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떠나는 해외여행···특별한 서울 박물관 기획전 3선
해외여행을 갔을 때 가장 많이 들르는 곳 중 하나가 박물관이다.
박물관 투어는 역사와 문화를 총망라할 수 있는 ‘끝판왕’ 여행법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여행지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심적으로도 그곳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쉽게 떠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쉽다. 마음은 이미 비행기를 탔지만 몸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하니 말이다.
마침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획전들이 서울의 여러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스트리아, 미국, 독일 등 나라도 다양하다. 무엇인가 했더니 우리나라와의 수교를 기념하는 기획전이었다. 우리나라가 오스트리아와는 수교 130주년, 미국과 독일과는 수교 14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각 기획전에서 어떤 전시를 진행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박물관으로 향했다.
서울 박물관들이 진행하고 있는 기획전 3개를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월 25일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개최했다.
합스부르크는 약 600년 간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가문이다. 1273년 루돌프 1세(Rudolf I, 1218~1291)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이후부터 1918년 카를 1세(Karl Ⅰ, 1887~1922)를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왕정이 몰락했을 때까지 한 가문에서 유럽을 다스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큰 영향력을 떨쳤다. 30년 전쟁, 스페인-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예술을 향한 대단한 열정으로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 루벤스(Rubens, 1577~1640) 등 유수한 화가들을 후원했다. 이후 이들의 수집품들은 빈미술사박물관에 모여 전 인류의 자산이 되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회화뿐 아니라 공예품, 갑옷, 의복, 태피스트리 등 빈미술사박물관의 귀중한 소장품들이 모여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특별전 입구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티켓 매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특별전이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붐볐다.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계도를 비롯해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강대국 반열에 오른 과정을 소개하는 구역이 있었다. 15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오른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864~1867)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체크하며 돌아보니 더 많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는 부제목마다 각각의 특징을 담고 있었다.
먼저 1부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에는 프라하에서 수집활동을 전개한 루돌프 2세(Rudolf II, 1576~1612)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2부 ‘최초의 박물관을 꾸미다, 티롤의 암브라스 성’은 오스트리아의 서쪽 티롤 지역에서 수집활동을 한 페르디난트 2세 대공(Ferdinand II, 1578~1637)의 수집품을 소개했다. 갑옷과 진귀한 소재로 만든 다양한 공예품들을 통해 황제의 취향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특히 전시 중간마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소개하는 영상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린이들도 전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당일 전시를 관람하던 꽤나 많은 어린이들이 미디어 기기를 통해 집중해서 설명을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부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에서는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Leopold Wilhelm, 1614~1662)이 수집했던 수준 높은 회화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역시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1656)’였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가 새침한 표정으로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4부 ‘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에서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 시대를 따라가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78)’를 만났다. 많은 스캔들과 함께한 그는 인기도 최고였다. 제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1773)’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을 찾는 묘미가 있었다.
5부 ‘걸작을 집대성하다, 빈미술사박물관’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1830~1916)의 시대를 볼 수 있었다. 후반부에서는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1837~1898)의 초상화를 통해 19세기 말 비극적인 황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였다. 오스트리아가 선물을 받은 이후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지금껏 소중히 보관해온 물건이었다. 관람을 마치며 오스트리아와 조선이 주고받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만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양승미 학예사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지역을 다루는 만큼 전시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실제로 루돌프 2세의 공간에서는 당시 궁정 악장이었던 필리프 드 몽테의 미사곡을,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루벤스의 작품을 만나는 공간에서는 바로크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양 학예사는 “꽃 정물화를 모은 꽃의 공간을 주목하길 바란다”면서, 생기가 넘치는 꽃부터 시들어 떨어진 꽃잎을 모두 한 화폭에 그린 브뤼헐 1세의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1608년 경)’을 관람 포인트로 짚었다. 관람객들은 모든 인생은 유한하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정신을 느끼고 공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은 3월 1일까지 운영된다.
국립고궁박물관 : ‘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갓든 이약이’
국립고궁박물관은 미국과의 수교 140주년을 지난 10월 14일부터 특별 전시를 열고 있다. 특별 전시 ‘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갓든 이약이’는 상투 틀고 갓을 쓴 조선의 외교 사절이 19세기 후반 멀고도 낯선 땅 미국에서 고군분투한 외교 활동에 대해 조명한 전시다.
1882년, 한국과 미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수교를 맺었다. 이후 조선은 미국에 외교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와 주미공사들을 파견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미조선공사관에서의 업무와 생활상을 담은 국가등록문화재인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을 소개한다.
초입부터 어두운 전시장을 들어가니 마치 공사관 건물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테리어부터 구성까지 관람객들의 집중을 이끌어냈다. 보빙사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인공지능으로 복원한 보빙사와 주미공사들의 사진을 보다보니, 조선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먼 길을 나선 그들이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별 전시는 팸플릿부터 특이했는데, 전시장 중간에 주미공사관의 접견실인 ‘객당’이 재현되어 있어 팸플릿에 도장도 찍을 수 있었다. 옛날 신문처럼 생긴 팸플릿에 고풍스러운 도장을 찍으니 마치 미국 공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밖에도 다양한 사료와 사진, 영상 자료를 보다보니 전시가 끝이 났다.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내용을 전시로 접하니 흥미롭고 유익했다. 임지윤 학예연구사는 특별 전시의 관람 포인트로 “공간과 체험”을 들었다. 외교사절들과 함께 전시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연출한 인테리어와 영상물, 체험 요소들은 관람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또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을 강조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초대주미공사 일행 중 서기관인 이상재가 정리한 공무 자료 모음집,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이다. 자료들을 통해 미국에서의 생활, 업무 수행의 어려움 등을 짐작해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 전시는 12월 13일까지 운영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한국독일미술교류사 : 어두운 밤과 차가운 바람을 가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기념 전시는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독일 간의 100여 년 미술 교류사를 조명한다. 전시는 박래경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1950년대 독일유학 시절 아카이브와 배운성(1900~1978), 백남준(1932~2006), 안규철(1955~), 뮌(1972~)과 같이 독일을 배경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독일인 한국학자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가 집필한 ‘한국미술사(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 1929)’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 도착해 작은 전시실로 들어서자 백남준 등 이름을 들으면 아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보였다. 큰 전시는 아니지만 한국과 독일 사이에 오간 미술 교류사에 대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었다.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는 다른 전시들과는 달리 인물과 작은 사건들에 초점을 맞춰 세심하게 기록된 자료들이 인상 깊었다.
김정현 학예사는 이번 기념전을 “내용과 형식이 전혀 다른 작품을 한 자리로 모으는 전시”라고 말했다. 배운성, 백남준, 안규철, 뮌은 ‘한국과 독일 간 미술 교류’라는 제목이 아니라면 모이기 어려운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분단과 통일,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점을 기념 전시의 차별성으로 꼽았다.
미술자료박물관의 특징을 살려 단순한 작품 소개보다는 풍부한 자료와 아카이브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더 많은 맥락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큰 영감을 이끌어낸다는 점도 기념전의 매력이라 밝혔다.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의 기념 전시는 1월 27일까지 운영된다.
이나한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