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와 약탈의 프랑스 시위, 왜 이렇게 변질됐나 [뉴스추적]

미스터동 [뉴스추적]은 복잡한 이슈의 흐름을 파악하며, 뉴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풀어갑니다. 쟁점의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가 공포로 물들었습니다. 밤마다 헬기가 떠서 탐조등을 비추고, 경찰이 시민들의 신분증을 검사하며 밤 11시 이후 통행을 막고 있죠. 파리 도심에 폭력 시위 때문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는데요.

디올과 루이비통, 롤렉스 같은 명품 매장 유리창이 산산조각 난 채 털렸습니다. 약탈당한 매장에서 훔친 물건들이 도난방지 태그나 매장 가격표가 그대로 붙은 채로 현지 중고거래 사이트에 헐값 매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시작은 평화 시위였습니다. 고등학생들이 학교 환경을 개선해 달라며 거리로 나왔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프랑스 전국 상점 3,000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피해액만 우리 돈 1조 8,000억 원에 달하는 프랑스 현대사 최악의 폭동으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이 불길은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대륙 전체로 들불처럼 옮겨붙고 있습니다.

낭만이 사라진 파리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최악의 밤이 찾아오다

과거 왕들의 거리이자 황제들의 응접실로 불렸던 파리 중심부인 1구는 프랑스 자부심이 응축된 공간입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튈르리 정원, 방돔 광장을 끼고 세계 최고 명품 의류와 귀금속 브랜드, 최고급 호텔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죠. 1871년 튈르리 궁전이 불에 탔던 파리 코뮌 사태 이후로는 대규모 소요 사태가 거의 없었던 안전지대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불타고 남은 자동차와 자전거 잔해, 깨진 유리 조각, 뜯겨 나간 보도블록과 도로 표지판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SNS를 보면, 한인들이 안전을 위해 이곳에 왔는데 여기까지 폭력 시위가 번졌다며 놀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매캐한 연기와 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콩코르드 광장과 오페라 가르니에 벽면에는 무정부주의(Anarchisme)를 뜻하는 알파벳 A 낙서가 그려져 있었죠.

명품 거리로 꼽히는 생토노레가와 방돔 광장, 샹젤리제 거리 상황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디올 매장 출입문은 부서졌고 롤렉스와 루이비통, 랄프로렌, 구찌 매장 유리창도 모조리 깨진 상태였습니다.

피해는 파리 명품 거리에서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남서부 리모주에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모두 견뎌낸 문화재이자 143년 역사를 지닌 리모주 시청 시계탑과 지붕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전소됐습니다. 보르도에서는 지방 행정관 관저가 습격당했고, 리옹에서는 지역 관광청 건물이 방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현지 중고거래 플랫폼에 장물로 의심되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립글로스 묶음이 단돈 15유로에 올라오는가 하면, 매장에서 훔친 그대로 도난방지 태그가 붙어 있는 축구 유니폼이 나왔습니다.

프랑스 상무장관과 프랑스 소매유통업연합은 지난 주말 사이 전국에서 피해를 본 상점이 최소 3,000곳에 육박한다고 집계했습니다. 프랑스 상공회의소는 직접 피해를 본 업체만 2,000곳 이상이라고 추산했는데요. 한 신용평가사에 따르면, 경제적·보험 손실 비용이 10억~12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조 4,890억 원에서 최대 1조 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시위 불똥은 세계 최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까지 멈춰 세웠습니다. 연간 900만 명, 하루 약 3만 명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은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밀고 출입구를 봉쇄하면서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평화롭던 학생 집회는
왜 화염병과 약탈이 난무하는
시가전으로 변질됐나

<BBC>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프랑스 현대사상 가장 최악의 무질서 사태 중 일부가 펼쳐졌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한 걸까요.

시작은 한 달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열악한 학교 시설과 교육 수준 저하에 불만이 쌓여 있던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가 내년도 공교육 예산안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러자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평화롭던 학생 시위에 기름을 부은 결정적인 사건이 터집니다.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파리 북쪽 생투앙로몬에서 경찰이 시위 도중 14세 소년 얼굴을 향해 초근거리에서 최루탄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경찰은 소년과 말다툼을 벌이다 충돌했는데, 남성 경찰관이 최루탄 발사기로 밀치고 여성 경찰관이 곤봉을 휘두르자 소년이 경찰 허벅지를 발로 찼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이 동료가 위험에 처했다며 2미터 거리에서 얼굴에 최루탄을 쏜 겁니다. 이번 일로 턱뼈와 치아를 크게 다친 소년은 수술을 받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한 15세 소년은 경찰이 쏜 섬광탄에 맞아 왼손을 잃는 절단 사고를 당했고, 또 다른 16세 소년은 고무탄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알랑송에서는 경찰관이 젊은 여성 시위자 목을 뒤에서 조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여러분, 고등학생 시위대는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 시위에 나섰는데, 경찰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경찰 과잉 진압’으로 분노가 들끓자, 그동안 고물가와 생활비 폭등에 신음하던 일반 시민들과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프랑스 노동총연맹, 그리고 과거 반정부 시위를 이끌었던 노란조끼 운동 세력까지 집회에 대거 합류했습니다.

이때 프랑스 정부와 경찰이 분노의 크기를 오판했는데요. 당초 프랑스 정부는 17일 시위 참가자를 10만~20만 명 수준으로 예상하고 경찰력을 전국에 1만 명만 배치했습니다.
지난 2018년 노란조끼 시위 당시 투입된 경찰이 6만 명을 넘겼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죠. 하지만 이날 실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는 정부 추산으로만 50만~55만 명, 주최 측 추산으로는 무려 80만 명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특유의 이른바 폭력 시위 학습 효과도 사태를 키웠습니다.

프랑스 사회 일각에는 평화적인 집회만으로는 정부와 언론 관심을 끌기 어렵고, 때려 부수는 과격 시위를 해야만 정부가 양보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데요. 8년 전인 2018년 노란조끼 시위 당시에도 시위대가 샤넬과 디올 등 명품 매장을 약탈하고 공공 기물을 파손하며 폭동으로 번졌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로부터 유류세 인상 철회와 대규모 지원금이라는 항복을 받아냈죠.

영국 <가디언>은 “프랑스 국민 일부는 기물 파손을 포함한 폭력적인 시위가 권력층에 신호를 보내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1968년 5월 혁명 등의 역사를 거치며 거리 집단행동이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굳어진 겁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8일 전국에 생중계된 긴급 대국민 담화에서 강경 대응을 천명했습니다.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 “약탈과 파괴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면서 이번 폭력 사태 책임을 “소수의 극좌 성향 선동가들에 수많은 불량배들이 가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프랑스 총리는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과 레알 상업지구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니스 그리고 ▲북부 릴·두에·와티니·드냉 등에 야간 통행금지령과 미성년자 통행금지, 낮 시간대 공공집회 금지라는 초강수를 발동했습니다. 현재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까지 열어뒀습니다.

그러나 노란조끼 측과 노조는 오는 24일 토요일에 대규모 2차 시위인 ‘2막’을 열겠다고 예고했고, 다음 달인 11월 5일에는 전국 총파업까지 선언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24일 시위에 경찰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것은 물론 군 병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파리 경찰은 전국에서 석유나 가스가 든 병·캔, 폭죽 소지를 일시 금지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인근에서는 헬멧 같은 보호장구 착용도 전면 금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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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시위대에
당근을 뿌리던 마법의 지갑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프랑스에서 이런 대규모 파업과 시위는 익숙합니다. 그때마다 프랑스 정부는 어떻게든 위기를 넘겼는데, 왜 이번에는 구체적인 민생 지원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강경 진압과 통금령에만 매달리는 걸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돈이 없습니다.

이제는 시위대를 매수할 돈도 바닥났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를 두고 내놓은 말입니다.
<로이터> 역시 “과거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를 잠재울 돈이 마법처럼 생겨나곤 했다”고 꼬집었죠.

1968년 봄, 당시 68혁명으로 불리는 5월 혁명이 프랑스를 뒤흔들었습니다. 3월 대학생 시위가 경찰 강경 진압을 계기로 격화하더니 5월에는 1,00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총파업에 나서며 정권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죠. 이때부터 거리에서 시위가 터지면 재정을 동원해 돈으로 급한 불을 끄는 방식이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전체 임금을 12.9% 올리고 최저임금은 단숨에 35%나 인상해 줬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임금 인상은 소비와 물가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후 프랑스의 물가상승률은 4.3% 수준으로 높아져 1년 만에 협약에 따른 임금 인상 효과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물가만 올리고 실질적인 체질 개선은 못 한 겁니다.

하지만 한 번 맛본 재정 살포라는 달콤함은 끊기 힘들었습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 성장기였던 ‘영광의 30년’이 막을 내렸는데도, 프랑스 정치권은 구조 개혁 대신 빚을 내서 복지를 늘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1981년 집권한 프랑스 좌파 대통령은 법정 퇴직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대폭 낮추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복지국가를 키웠습니다.

이후 우파 정부가 1995년 공무원 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을 37년 6개월에서 40년으로 늘리려 했지만 약 3주간 이어진 총파업에 굴복해 백기를 들었고요. 2006년에도 청년 고용을 늘리겠다며 26세 미만 근로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법을 만들었다가 거센 시위에 밀려 시행을 포기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도 돈 풀기 공식은 그대로 반복됐습니다.

2009년 공공 부문 및 복지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터지자 당시 대통령은 26억 유로 규모 사회복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18년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 때, 마크롱 대통령은 유류세 인상을 철회한 것은 물론 특별 보너스 지급과 소득세 면제 등을 담은 100억 유로, 우리 돈 약 15조 원 규모 긴급 경제사회 대책을 꺼냈습니다. 시위가 터지기만 하면, 그것도 과격 양상이 보이면 돈을 뿌렸다.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68혁명 직후인 1974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52년 연속으로 단 한 해도 재정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5.1%로 EU 평균인 3.1%를 훌쩍 넘겼고, 올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5.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999년 유로존 출범 당시만 해도 독일과 비슷했던 프랑스 국가부채 비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격차가 벌어져, 지난해 기준 GDP 대비 115.6%(EU 평균 81.7%), 올해는 약 119% 안팎까지 치솟을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걷을 수도 없습니다. 프랑스 GDP 대비 세금부담률은 44%로 OECD 평균인 34%를 한참 웃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더 무서운 건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 투자자들이 프랑스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최근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달 초 장중 4.9937%를 찍으며 연 5% 선을 위협했고요. 폭동 직후인 19일에는 4.93%, 20일에는 4.96%까지 치솟았습니다. 2002년 7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죠. 유럽 내 안전자산이라고 하는 독일 10년물 국채와 금리 차이도 1.46%p에서 1.54%p까지 벌어졌는데, 이는 유럽 재정위기 당시 수준입니다.

진짜 심각하긴 하네, 이런 생각이 들 타이밍인데요. 나라가 망했다고 했던 그리스의 국가부채 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 146.1%입니다. 프랑스(115.6%)보다 높은데요.

그런데 현재 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프랑스가 연 4.8~4.9%대인 반면, 그리스는 연 4.3%대에 불과합니다. 국채 금리가 높아진다는 건,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얼마나 신뢰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는 건데요. 프랑스가 과거 구제금융까지 받았던 그리스보다 더 비싼 이자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는 처지가 된 겁니다.

아니 그러면 돈 좀 덜 써야 하는 거 아니냐,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이 드실 겁니다. 없는 사람이 돈을 펑펑 써서 생기는 문제니까요. 그래서 마크롱 정부는 긴축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고등학생들이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이것이 폭동으로 번졌습니다. 아이고 알겠다 알겠어 그럼 돈 좀 쓸게! 라고 하자니,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는 구조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 외나무다리에 갇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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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발작과 이민자 갈등
유럽 대륙 전체가 들끓다

시선을 프랑스 국경 밖으로 넓혀보면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화염병과 돌, 물대포와 최루탄이 등장하는 시가전이 지금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알바니아 등 유럽 주요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 외신에서는 프랑스의 폭력 사태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경제·사회적 불만과 직결돼 있다고 진단했는데요.

유럽 전체를 폭발시킨 가장 직접적인 방아쇠는 바로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살인적인 에너지 물가 폭등입니다.

지난달 유로존 연간 물가상승률은 3.8%로 1년 전(2.2%)보다 크게 뛰며 2023년 에너지 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스페인은 9월 물가상승률이 5%에 달했고 벨기에(4.5%), 이탈리아(4.2%), 프랑스(3.4%), 독일(3.3%) 모두 고물가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료비와 난방비 상승률은 공포스러운 수준입니다. 9월 기준 유로존의 지난 1년간 에너지 가격 상승률은 18.9%를 기록했는데요. 프랑스는 21.3%, 이탈리아는 22.6%, 벨기에는 24.4%나 치솟았습니다.

세부 품목으로 들어가 보면 스페인에서는 1년 새 연료 가격이 28%, 전기요금이 11.4% 올랐고, 벨기에에서는 경유 가격이 44.1% 폭등했으며, 독일에서는 난방유 가격이 무려 74.9%나 치솟았습니다.

문제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대외 변수 때문에 유럽 개별 국가 정부가 손쓸 방법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여기에 고물가 고통이 각국의 주거난, 저임금과 결합하면서 유럽 대도시들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시위, 유럽 전역으로 확산.

여기에 유럽 사회를 가장 날카롭게 쪼개고 있는 뇌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민자 갈등.

EU 27개 회원국의 외국 출생 거주 인구는 2015년 4,429만 명에서 2025년 6,472만 명으로 10년 새 2,043만 명, 비율로는 46.1%나 급증했습니다. EU 바깥에서 태어난 거주자만 따져도 2025년 4,6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4%를 차지합니다.

가뜩이나 집이 부족하고 학교 교사와 병원 의료 인력이 모자란 대도시에 이민자가 몰리면서 기존 주민들의 반발과 반이민 정서가 폭발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이번 프랑스 약탈 사태를 계기로 국내외 우파 진영은 ‘이민자발 치안 붕괴론’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약탈 현장에 이슬람 교도들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류만 그대로 남아 있다는 영상까지 퍼졌는데요. 프랑스 국민연합 마린 르펜 의원은 “우리는 수십 년간 통제되지 않은 이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우리에게 쓸 돈이 부족한가, 과도한 복지 예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복지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가. 왜 우리 사회는 위험해졌는가, 왜 우리는 소매치기와 강도, 폭력에 대한 공포가 커졌는가. 이건 이민자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가 불타고 있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은 통제 불능의 대규모 이민 때문”이라고 규정했는데요. “파리는 머지않아 무슬림 도시가 될 것”이라며 국경 폐쇄를 촉구했죠. 이때 헝가리 총리와 폴란드 총리도 엄격한 이민 정책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아직 확언할 수 없더라도, 유럽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디언>이 분석한 유럽 31개국 최근 총선 결과에서 강성 우파 정당 득표율은 10년 전 약 10%에서 최근 23% 이상으로 두 배 넘게 뛰었죠.

여러분, 프랑스를 바라보며 강 건너 불구경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우리의 미래를 보고 있다는 불편함이 드는데요.

프랑스가 겪고 있는 저성장과 고령화, 연금 개혁 지체에 따른 세대 갈등, 그리고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숙제가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고민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 개혁을 미루고 당장의 갈등을 돈으로만 덮었을 때 미래 세대에게 어떤 청구서가 날아오는지, 불타는 파리의 밤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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