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난도 모랄레스 감독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선수 시절 국가대표 세터로 활약했고 이후 지도자로 전향해 푸에르토리코 여자대표팀을 이끌며 세계 랭킹을 16위까지 올려놓은 경력을 갖고 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024년 3월 그를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세대교체와 재도약’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맡겼다. 계약 조건도 2+1년이었고, 올해 성적을 바탕으로 연장 여부를 평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2025년 9월, 임기 2년 차를 채우지 못한 채 결별을 맞았다.

모랄레스 감독의 운영 방식에는 분명 장점이 있었다. 그는 선수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며 팀 내 신뢰를 쌓으려 했고, 대표팀 내 권위주의적 문화를 완화해 선수들이 보다 자유롭게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부분은 국내 지도자들과 차별화된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도자의 본질적 과제인 성적에서는 낙제점을 받았다. 올해 VNL에서 1승 11패, 참가국 중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결국 챌린저컵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달 열린 코리아 인비테이셔널에서도 1승 4패에 그치며 반등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물론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 한국 여자배구는 장신 미들 블로커 자원이 부족하고, 강력한 스파이커도 드물다. 세터 포지션은 경험이 부족하고, 리시브 라인은 국제 무대의 강한 서브에 자주 흔들린다. K리그와 대표팀 사이의 성장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고, 대표팀 훈련도 단기 대회 준비에 치중돼 있어 근본적인 기량 향상을 도모하기 힘들다. 이런 구조적 약점을 고려하면, 모랄레스 감독의 한계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대한배구협회는 재평가를 통해 그의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다가올 2026년에는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 등 굵직한 대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협회는 곧 공개 채용 절차를 통해 새 감독을 선임할 계획이다. 문제는 단순히 누가 감독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이다. 전술적 다양성과 위기 상황 대처 능력, 선수 성장 프로그램, 그리고 클럽과 대표팀의 연계가 필수 조건이 되어야 한다.
모랄레스 감독과의 결별은 결국 성적 부진이 낳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질문은 남아 있다. 한국 여자배구가 이번 결정을 단순한 인사 교체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이를 계기로 근본적 변화를 시작할 것인가. 2025년의 실패를 교훈 삼아 2026년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어떤 감독을 앉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이름값보다 실질적 능력, 단기 성적보다 장기적 재건을 선택해야 할 때다. VNL 강등은 아픔이지만, 동시에 한국 여자배구가 다시 일어설 마지막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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