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 '차별없는' 노동조합이 등장했다

김예리 기자 2023. 4. 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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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은진 'MBC 차별없는 노동조합' 초대 위원장
'방송지원직' 전환된 방송작가 6명, MBC에 노조 꾸려
"차별과 꼼수, 선례 돼선 안 돼…다른 직군에 문 열어둬"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달 MBC에 새로운 노동조합이 들어섰다. 방송작가 6명이 꾸린 노조다. 조합원들은 MBC에서 이른바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노동자성을 인정 받은 작가들이다. MBC로부터 해고된 뒤 1~2년 간 법적 다툼 끝에 승소하고 복직한 3명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노동자성이 인정된 3명이다. 이름은 'MBC 차별 없는 노동조합'이다.

차별은 진행형이다. MBC는 지난해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작가들과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직전 '방송지원직' 직군을 신설했다. MBC는 기자PD 등 방송제작 노동자를 일반직(정규직) 직원으로 분류한다. 촉탁직, 전문직 노동자도 직원으로 분류된다. 방송작가들은 방송제작이 아니라 이를 지원하는 직군이자 직원 외 노동자가 된 셈이다.

'MBC 차별없는 노조'는 이를 두고 MBC의 '안간힘'이라 표현한다. 미디어 비정규직들이 노동권 다툼을 시작한 가운데, 방송사들이 이들을 동등한 노동자로 인정하는 사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MBC로부터 법인카드부터 휴가, 상여금, 임금체계와 진급 가능성까지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새 노조로 모인 이유다.

▲MBC 뉴스투데이 작가들은 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에서 부당해고와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뒤 MBC의 사과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상암MBC 앞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 27일 노조위원장을 맡은 김은진 방송작가를 만났다. 그는 지난 2021년 MBC 낮뉴스 프로그램 <뉴스외전>에서 일하다 부당해고를 당한 뒤 노동위원회에서 거듭 부당해고를 인정 받고 복직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김은진 노조위원장은 “회사와 싸워 복귀한 뒤 여기서 노조까지 만들면, 조금만 잘못해도 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MBC의 꼼수를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의 첫 사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노조 설립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노조 사무실 요청을 시작으로 회사에 평등한 처우를 요구할 계획이다. 아래는 일문일답.

- 노동조합 설립을 결심한 배경은?

“회사와 싸워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복귀했지만, '작가에겐 죽어도 정규직은 아니다'라는 회사의 강력한 의지를 느꼈다. 조직도만 봐도 우리는 '붕 떠 있는 존재'다. MBC는 우리를 지금까지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상설 직군 가운데 유일하게 '직원'이 아니다. 방송지원직이라는 직군 자체가 작가의 노동이 '방송제작'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일을 하는데 사소한 것부터 나뉘어 있다. 프리랜서 못지 않은 차별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가 조용히 있으니 그 차별을 너무나 당연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조 설립을 촉발한 계기가 있나?

“예컨대 법인카드 문제다. 지난해 하반기 방송작가들이 (소송을 통해) 복귀한 뒤 <뉴스투데이> 작가들은 본래 월 20만원짜리 법인카드를 받았다가 10만원으로 줄었고, 이마저 없어졌다. 센터장 재량이라지만 부서 내 작가들만 법인카드를 반납해야 했다. <뉴스외전> 경우 애초부터 기사를 쓰는 인원 중 작가들에게만 법인카드를 주지 않았다. 만약 섭외한 게스트가 책을 냈으면 그 책을 사 봐야 하는데, 작가들은 개인 비용을 낸다. 그건 상징이었다. '너희들에게는 무엇이든 똑같이 제공하지 않겠다'라는 것. 회사에 (목소리 내기) 조심스러워 하는 작가들마저 차별을 넘어 인격적 모독을 느낀 계기다.

이외에 작업용 노트북부터 휴대폰까지 작가들은 지급에서 제외된다. MBC '직원'들은 상여금과 명절비를 지급받고, 호봉에 따라 급여가 오른다. 하지만 '방송지원직' 작가들엔 연봉제를 적용하고, 인상분은 통보한다. 상여금도 명절비도 없다.”

▲방송작가유니온과 권리찾기유니온은 2021년 12월22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MBC 뉴스외전 작가 2명을 비롯한 '방송노동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 방송지원직으로 전환된 작가들이 언론노조 MBC본부에 가입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노조를 만들기 전, 조합원들이 언론노조 방송작가유니온을 통하거나 직접 전화해 MBC본부에 가입문의를 했다. '아직 받아들일 계획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기존 노조는 우리 고충을 알지 못하니 대변하기 어려움이 있겠다고 느꼈다. 우리 권리 이야기를 따로 할 필요가 있었다.”

- 근로계약을 체결했다지만, 방송작가들은 지금도 회사를 상대로 취약한 지위에 있다. 노조 세우는 데 난관은 없었나.

“물론 두려움이 있다. 부당해고된 작가들은 회사와 소송 끝에 들어온 입장이기에 안 그래도 조심스러움이 있다. '내가 여기서 노조까지 만들면, 조금만 잘못해도 잘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 소리 내지 않으면 스스로 차별받기를 자인하는 꼴이 된다. 방송작가들이 싸워 사상 처음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인정 받았다. 그런데 MBC와 지상파 방송사들은 편하게 방송작가들을 '직원 외' 인원으로 치는 꼼수를 쓴 셈이다. 그런 첫 사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를 용인하면 다른 방송사들도 그 첫발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 노조 명칭이 'MBC 차별없는 노동조합'이다. 노조 출범 보도자료에는 “MBC가 방송지원직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차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의미인가.

“MBC에선 공채로 들어온 정규직 외에 MBC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 차별 받는 노동자가 있다면 연대하고 목소리를 같이 내기 위해, 다른 직군에도 노조 문을 열어뒀다. 방송작가 외에도 방송 진행 FD, 프리랜서 PD도 있다. 얼마나 많은지는 우리조차 모른다.”

- 회사 반응은?

“반응은 없다. 조합원이 노조 게시판 사용 방법을 문의하는 메일을 보내고, 사무실도 요청할 계획이다. 같은 일을 하는 기자와 차별 없이 법인카드를 지급할 것을 요청할 것이다.”

▲MBC 뉴스투데이 작가들은 지난해 7월14일 MBC가 건 부당해고 구제신청 인정 판정 불복 소송에서 승소했다. MBC는 이들을 방송지원직으로 복직시켰고, 이들을 비롯한 6명의 작가들은 새 노동조합을 꾸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노조를 출범하며 “공채가 아니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능력이 아니라 학벌과 출신을 먼저 따지는 방송사의 적폐 문화”를 바꾸자고 했다. 사례가 있나?

“공기처럼 느낀다. 경력직 기자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 공채 출신이 아닌 기자들에게는 출신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에 비해 정규직도 아닌 이들은 어떨까. 제가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돌아왔을 때다. 제가 '프리랜서'로 일할 땐 잘 지냈던 사람들이 인사를 받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기자들은 제가 프리랜서일 당시 제게 '어떻게 작가들은 매일 대본을 쓰고 섭외하느냐, 나는 못한다'고 했다. 상급자에 기자의 두 배인 작가 업무를 줄여달라 호소할 때였다. 작가의 업무 과중을 알지만, 개선 의지는 없다. 작가는 실력이 좋고 일을 잘해도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공채 제도를 존중한다. 그렇지만 프리랜서인 작가들도 프로그램마다 실력을 검증받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작가들은 매 프로그램마다의 채용 절차를 거쳐야 하고, 능력이 없으면 프로그램이 주어지지 않는 전문직이다. 아무 때나 잘리기 때문이다.”

- 박성제 전 MBC 사장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방송작가와 부당해고 소송은) 작가 노동자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며 기준을 마련하고 싶었다”며 “정규직으로 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답변한다면?

“앞뒤 안 맞는 변명이다. 대형 로펌에 의뢰해 부당해고 작가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소송 중에도 다른 작가들을 해고한 게 기준을 마련하기 위함일까. MBC 측은 해고된 작가를 놓고 '작가 사명감이 부족해 업무 지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거짓 증언까지 했다. 노동부가 지상파3사 방송작가들의 근로자성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MBC는 많은 작가들을 잘랐다. 그의 임기에 잘린 대다수 작가는 소송을 포기했고, 두 명만 내내 노예처럼 일한 것이 억울해 법적 싸움을 시작했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어렵다'는 건 회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처럼 부리려는 회사의 입막음용 얘기다. 우리는 MBC 소속 노동자는 노동자로,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로 대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방송사들은 다른 사업장들의 비정규직 문제를 조명해왔다. 많은 작가들이 비정규직 관련 방송을 제작하면서 고뇌를 느낀다고 말한다.

“방송사의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회사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문제를 비분강개하면서 고발한다. 그 바로 옆에서, 자신과 같은 업무를 하는 작가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로 여기는 시각이 갖춰진 것 아닐까. '이건 회사의 시스템이니까'라는 식이다.

MBC <뉴스외전>에서 일할 때, 과중한 업무 개선에 대한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리자인 담당 앵커에게 '딴 데 말고 여기를 취재하시라, 구조가 이상하지 않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굳이 먼데 가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당신의 바로 옆에 작가가 있다. 그랬더니 '저희가 그런 문제를 다 다룰 순 없다'고 하더라.

MBC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지상파와 보도채널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동료 작가의 경우, 밑그림부터 섭외, 대본부터 진행 작업까지 작가가 말 그대로 떠먹여주는 구조다. 조금만 잘못하면 탓은 작가에게 돌아온다. 작가들도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 위를 향해 시끄럽게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종합일간지와 방송작가 부당해고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기자가 제 얘기를 쭉 듣더니, '솔직히 이 기사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희 회사도 이런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말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판례가 쌓이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패소하고도 인력 채용 구조를 바꾸지 않고 되레 판정 취지에 반하는 '꼼수'를 쓰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방송사의 두려움도 있을 거다. 워낙 많은 인력을 그런 식으로 쓰고 있으니까.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반성 없이 '한 명 (정규직화) 시켜주면 나머지도 해줘야 한다'는 생각 아닐까. 방송사가 노동자를 상대로 배보다 배꼽이 큰 재판을 하는 이유도 그일 것이다. 1명을 정규직화하면 들어가는 돈보다 소송 비용이 훨씬 크다. 하지만 방송사는 그만큼 싸고, 함부로 해고할 수 있는 인력이 너무 좋은 것이다. 단기간에 싼 값에 재능 뽑기를 해왔다. 아직도 모집하면 재능이 반짝이는 이들이 싼값에 모인다. 이 사람들은 몇년 하다 힘들어 나가 버린다. 이걸 놓지 않으려는 것 아닐까.”

MBC 측은 28일 통화에서 'MBC 차별없는 노조'와 대화할 의향에 대해 “당연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 회사로 들어온 것이니 필요한 부분에서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부서 내 방송작가들에게만 법인카드를 지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사원이 법인카드를 갖지는 않는다. 부서 필요에 따라 지급했다가 제작비 등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이지 특별한 사정이나 운영에 차이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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