 야들야들한 식감이 훌륭했네요.
장어 아래쪽에는 화이트 트러플 소스가 살짝 가미된 허브라이스가 마치 초밥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이 요리의 주인공은 어쩌면 장어와 전복이 아닌 릭 퓨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대파 릭으로 만든 크리미한 소스에는 보리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몰트 위스키의 주재료인 보리로부터 착안해 응용했는데, 발베니 12년 더블우드의 향긋한 스파이시함과 조화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채끝 등심 위쪽에 뿌려진 소스는 그레이비 소스이고 오른쪽 가니쉬로는 옥수수 폴렌타로 만든 콘브레드 입니다. 콘브레드 위에는 노란 비트랑 초당 옥수수,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마말레이드가 올려졌네요. 가니쉬 위로는 스모크 파프리카 파우더가 뿌려져 향을 한 번 더 입혔습니다.
폴렌타는 옥수수 가루이지만 완전히 고운 가루가 아니고 약간 입자감이 느껴지는 가는 모래 같은 상태의 가루입니다. 어느 농도로 만드느냐에 따라 소프트와 하드로 나뉜다고 하네요.
가장 아래쪽에는 사과와 코코넛 소스가 넉넉하게 담겨 있고, 그 안쪽에 분홍색으로 보이는 게 루바브라고 해서 샐러리과 채소로 콩포트를 만들었다네요. 콩포트는 설탕에 조린 요리로 잼보다는 좀 더 과실이 살아 있습니다.
또한 크림치즈와 브리오슈 아이스크림, 말차 케이크가 어우러졌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더 달콤함이 추가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아주 살짝 들었네요.
이 디저트와 발베니 16년 프렌치 오크와 페어링한 이유로는 발베니 16년 프렌치 오크의 달콤한 과일 풍미, 균형 잡힌 플로럴 향, 그리고 산뜻한 피니시를 꼽았습니다.
- 요리를 시작한 계기는?
▶제가 자라던 환경에서 요리를 어릴 때부터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요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경희호전(경희대 호텔경영 전문대)이랑 제가 나온 경주에 있는 경주 호텔 학교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죠. 그 정도밖에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요리사를 직업으로 갖는다는 게 지인 중 누가 있지 않으면 그쪽 길로 가는 게 생소했어요.
(장 셰프는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요리에 흥미를 느꼈고, 군대에 가서 조리사 자격증을 따며 관련 공부를 이어간 뒤 경주호텔 학교에 입학했다.)
- 졸업 후 행보는?
▶1993년 학교에 입학해 1994년부터 호텔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환경은 좋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직장인이고 그 당시에 꽤 연봉이 괜찮은 직장이었죠. 웨스틴 조선이 서울 시내에서 탑2, 탑3 안에 드는 호텔이었으니까요.
- 호텔에서 나온 이유는?
▶호텔에서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근무했어요. 호텔에서 일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요리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더라고요. 호텔은 하나의 큰 조직이고 시스템에 의해서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제가 갈 수 있는 한계점이 있더라고요. 그때 당시만 해도 외국인 총주방장이 있고 이탈리아 레스토랑, 프렌치 레스토랑 이런 데는 다 외국인들이 셰프를 하고 있었어요. 한국인들이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없었죠.
- 라미띠에를 시작한 배경은?
▶1999년에 라미띠에를 처음 만든 사람이 우리 호텔학교 1년 선배(서승호 셰프)였어요. 선배가 압구정에 하루에 한 두 팀 정도 받는 조그마한 레스토랑을 하고 있었고 저와 친분이 있으니까 저한테 인수 제안을 하더라고요. 작은 레스토랑이고 내가 또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 2006년에 인수하게 됐습니다.
- 라미띠에의 매력이 뭘까요?
▶물리적으로도 따뜻한 음식을 많이 내기도 하는데 인테리어도 너무 위압적이지 않아요. 저희가 고급 레스토랑이지만 들어오셨을 때 좀 그런 느낌은 없지 않아요? 샤넬 매장에 들어가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파인 다이닝이지만 편안함을 주고 싶어요.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올 수 있는 곳 말이죠. (라미띠에는 프랑스 말로 ‘우정(L’Amite)’이란 의미다.)
- 라미띠에의 시그니처 요리는?
▶제일 중요한 건 밸런스 같아요. 단품을 제공하는 거라면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어서 손님들한테 적극 추천할 텐데 저희는 코스에 변화를 주는 집이라 ‘시그니처가 뭐냐?’ 그러면 대답하기가 굉장히 곤란해지죠. 메인 주재료도 안심이 들어갈 때도 있고 오리가 들어갈 때도 있고 계속 바뀌는데 시그니처라고 꼽기가 애매합니다.
- 코스 구성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 같은 경우는 점점 맛을 진하게 줘요. 앞에서부터 뒤로 갈수록 그렇게 해야지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거든요. 만약 앞에서 엄청 진한 맛을 줘버리면 혀가 마비됩니다. 저는 파인다이닝 와서 콜라, 사이다를 처음에 마시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혀가 마비되기 때문이에요. 콜라 마신 후 수십만원짜리 파인다이닝 먹으면 당연히 맛없어요. 그거는 단맛이 이미 입안을 지배해버렸기 때문이죠.
- 따뜻한 음식을 많이 하는 이유는?
▶한여름에도 사람들이 차가운 것만 먹으면 오히려 더 속이 안 좋아지잖아요. 단품으로 냉면 한 그릇 먹을 거면 시원한 게 좋죠. 왜냐면 밖에 더운 데 있다가 들어왔으니까요. 그러나 파인 다이닝을 즐기는 분들은 차 타고 와서 바로 식당에 올라오는데, 들어오면 또 에어컨 때문에 추워요. 그래서 메뉴를 정할 때 겨울이나 여름이나 따뜻한 음식 위주로 많이 하는 편이에요.
▶발베니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저희가 음식에 페어링 했는데요. 발베니 16년 프렌치 오크 같은 경우는 디저트랑 맞췄습니다. 위스키나 꼬냑을 디저트에 많이 드시잖아요. 그런 것도 있지만 발베니 16년 프렌치 오크에서 약간 달콤한 향이 좀 더 진하게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디저트랑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전복이랑 장어랑 맞췄어요. 장어를 오미자 청으로 코팅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발효된 느낌이 오크통에서 숙성한 발베니랑 어울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또 장어 밑에 깔린 릭 퓨레에 보리를 같이 넣었어요. 크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살짝 고소함이 입안에서 느껴질 수 있어요. (몰트 위스키의 주재료가 보리인 점에 착안해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 이번 콜라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일반적으로 프렌치 요리랑 와인이랑 많이 하고 독주를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꼬냑을 내놓기도 해요. 위스키는 많이 내놓지 않는 편이죠. 그래서 발베니가 굉장히 좋은 시도를 했다고 저는 봐요. 예전에는 음식을 먹는 데도 룰이 있고 술을 즐기는 데도 룰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게 거의 없어지고 있잖아요.파인 다이닝과 위스키가 협업한다고 하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데 라미띠에에서 발베니 스페셜 다이닝을 드시는 분들은 앞에 샴페인이나 화이트와인 한 잔씩 하시고 위스키를 드시더라고요. 그만큼 벽이 허물어지는 거죠.
- 셰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저는 일단 조리의 학문을 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업해서 성공할 수도 있고 성공이야 어떤 루트든 다 가능하죠. 그러나 학문을 배우지 않고 요리하면 비과학적이 될 수 있고 너무 손맛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어요.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접근하면 접근 자체가 달라지니까 그거는 꼭 필요한 것 같고요.
- 요리엔 끝없는 연구와 변화가 필요한가?
▶곰탕을 예로 들어보면, 제가 곰탕집도 한번 해봤는데 우리나라에서 곰탕을 끓이는 분들은 팔팔 끓여요. 근데 제가 요리를 해본 결과 그렇게 끓이면 육향이 다 날아가 버려요.
프렌치 요리에서는 팔팔 끓이는 경우가 잘 없어요. 저희는 시머링(Simmering, 물의 끓는 점보다 조금 낮은 온도에서 조리하는 방식) 이라고 해서 모든 소스를 처음에 한 번 끓인 뒤 불을 최대한 낮춰서 은은하게 다 끓여내요. 그러면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들을 쭉 뽑아내죠.
곰탕집 가서 한번 보세요. 고기들을 너무 끓여버려서 색깔이 진 회색으로 변해 있어요. 붉은 기가 전혀 없죠. 그게 왜 그러냐면 너무 팔팔 끓여서 그런 거예요. 어떤 곳은 그걸 건져뒀다가 잘라서 넣어주거든요. 저는 그렇게 안 하고 끓인 거에 고기를 넣고 3일 동안 냉장고에 넣어요. 그러면 고기 자체에서 감칠맛이 막 올라오고 육즙을 그대로 머금고 있어요. 냉면집 가면 고기가 퍽퍽하고 진짜 맛없죠? 그거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존 곰탕집들은 그 육향이 뭐냐 하면 물론 고기의 향도 있지만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서 약간 안 좋은 꼬릿꼬릿한 향을 육향이라고 받아들여요. 그게 절대 육향은 아니거든요. 재료를 깨끗이 손질하고 다른 방식으로 끓여내면 그런 꼬릿꼬릿한 맛이 안 나게 돼 있어요. 그런데도 곰탕집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거라 방식을 절대 안 바꿔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다른 방식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손님들도 다른 방식으로 끓여내면 항의를 해요. 왜 여기는 꼬릿꼬릿한 맛이 안 나냐면서.
- 파인다이닝 하면서 힘든 점은?
▶가면 갈수록 직원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은 일 조금 하고 여가를 즐겨야 하는데 이런 곳은 일의 시간도 길고 노동량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직업군에서 멀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구인해보면 예전에는 이력서가 100개 넘게 들어와요. 근데 지금은 20개 남짓 들어오려나, 5분의 1로 줄어버린 거죠. 특히 서비스 직원들은 더 구하기 힘들죠. 이렇게 작은 규모도 연월차, 주 52시간 다 맞춰줘야 하고, 지금 모든 비용이 다 올라가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 내후년이면 라미띠에가 20년이 되는데
▶너무 슬퍼요.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이곳에 제 젊음을 다 쏟은 거잖아요. 그래도 잘 버텼다고 얘기해주고 싶네요.
- 은퇴라는 단어를 느끼고 계신 건가요?
▶올여름에 정말 더웠잖아요. 주방 안에는 음식이 식어서 에어컨도 큰 걸 못 달아요. 디저트 쪽만 작은 걸 사용하죠. 극심한 더위가 오니까 ‘이제 그만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제가 요리를 시작할 때 딱 55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은퇴해서 할 것 없잖아요. 은퇴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 향후 어떤 꿈이 있는지?
▶20년 후에도 라미띠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가 하든 이 브랜드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프렌치 카테고리도 그대로 살아있었으면 좋겠네요. 사라지지 않게 많이들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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