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人워치]25년 전 '스벅 1호점' 바리스타의 최애 메뉴는
"커피 전문점이 생소했던 시절 새로운 문화 제시"
"진한 원두커피·제3의 공간으로 국내 커피 시장 개척"
스타벅스가 국내에 상륙한지 올해로 25년이 됐다. 1999년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시작한 스타벅스의 역사는 우리나라 커피전문점 시장 성장과 길을 함께했다. '커피전문점', '카페'라는 단어마저 생소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스타벅스도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스타벅스는 2004년 100호점, 2016년 1000호점의 고지를 밟았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매장 수는 1937개에 달한다. 매출액도 2016년 1조원, 2022년 2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2조9295억원을 기록, 3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저가 커피전문점의 공세를 받고 있지만 스타벅스는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1위 커피전문점이다.
이런 스타벅스의 25년 역사를 함께한 산증인이 있다. 정운경 스타벅스 남부권역관리팀장이다. 1999년 1호점 이대점의 바리스타로 입사했던 그는 현재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관리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강렬한 첫 커피의 맛
정 팀장이 스타벅스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던 1999년. 아직 학생이었던 그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한 일간지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한국 상륙, 함께 근무할 파트너를 모집합니다"라는 단순한 내용의 명함 크기만한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정 팀장은 스타벅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공고의 '커피' 그리고 '파트너'라는 단어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커피는 정 팀장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좋아하게 된 음료였다. 정 팀장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뉴욕치즈케이크와 원두커피를 제공하는 디저트 서비스가 있었다"며 "바쁜 근무 환경이었지만 직접 드립 커피를 내릴때면 은은한 커피향이 하루의 일상을 평온하게 해줘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직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파트너'라는 단어도 정 팀장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타벅스는 지금도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파트너라고 칭한다. 정 팀장은 "구인 광고에 직원이라는 단어가 아닌 파트너라는 표현이 있어 어떤 회사인지 궁금했다"며 "함께 일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느낌에 '이 회사에 지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이 생애 처음으로 스타벅스의 커피 맛을 본 것은 면접 과정에서였다. 당시 스타벅스는 서울 압구정동 주택가의 한 가옥을 빌려 사무실로 사용했다. 정 팀장이 면접을 본 곳도 이 주택이었다. 그는 1960년대 지어진 저택을 그대로 활용한 신규 매장인 '장충라운지R점'과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면접 중 그는 강하게 로스팅된 원두를 드리퍼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그 소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당시 받았던 커피는 아주 진한 색깔에 맛까지 강렬해 깜짝 놀랐다"면서 "정말 인상 깊고 강렬한 맛이어서 한번 맛을 보면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자뎅', '도토루'와 같은 원두커피 전문점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연한 드립커피를 취급했기에 정 팀장에게 스타벅스의 커피 맛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정 팀장은 "면접을 본 후에도 지원자들에게 로스팅한 원두를 비닐팩에 넣어 선물로 줬다"며 "스타벅스가 브랜드 이미지를 잘 유지해나가고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이런 곳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채용 과정에는 약간의 우여곡절도 있었다. 1호점 이대점의 오픈이 예정보다 다소 지연되면서 최종 합격자 일부가 이탈해 면접을 여러 차례 다시 진행해야했기 때문이다. 정 팀장도 면접을 세 번이나 봤다. 이후 스타벅스의 미국 본사 담당자가 직접 한국으로 와 이론과 실습 교육을 진행했다. 정 팀장과 신규 입사자들을 약 두 달간의 교육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1999년 7월 27일 1호점인 이대점을 개점했다.
새로운 커피 문화
오픈 당시의 기억은 정 팀장에게도 오래 남은 기억 중 하나다. 정 팀장은 "당시 한국에서의 커피는 주로 인스턴트 형태로 소비됐고 커피숍도 드물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과 분위기도 다양했다"고 말했다.
어떤 고객들은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에 매장을 냈다는 소식에 호기심으로 매장을 방문했다. 이미 외국에서 스타벅스를 경험했던 고객들이 스타벅스 한국 상륙 소식을 반가워하며 시간을 내서 찾아오기도 했다. 이대 교수들도 자주 찾아왔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매장에서 종이 신문이나 잡지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제3의 공간'에 딱 맞는 모습이었다.
모든 고객이 원두커피에 생소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 팀장은 "자뎅, 도토루에서 원두커피를 경험했던 고객들도 계셨기에 스타벅스의 진한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비교하며 경험을 즐겼던 고객들도 생각난다"고 말했다.
생소한 메뉴가 많다 보니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파트너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많았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는 "일부 고객이 '그란데' 사이즈를 '그랜드'라고 읽거나 '캐러멜'을 '카메라'로 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며 "다른 원두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드립커피인 '모카 커피'를 기대하고 '카페모카'를 주문했다가 너무 단 맛에 놀라는 고객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스타벅스 원두커피의 색과 진한 맛에 놀랐다. 쓴 맛 때문에 우유나 시럽을 추가해 부드럽고 달콤하게 즐기려 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때로는 컨디먼트바에서 우유를 추가하다가 커피가 넘치기도 했다. 정 팀장은 "이런 고객들에게는 특별히 컵의 공간을 남겨달라고 주문시 요청이 가능한 점, 컨디먼트 바에 비치된 설탕을 넣거나 추가 금액을 지불해서 시럽을 추가할 수 있는 점 등 나만의 커스텀을 즐길 수 있다고 안내해 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스타벅스의 '콜링'과 '마킹'도 신기한 문화 중 하나였다. 마킹은 주문을 받는 파트너가 해당 주문과 커스텀을 컵에 기입하는 것을 말한다. 주문을 받은 파트너는 음료 제조 파트너에게 주문받은 음료를 입으로 직접 말하고, 다른 파트너가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복창하는 것이 콜링이다.
현재는 라벨 프린터가 도입돼 주문을 스티커 형태로 출력해 컵에 붙이면서 사라진 문화지만, 당시에는 파트너들이 주문을 모두 외워서 소리치는 것을 고객들도 직접 볼 수 있었다. 가끔 발음이 꼬여서 콜링을 잘못하는 바람에 파트너들끼리 웃었던 기억은 정 팀장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혁신 그리고 파트너
스타벅스는 1999년만 해도 고급, 고가 커피를 파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커피 대중화를 이끈 주역이 됐다. 실제로 스타벅스 오픈 이후 25년간 국내 커피전문점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정 팀장은 "현재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 전통적인 커피 메뉴 외에도 다양한 커피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25년 전과 다르다"면서 "스페셜티 커피,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 등 다양한 메뉴가 인기를 얻고 있고 커피를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콜링과 마킹을 대신한 모바일 주문 및 결제 서비스 '사이렌 오더'가 대표적이다. 사이렌오더를 개발하면서 고객이 몰리는 시간에 더 빠른 주문 처리가 가능해졌고, 이는 스타벅스가 매장을 확대하고 다양한 콘셉트의 매장을 열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현재 일부 매장에서 주문이 집중되는 시간에 진동벨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혁신도 시도했다. 스타벅스 1호점인 이대점도 25년간 두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2019년 개점 20주년을 맞아 리저브 매장으로 탈바꿈 했고, 최근에는 25주년을 맞아 '1호점 특화 매장'으로 다시 한 번 변신했다.
여러 변화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제3의 공간과 헤리티지다. 정 팀장은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집이 아닌 곳이지만 내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공간, 또 친구를 만나거나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볼 수 있는 제3의 공간"이라며 "나만의 시간을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고객이 과거를 회상할 수 있으면서도 미래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스타벅스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도 스타벅스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스타벅스는 모든 직원을 '파트너'로 칭하고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정 팀장의 사내 영어 이름은 '이자벨'이다. 모든 직원들이 그를 이자벨이라고 편하게 부른다.
특히 스타벅스에는 파트너의 성장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정 팀장의 삶의 모토는 '어제보다 성장하는 오늘'인데, 이런 삶의 원동력을 스타벅스가 제공한다. 정 팀장은 "스타벅스는 파트너라면 누구나 스스로 자기계발 할 수 있는 학습 자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배움과 성장할 기회요소가 많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나 또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5년간 스타벅스에서 근무한 정 팀장의 '최애' 메뉴는 무엇일까. 그가 예전에 가장 즐겨 마시는 커피는 '소이 캐러멜 마키아또'였지만 현재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료로 꼽힌다.
정 팀장은 "어떤 간식과도 어울리면서도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빨리 제공되다 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최근 건강을 신경 쓰는 문화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인기와 연결돼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메리카노와 잘 어울리는 메뉴는 다양하고 폭이 넓다. 그 중에도 정 팀장은 김밥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어울리는 메뉴로 꼽았다.
그는 "여러 커피를 마시다가도 결국 종착지는 아메리카노인 것 같다"면서 "한 모금 쫙 마시면 오전에는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해보자는 느낌, 또 오후에는 오늘 하루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정 팀장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스타벅스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정 팀장은 "스타벅스는 지금 다양한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문화 예술과의 접목한 새로운 공간으로도 변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커피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하고 청년층과 기성세대까지 세대를 연결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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