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오일쇼크의 역사

양훈도 논설위원 2026. 3. 23. 15: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양훈도 논설위원

1973년 10월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했다.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터진 것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아랍 산유국들이 서방 석유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배럴 당 3달러 수준이었던 유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유가는 12달러까지 4배나 올랐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크리스마스 무렵 시작되던 겨울방학이 12월 초로 당겨졌다. 한국전력의 거리 방송차가 등장해 "전기절약"을 외쳤다. '에너지 절약은 애국'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거리의 네온사인이 꺼지고, 석유풍로 대신 연탄난로가 다시 등장했다.

당시 세계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이 사태를 '오일쇼크(Oil Shock)'라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석유 가격 충격(Oil Price Shock)'이다.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실제로 이로 인해 세계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낯선 괴물과 맞닥뜨렸다. 한국 역시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물가가 폭등하는 고통을 겪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촉발된 제2차 오일쇼크가 다시 세계를 덮쳤다. 이번에는 석유비축사업과 산업 구조 재편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후에도 석유 파동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1990년 걸프전,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유가 폭등,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모두 석유 공급 불안과 지정학적 갈등이 맞물려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때마다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각국 경제는 흔들렸다.

지금 우리는 제3차 오일쇼크라 불리는 상황 속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는 다시 치솟았다. 그러나 맥락은 달라졌다. 1973년만 해도 석유 위기는 낭만적인 시대의 한 단면처럼 느껴진다. 네온사인을 끄고, 겨울방학을 앞당기며, 연탄난로를 다시 들여놓던 풍경은 공동체적 연대와 생활의 변화로 위기를 극복해보자는, 극복 가능하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오일쇼크는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문명사적 과제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호르무즈는 어떻게 될까? 당장은 최고가격제로 대응한다지만,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세계는? '매드 맥스'처럼 석유 한 통에 목숨을 거는 디스토피아로 성큼성큼? 대전환의 길은 없을까?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