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아로마테라피가 과학일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4. 10. 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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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로마테라피(향기요법)가 국내에 본격 소개된 지 한 세대가 지났다. 아로마테라피는 식물에서 추출한 오일, 정유를 흡입하거나 몸에 발라 심리 또는 생리 효과를 보는 민간요법이다.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알게 모르게 아로마테라피 컨셉을 지닌 제품을 써봤을 것이다. 아로마마사지처럼 본격 아로마테라피 체험을 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향기(aroma)가 요법(therapy)이라는 용어와 더해져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치료 효과가 있을까. 

● 치료 효과는 향기와 무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일단 향기 성분(분자) 가운데 일부가 정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분자의 향기 때문이 아니라 살균작용 등의 다른 특성 때문이다.

향기 분자가 비강의 후각수용체에 달라붙어 후각피질로 신호를 전달해 심리적인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 직접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작용해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한다. 아스피린처럼 작은 분자 약물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감기에 걸리면 대접에 뜨거운 물을 담고 유칼립투스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수건을 뒤집어쓰고 증기를 들이마신다(이때 점막을 자극할 수 있어 눈을 감아야 한다). 유칼립투스의 주성분인 유칼립톨(시네올)은 항미생물 특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뜨거운 물에 유칼립투스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수건을 뒤집어쓰고 증기를 들이마시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wikiHow 제공

올 초 학술지 '플로스원'에는 아로마테라피의 대표적인 정유인 라벤더 오일이 아토피성 피부염(이하 아토피) 증상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밝힌 일본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라벤더 오일은 아토피용 화장품의 주성분으로 널리 쓰일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는 불분명했다.

아토피에서는 피부 표면의 신경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가려움에 민감하다. 공기오염 등 외부 자극으로 피부에서 신경영양인자인 아르테민 발현이 높아지며 이런 변화가 유도된다. 연구자들은 배양 세포를 아토피 상태로 만든 뒤 라벤더 오일을 넣었을 때 아토피 억제 효과가 나타남을 확인했다.

그 뒤 라벤더 오일의 주성분인 리날롤과 리날릴아세테이트로 실험한 결과 리날릴아세테이트가 강력한 아토피 억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라벤더 오일이 아토피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 역시 향기 때문이 아니라 주성분이 피부에 직접 작용한 결과다. 이걸 향기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로마테라피에 쓰이는 대표적인 정유인 라벤더 오일은 라벤더의 꽃대를 수확해 수증기증류로 얻는다. 보라색 꽃이 핀 라벤더. 위키피디아 제공

● 향기 정보가 통증 뉴런 활성 억제

물론 말 그대로 정유의 향기가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보고도 많다. 예를 들어 라벤더 오일은 진정 효과가, 오렌지 오일은 각성 효과가 있다. 다만 이 효과가 요법이라는 용어를 쓸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람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크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자생 식물이라 라벤더 향이 친숙한 유럽인들에 비해 평생 모르고 살다가 중년이나 노년에 처음 라벤더 향을 접한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는 오히려 거부감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향기를 통한 치료 효과가 꽤 있는 현상이 있다. 바로 진통 효과로 라벤더 오일을 비롯해 몇몇 정유의 향을 맡으면 통증이 완화된다는 보고가 많다. 게다가 사람뿐 아니라 생쥐 같은 동물도 정유 향기를 맡으면 진통 효과를 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생쥐 뒷발을 굵은 털로 찌르거나 적외선을 쪼여 열을 가할 때 움츠러드는 역치 변화를 통해 측정한다. 점차 강도를 올리며 자극할 때 반응하는 시점이 늦춰지면 진통 효과가 있다고 본다.

이 경우 발에 정유를 바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약물(진통제)로서 작용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코로 들어온 냄새 분자를 후각피질이 향기로 해석한 게 통증을 완화할 정도로 강력한 심리 효과를 낸 것일까. 아니면 비강 또는 폐의 세포 표면에서 냄새 분자가 흡수돼 혈관을 타고 뇌의 통증 지각 부위에 도달해 영향을 미친 것일까(이 경우 분자가 진통제). 

학술지 '셀리포츠' 10월 22일자에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 중국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놀랍게도 결과는 위의 두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새로운 경로였다. 후각신경구로부터 라벤더 오일의 향기 정보를 받은 조롱박피질(Pir. 후각피질의 한 영역)의 특정 뉴런(신경세포)이 활성화되면서 통증 지각에 관여하는 뇌섬염(IC)으로 정보를 보내 통증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라벤더 오일 향기를 맡으면 진통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메커니즘은 모르는 상태였다. 최근 중국 연구자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라벤더 향기로 조롱박피질의 글루타메이트성 뉴런가 활성화돼 뇌섬염의 가바성 뉴런을 활성화하고 그 결과 염증성 통증에 과활성화되는 뇌섬염의 글루타메이트성 뉴런을 억제해 진통 효과를 내는 경로는 발견했다. 셀리포츠 제공

연구자들은 생쥐의 뒷발에 염증 유발 물질인 CFA를 투여해 통증에 민감하게 만들었다. CFA 투여 생쥐들은 평소에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 수준의 기계적(굵은 털로 찌르는) 또는 열적(적외선을 비추는) 자극에도 뒷발을 움츠렸다. 그런데 0.1% 농도로 희석한 라벤더 오일을 옆에 둬 향기를 맡게 하자 통증 역치가 올라갔다. 그만큼 진통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뉴런의 신호전달 경로를 추적하는 기법을 써서 이 경로를 규명했다. 라벤더 오일을 흡입하면 조롱박피질 앞쪽에 분포한 글루타메이트성 뉴런이 활성화돼 뇌섬염까지 뻗은 축살돌기 말단에서 글루타메이트를 분비해 가바성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그 결과 뇌섬염 가바성 뉴런이 신경 흥분 억제 물질인 가바를 분비하면 가까이 있는 뇌섬염 글루타메이트성 뉴런의 활성을 억제한다. 바로 통증 신호를 전달에 관여하는 뉴런이다. 그 결과 통증에 둔감해진 것이다.

이번 실험으로 정유의 향기 성분(분자)이 비후각적으로 직접 작용하는 게 아니라 후각을 통해 작용하면서도 뇌의 통증 관련 뉴런에 영향을 미쳐 생리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 밝혀졌다. 이는 지금까지 정유의 향기를 통한 효과,좁은 의미의 향기치료는 심리의 영역으로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다.

만일 진통 효과뿐 아니라 진정이나 각성 등 다른 효과에서도 이런 식의 신경 경로가 밝혀진다면 아로마테라피의 '아로마'가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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