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피치] 투수의 투쟁심을 나타내는 투심(feat. 김선우)

조회 13,9382023. 3. 27.

일본의 우승으로 끝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MVP를 받은 오타니 쇼헤이만큼은 아니더라도, 관계자의 시선이 쏠린 투수가 지바롯데의 사사키 로키였다. 지난해 최고 164km/h에 이르는 포심 패스트볼(평균 158.3km/h)과 웬만한 투수의 포심보다 빠른 포크볼(최고 150km/h)을 앞세워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는 등 일본야구계의 젊은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WBC에서 사사키가 던진 공 가운데 싱커로 분류되는 것도 적지 않았다. 사사키는 포심과 포크볼,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를 던지는 데도. 이것은 사사키의 포심의 회전축이 20도 정도 기울어, 투심 회전을 하기에 던지지 않는 싱커로 분류되는 공이 나온 것이다.

회전축 등을 개선하면 164km/h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발상을 바꿔 투심 회전을 더 살리는 방향도 생각해 봄직하다. 속도보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투구의 한 방편이니까. 이처럼 최근에는 똑바로 오는 포심보다 투심이나 커터 등과 같이 공 움직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

두산 시절, 머니피치에게 자신의 투심에 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김선우 해설위원. (사진=머니피치)

KBO리그에서도 무빙 패스트볼을 잘 던진 투수는 여럿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투심 패스트볼을 던진 투수로 손꼽히는 게 김선우 MBC SPORTS+ 해설위원이다. 김 해설위원은 휘문고와 고려대를 거쳐 미국에 진출해 보스턴과 몬트리올, 콜로라도 등에서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다가, 2008년 KBO리그로 돌아왔다. MLB 통산 118경기에 출장해 13승 13패 평균자책점 5.31을 기록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으로 두자릿수 승리를 거두는 등 에이스로 활약했다.

김 해설위원에 MLB와 KBO리그에서 큰 족족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주 무기인 투심 패스트볼이 있었기 때문이다. 머니피치는 ‘김선우표 투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가 싱킹 패스트볼을 처음 배운 것은 미국에 있을 때다. 그때 내 공은 빠른 편이었다. 2001년 6월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 포심 패스트볼이 95마일, 153km/h정도가 나왔으니까. 근데 마이너리그에서 바로 올라와서 불펜으로 한두 이닝을 던졌는데, 그 공이 쭉쭉 맞아 나갔다.

그러다가 8월 19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허용했다. 상대는 데이비드 세귀였다. 볼카운트 1-0에서 몸쪽으로 제대로 들어갔는데, 그것을 가운데 담장을 넘겨버리는 홈런을 쳐버리는 거다. 깜짝 놀랐다. 그때, ‘아, 포심만으로는 힘들구나!’라고 느꼈다. 그래서 이후 무심으로 던졌다. 즉, 공에서 실밥을 잡지 않고 던진 거다.

실밥을 안 잡고 던지니까, 속구처럼 똑같이 던져야 하는 데 힘을 더 주거나 팔을 비틀게 되더라. 왜냐하면, 실밥을 안 잡고 던지니까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공이 빠질 듯한 느낌이 드니까. 사실은 그립을 보면 알겠지만, 엄지가 실밥을 잡아주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는데도, 사람의 심리란 게 이전과 다르게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불안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는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안을 느껴, 무의식 중에 실밥 있는 곳으로 손가락이 가게 된다. 손가락이 실밥 쪽에 가면 팔을 자연히 비틀게 되고, 그러면 팔에 무리가 간다.

투심도 변화구가 아닌 속구처럼 던지는 게 중요

투심은 손끝, 검지에 힘이 약간 들어가야 하는데, 나도 그것을 바로 하려니까 자신이 없었다. 100%로 던지지 못하고 처음에는 80%, 90%의 힘으로 던졌다. 어쨌든 기대한 땅볼이 유도되고 하니까 자신이 생겨서 포심 던질 때보다 더 세게 던질 수 있게 됐다. 이것이 투심을 던질 때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나는 무심으로 잡고 그냥 속구처럼 던진다. 그러면 팔 동작 등에 전혀 무리가 없다. 그 대신에 투심으로 공을 채기 때문에, 변화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비틀거나 하면 그 순간 공의 위력은 없어진다.

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젊은 투수에게는 투심을 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심이 힘이 있는데, 구태여 공에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포심의 힘이 떨어졌을 때, 공에 작은 변화를 줘서 던지는 것만으로 투수의 생명은 늘어난다. 즉, 젊은 투수가 포심에 투심까지 던지면, 공에 힘이 떨어지는 순간에 쓸 수 있는 ‘변화’라는 무기가 없게 된다. 미리 당겨 쓴 거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속구가 맞아 나가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투수에게 권한다.

투심을 던질 때, 타깃은 포수의 왼쪽 무릎을 본다. 거기를 보고 속구보다 더 세게 던져야 한다. 투심은 떨어지는 공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투심은 포심보다 회전이 더 적은데, 그것만으로도 타자는 변화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투심을 변화구라고 생각하고 던져서는 안 된다. 포심을 던지는 것처럼 똑같이 던져야 한다. 또 그렇게 던졌을 때, 몸쪽으로 살짝 파고들면서 더 위력적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떨어뜨리려고 해서 팔을 비트는 순간,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위력은 사라진다. 결국, 투심은 포심처럼 던져야 하고, 오히려 더 세게 던져야 한다. 이것이 좋은 투심을 던지는 나만의 요령이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망운드 위에서 강한 투쟁심을 발휘했다. (사진=두산 제공)

내가 처음 투심을 배울 때, 참고한 투수는 보스턴 레드삭스 동료였던 데릭 로다. 그는 싱킹 패스트볼 하나로 최고의 마무리 투수는 물론이고, 선발로 전환한 뒤에는 21승을 올리는 등 아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의 투심은 다른 투수들처럼 실밥을 잡고 던진다. 그런데 나는 실밥을 잡으니까 자꾸 팔을 비틀게 되더라.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잡아서 던져보다가, 무심으로 잡으니까 나한테 딱 맞았다.

현역 시절, 나에게 투심을 어떻게 던지느냐고 물어보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내 그립을 보여줬는데, 다들 “그렇게 잡고 던질 수도 있느냐”라며 깜짝 놀란다. 이것저것 다해봤지만, 나한테는 무심이 딱 맞았다. 이것이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가 이렇게 잡는다고 다 그렇게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그립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체인지업도 원심으로 던진다. 누구는 이렇게 잡고 누구는 저렇게 잡는다고 해서 나도 해봤지만, 나한테는 안 맞았다. 그래서 나한테 맞는 그립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무심으로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해봤다. 거기서 실밥을 하나만 걸쳐본 게 원심 체인지업을 던지게 된 거다. 결국, 원심 체인지업은 나만의 것이 됐다. 이것은 투심도 커터도 모든 구종이 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던지느냐가 아니다. 나만의 것,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내는 거다.

현역 시절, 한 경기에서 90% 이상을 투심으로 던질 때도 있었다. 이것이 잘 떨어지는 날은, 무수한 땅볼이 나온다. 나는 투심을 몸쪽으로도 바깥쪽으로도 던진다. 또 나에게 투심은 속구다. 물론, 구종 분석에서는 포심이 아닌 투심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냥 속구다.

투수와 타자와는 타이밍 싸움

사람들은 싱커는 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안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공을 떨어뜨리기 위해 던지지 않는다. 그냥 낮게만 던지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타자 앞에서 살짝 떨어진다. 또 안 떨어져도 상관없다. 투심이 똑바로 온 거니까, 거꾸로 투심을 기다린 타자의 타이밍이 어긋난다. 투심인데 회전은 그렇지 않으니까, 타자는 또 다른 변화구로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나만의 요령이며 운영이다.

사람들은 내가 빠른 공만 줄곧 던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빠른 공이라도 그 속도에 약간씩 변화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타자의 타이밍을 뺏을 수 있다고 본다. 투수와 타자와의 승부는, 결국 타이밍 싸움이다.

이 타이밍을 뺏기 위해 체인지업이나 포크볼을 던질 수도 있지만, 나는 2~4km/h 정도 차이를 내며 약간 떨어지거나 옆으로 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타자는 똑같은 속도로 느끼지만, 실제로는 2~4km/h의 차이가 나면 그것만으로도 타이밍은 어긋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아주 조금이지만, 떨어지거나 휘면 더더욱 배트 중심에 맞히기 어렵다.

물론,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항상 빠른 공만 던지니까, 빠른 공에 대비한 타자의 타이밍에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 공이 배트 중심에 맞은 것은 빠른 공만 던져서 그런 게 아니라 정확하게 제구가 안 됐기 때문은 아닐까. 제구가 안 되어서 내 투구가 실패한 것이지, 투구 스타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야구는, 타자도, 투수도, 누군가의 흉내를 내면서도 자기 것을 찾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사진=두산 제공)

내가 투심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워싱턴 내셔널스에 있던 2005년이다. 5월 말에 복귀한 뒤, 6월 4일 플로리다 말린스전이다. 3-3 동점이던 4회 초 1사 1, 2루에서 구원으로 등판했다. 그런데 상대 타자가 미겔 카브레라였다. 어떻게든지 막아야 해서 초구로 투심을 던졌다. 땅볼을 유도해서 병살 처리하려고. 93마일 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몸쪽에 스트라이크를 지켜보더라. 2구도 몸쪽 투심을 던졌고, 또 지켜봤다. 볼카운트 0-2에서 3구도 몸쪽에 투심을 결정구로 던졌다. 이것을 카브레라가 헛스윙해서 삼진을 잡아냈다. 천하의 카브레라를.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삼진을 잡아야만 할 때는 잡아야 하지만, 투구의 기본은 맞혀 잡는 거로 생각한다. 공 대여섯 개를 던져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것보다 공 한두 개로 땅볼 아웃을 잡는 게 더 낫다는 거다. 물론, 그것이 안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투구 수는 한두 개가 더 늘어날 뿐이다. 투수는 누구나 삼진을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버렸다. 왜냐하면, 긴 이닝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발 투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승리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긴 이닝을 소화하며 경기를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투심은 그런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구종인 거다. 내가 오랫동안 야구를 할 수 있게 해 준 공이며, 마운드에서 자신 있게 던질 수 있게 해 준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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