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장난’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에 이런 법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예비후보(현 대구시장)의 '돼지 흥분제' 사건(대학생 시절 같은 하숙집 남학생들이 약물을 이용한 준강간 범죄를 공모하였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화제가 되었을 때, 어느 연세 지긋한 남성의 어떤 말을 듣고 뜨악한 적 있었다.
앞서 언급한 돼지 흥분제 사건은 같은 하숙집 동료들끼리 계획하고 실행된 범죄였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예비후보(현 대구시장)의 ‘돼지 흥분제’ 사건(대학생 시절 같은 하숙집 남학생들이 약물을 이용한 준강간 범죄를 공모하였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화제가 되었을 때, 어느 연세 지긋한 남성의 어떤 말을 듣고 뜨악한 적 있었다. 대략 이런 말이었다. “그때 일을 지금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돼. 그땐 그게 별일 아니었어. 더한 일도 많았어.”
지독한 가해자 논리다.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과장한 것도 그들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해온 것이다. 반면 가해자 집단 바깥의 사람들, 특히 피해자에 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행위가 잔인하고 끔찍하기만 하다. 그러니 ‘그땐 별것 아니었다. 지금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라는 식의 말은 과거에 가해자 집단이 가진 태도를 옹호하는 말에 불과하고, 더 중요하게는 과거에 피해자 측이 가졌을 고통을 여전히 무시하고 폄훼하는 말에 불과했다.
‘딥페이크’ 성범죄(특정인에 관한 사진·영상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합성·가공하는 행위)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언젠가 비슷할 얘기를 듣게 될지 모른다.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져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사진과 영상을 심각한 범죄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때 또 누군가는 짐짓 현재의 가해자들을 비슷한 논리로 옹호할지 모른다. 지금이야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땐 아니었다고. 그냥 ‘사진 좀 합성한 거 정도’로 치부했다고. 역시나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해자 집단의 논리일 뿐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세상이 그것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점에 비로소 거대해진 것이 아니다. 원래, 처음부터, 심각했다.
공감은 법보다 훨씬 빨라야 한다
어떤 부류의 범죄행위들은 그것을 끔찍하고 잔인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집단을 기반으로 자행된다. 과거에는 술이나 약물을 이용한 준강간 범죄도 그랬다. 앞서 언급한 돼지 흥분제 사건은 같은 하숙집 동료들끼리 계획하고 실행된 범죄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장난삼아 한 일”이라고 했다. 그가 무려 국회의원 시절에 펴낸 자서전에 버젓이 그렇게 쓰여 있다.
N번방 사건, 딥페이크 범죄도 비슷하다. 그러한 사진과 영상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집단을 믿고 계획되고 실행되었으며, 또 번성했다. 그런 점에서 그 사진·영상을 만들어 유포하고 소비한 사람들과 그것들을 심각한 범죄물로 여기지 않은 사람들은 함께 거대한 가해자 집단을 이룬다.
그러한 범죄와 자신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자 한다면, 관련 행위에 대하여 올바른 평가부터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평가는 마땅히 피해자 측의 마음을 가늠하고 공감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대단히 높은 수준의 공감능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아도 그 범죄의 타깃이 된 사람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조차 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을지 모른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되거나 유포된 음란물은 소지하거나 시청만 해도 범죄가 된다. 2020년 5월에 도입된 이른바 ‘N번방 방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4항)’의 영향이다. 딥페이크 범죄물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항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다.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법은 항상 늦다. 공감은 그보다 훨씬 빨라야 한다. 사진·영상의 존재 자체가 당사자에게 가하는 끔찍한 고통에 대한 공감은 지금 바로 할 수 있고, 지금 바로 해야 한다.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