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도 랩 많이 부르거라”…스왜그 넘치는 추모 공연
서무석 할머니의 장례식
멤버들, 영정 앞에서 힙합
“아프다는 말도 않고 가네”
마지막 편지 읽으며 눈물
“무석이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 무석이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
대구 달서구의 한 전문장례식장에서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로 구성된 경북 칠곡의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대표곡인 ‘에브리바디해피’가 울려퍼졌다. 할머니들 앞에는 뒤집어쓴 힙합모자와 헐렁한 티셔츠, 거미 모양의 금속 장신구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서무석 할머니(87)의 영정이 놓였다.
‘우리’ 대신 ‘무석’을 넣은 랩 공연은 서 할머니를 위한 추모 공연이다. 서 할머니는 지난 1월 림프종 혈액암 3기로 3개월 이상 생존하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8월 그룹 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이다. 할머니는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지면 그룹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걱정에 가족을 제외하고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열린 ‘한글주간 개막식’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고 이틀 뒤인 6일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1년간 함께 전국을 무대로 공연을 해왔던 그룹 멤버들도 이때 서 할머니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됐다.
서 할머니와 25년 지기 친구이자 그룹 동료인 이필선 할머니(86)는 공책에 쓴 편지를 영정 앞에서 읽었다. 그는 “아프다는 말도 안 하고 혼자 그렇게 가버리니 좋더냐”며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좋아하는 랩 많이 부르고 있거라. 보고 싶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혈액암 판정을 받자마자 할머니의 래퍼 활동을 만류했었다. 하지만 랩을 하며 아이처럼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슴앓이만 해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장녀 전경숙씨(65)는 “진단을 받은 뒤 보호 차원에서 어머니의 공연을 매번 따라다녔다”며 “너무 즐거워하시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한글을 배우고 삶에 대한 시를 쓰고 그 시를 랩으로 바꾸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평생 누리지 못했던 천국 같은 1년을 보내고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대환영을 받고 가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칠곡군 지천면 황학골에서 태어난 서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등 시대적 상황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이후 칠순이 넘어 칠곡군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가난과 여자라는 성별을 이유로 교육받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시를 썼다. 이후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로 활동하며 각종 방송과 국가보훈부의 ‘보훈아너스 클럽 위원’으로 활동했다. 서 할머니의 발인은 17일 오전 8시30분에 엄수된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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