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Futures] SSG 랜더스 박지환

10년의 기다림 끝에 틔운 새싹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왕조 시절의 정근우 이후로, 완벽한 주인을 찾기 위해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이가 거쳐 갔던 인천 SSG 랜더스필드의 2루. 그리고 2005년 야수 1차 지명으로 팀의 기둥이 된 최정에 이어 19년 만의 야수 1차 지명을 받은 박지환이 이제는 그 자리의 주인이 되려 한다. 병살을 잡고서는 생기발랄하게, 역전 적시타를 치고서는 강렬하게, 팀의 선배들에게는 수줍게 다가가는 이 팔색조 신인 야수는 이미 팀과 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0.411의 타율과 고졸 신인 최다 기록인 7연타석 안타, 첫 홈런과 첫 끝내기 등 잊을 수 없는 6월을 보낸 SSG 랜더스 박지환을 만나봤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Seohyeon Kim Location Incheon SSG Landers Field

요즘 어디서든 박지환 얘기예요. 인터뷰하느라 매일 바쁠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6월 26일 인터뷰)
맞아요. 요즘 들어서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주변에서도 제가 인터뷰하는 영상을 잘 봤다는 연락도 자주 받아요.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영상을 캡처해 보내면서 평소 제 모습하고 다르다고 놀리더라고요. 애들이랑 있을 때는 편하게 얘기하는데, 인터뷰할 때는 아무래도 긴장하니까 다른 모습이 보이나 봐요.

복귀 시리즈에서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 씨를 봤죠? 경기 전에 ‘Supernova’를 부르는 장면이 포착됐어요.
사실 부산으로 이동할 때 버스 안에서 그 곡을 들으면서 갔거든요. 그래서 몸을 푸는데 익숙한 노래가 나오니까 저도 모르게 흥얼거렸나 봐요. 버스에서 들었던 노래를 부르셨던 분이 시구하셔서 놀랐습니다. 실제로 보니까 진짜 예쁘시더라고요. (수줍)

#모든 게 처음이라 소중해서

6월 11일 KIA전, 끝내기 친 날을 떠올려 볼까요. 8회에 역전하고 9회에 다시 따라잡혔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9회에 따라잡혔을 때 제 결승타가 날아갔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은 없었어요. 어차피 준 점수는 지난 상황인 거고 앞으로 딱 한 점만 내면 이길 수 있는 거니까요. 선배님들이 끝내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내게 왔으면 하는 마음보다도요?) 저한테 그런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딱 한 점이니까, 앞에서 먼저 선배님들이 끝내주셨으면 했죠. 그런데 기회가 마침 제게 와서 이길 수 있게 돼 기뻤어요.

그날 끝내기 이후 최정 선배가 ‘얘는 됐다, 된다’라고 했다던데 직접 들었나요?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쓱튜브 영상으로 그렇게 말씀해 주신 걸 봤어요. 최정 선배님이 제 얘기를 그렇게 좋게 얘기해 주실 줄 몰라서 영광스러웠어요. (평소 최정은 어떤 얘기를 해주는지 궁금해요.) 선배님은 제가 타석에 들어갔다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 그 타구는 제가 노려서 친 건지, 아니면 그냥 날아오는 공을 보고 판단해서 친 건지 물어보세요. 그래서 그 상황에 맞게 얘기하면 늘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고요. 격려를 많이 해주세요.

잘 된 경기는 자주 돌려보는 스타일이라고 들었어요.
매 경기가 끝나면 제 타석을 다 돌려보기는 해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타격 자세가 조금씩 바뀌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성적이 좋고 잘 풀릴 때도 지난 타석을 돌려보고, 안 풀릴 때도 꾸준히 보려고 하고 있어요. 비율로 따지자면 잘 칠 때 영상을 6~70% 정도 보는 것 같아요. 제가 타격이 잘 풀릴 때는 타이밍도 좋고 여러 가지 면에서 완벽했기 때문에 잘 맞은 게 아닐까 싶어서요. 우선 잘 쳤던 타석을 더 큰 비율로 보긴 하는데, 그래도 잘 안 풀렸던 경기도 보는 편이에요. 타격 자세를 일관성 있게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소 포털 사이트에 ‘박지환’ 이름 검색도 많이 해보나요?
저보다는 누나가 자주 검색해서 보고 어떤 소식이 있는지 알려줘요. 한 번씩 저도 검색창에 제 이름을 쳐보긴 하는데, 많이 하지는 않고요. (지금은 배우 박지환 씨가 먼저 뜨잖아요.) 제가 감히 배우 박지환 씨보다 먼저 나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야구팬분들이 절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강화에서 더욱 강해져

부상 복귀 직후 6월 9일 사직 롯데전에서 바로 안타와 홈런이 나왔죠. 오랜만에 실전 복귀였는데 긴장되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복귀하게 돼서 1군으로 올라갈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첫 타석에 안타가 나오는 순간에 그 걱정과 긴장감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복귀 이후로 잘 풀린 건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때 사직 야구장에서 홈런볼은 어떻게 돌려받았나요?
구단 관계자분들이 홈런볼을 잡으신 분께 제 사인볼을 드리면서 홈런볼을 받아 주셨더라고요. 공을 잡은 분은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고 하셨는데, 다시 한번 제게 홈런공을 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돌려받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어요.

JTBC ‘최강야구’에서 U-18 주장으로 마운드 위 김택연을 다독이는 모습이 재밌었어요. 2루에서 만난 이대호 선배가 뭐라 해도 기죽지 않고 계속 소리 지르던 거 기억나요?
기억나죠. 그 상황에서 택연이한테 제 목소리가 들렸는지 잘 안 들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르고 봤어요. 야구장이 무척 시끄러워서 소리를 크게 질러도 마운드에 있는 택연이한테 들릴지는 알 수 없었죠. 우선 기죽지 않고 계속 파이팅을 넣었던 건, 저희가 다음 이닝 공격이 남아있었고 돌아오는 타선도 무척 좋았거든요. 그래서 수비 이닝만 잘 막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크게 소리를 냈죠. (이대호 선배가 무섭진 않았나요?) 사실 이대호 선배님 목소리도 잘 안 들렸어요. 야구장 안이 워낙 시끄러워서요. (웃음)

그런 걸 보면 훗날 팀의 주장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원하는 선배 상(像)이 있나요?
저는 저희 팀에 무척 좋으신 선배님이 많아서, 그냥 선배님들을 보면서 다양한 모습을 공부하고 있어요. (특별히 배우고 싶은 선배의 모습이 있나요?) 한 분만 꼽기가 힘들 것 같아요. 좋은 선배님이 워낙 많이 계셔서요. 선배님마다 얘기해주시는 것도 전부 다르거든요.

그럼, 한번 임의로 골라볼게요. 키스톤 콤비인 박성한에게는 어떤 걸 배우나요?
성한이 형이랑은 수비할 때 사인을 많이 맞추고 있고, 아무래도 제가 신인이다 보니까 옆에서 상황에 맞게 설명해 주고 조언해 주세요. (격려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한유섬 선배는요?) 유섬 선배님께서는 항상 자신감을 채워주세요. 제가 못할 때나 잘할 때 가리지 않고 칭찬을 무척 많이 해주시고 다독여주세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제가 지금 못한다고 해서 아무도 저한테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지금 기죽어 있을 필요가 없다’, ‘워낙 잘하고 있는 거니 너답게 해라’, ‘자신 있게 해라’라고 얘기해 주세요.

병살 타구를 잘 잡거나 좋은 수비를 보여준 후에 유독 행복해 보여서 그런지, 보는 사람까지도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크게 좋아했던 장면이 화면에 잡혔는데, 그게 화제가 돼서 신기했어요. 그럴 때는 워낙 아슬아슬한 상황이기도 하고, 공이 저한테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딱 예상한 대로 공이 온 거예요. 그래서 생각대로 수비를 끝낸 게 재밌어서 더 기뻐하는 표정이 나왔던 것 같아요. 또 저희 팀 내야수 선배님들께서 수비를 다 잘하세요. 그래서 더블 플레이도 쉽게 잘할 수 있다고 느껴요.

#갓 스물의 에너지

활약하고 있는 2005년생 동기들을 보면 어떤가요? 서로의 활약을 보고 연락하기도 하는지 궁금해요.
롯데 (전)미르랑은 워낙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요. 평소에 야구 얘기를 하는 사이라기보다는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일상 얘기를 하는 가까운 친구예요. 한화 (황)준서랑은 야구 얘기를 자주 하긴 해요. ‘내가 나오면 봐줘’라고 장난치기도 하는데, 그래도 야구장에 들어서면 상대 팀이기 때문에 서로 집중하면서 지지 않으려고 뛰어다니고 있어요.

리그 최상위급 투수들도 잘 이겨내고 있어요. 첫해인데, 상대 투수를 볼 때 신기한 마음도 있나요?
당연히 신기한 마음이 들 때가 많죠.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TV로만 볼 수 있는 대선배님들이셨으니까요. 중계방송을 보면서 저도 얼른 저 공을 쳐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연습했는데, 그 바람이 생각보다 더 빨리 이뤄진 것 같아서 좋아요. 그래도 타석에 들어가면 대선배님이라는 생각보다는 선수 대 선수라는 마음으로 자신 있게 쳤어요.

지금까지 봐온 투수 중에 누가 가장 신기하던가요?
와! 어제(6월 25일 문학 KT전) 만난 고영표 선배님이요. 체인지업을 던지실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자주 보진 못했어도 지금까지 봤던 체인지업 중에 제일 좋은 공이었어요. (김)성현 선배님이랑 경기 시작하기 전에 대화했는데, 고영표 선배님을 한 번 상대해 보고 느낀 점을 말해달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첫 타석에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서 느낀 걸 얘기하는데, ‘원래 그렇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워낙 치기 어려운 공이라고. (웃음) 그 체인지업을 처음 보면 속는 게 당연하다고요. 다음 타석에 들어가면 칠 수 있으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 있게 치라고 자신감을 넣어 주셨어요.

고효준 – 고명준, 조병현 – 박지환으로 이어지는, 랜더스 내 핵심 지분을 차지하는 세광고 출신이죠. 랜더스 고교대전에서도 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는 뭔가요?
워낙 우리 세광고 출신 레전드 선배님이 많잖아요. 저희가 옛날에는 어땠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요새는 좀 뜨고 있는 추세예요. 세광고도 경남고와 광주일고 못지않게 야구를 열심히 하고, 또 무척 잘하는 학교예요. 그래도 아직 두 학교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때 성공 확률이 좀 떨어져 보이는데, 막상 표정엔 늘 자신감이 넘쳐 보이더라고요. 항상 본인의 감을 믿는 편인가요?
주루를 할 때는 주로 제 감을 믿으면서 비디오 판독도 부탁드리는 편이고요. 수비할 때는 성한이 형한테 물어보면서 판단하고 있어요. 비디오 판독이 번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감이 떨어지지는 않아요. 그냥 ‘내 감으로는 세이프였던 것 같은데 아웃이구나’ 싶고, 다음에는 감독님께 요청할 때 좀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로운의 집에서 며칠 지내다 지금은 이사했다고 들었어요. 이로운과 어떻게 친해졌나요?
로운이 형이랑은 대만 스프링 캠프 때부터 친해졌어요. 형이 제가 처음 왔을 때부터 잘 챙겨줬고, 먼저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제안해 줘서 잠깐 살게 됐어요. 시범경기에 들어와서도 자주 얘기하고 장난치면서 친해졌죠. (쓱튜브에서는 서로 고발하기 바쁘던데, 평소 고마움도 잘 표현하나요?) 로운이 형한테 고맙다고도 많이 얘기하고 있어요! (억울) 평소에는 살갑게 잘 얘기하는데, 쓱튜브에서는 아무래도 장난식으로 말하게 되는 거죠. 거기다 저는 사실 지낼 곳도 없는데 먼저 와서 ‘우리 집에서 자라’라고 얘기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죠. 밥도 거의 로운이 형이 다 사주셨어요. 제가 내려고 할 때마다 로운이 형이 막더라고요. 결국 제가 낸 것보다 로운이 형이 낸 게 훨씬 많을 거예요.

올해 인천 생활이 처음이잖아요. 쉬는 날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요?
누나랑 같이 살고 있어서요. 이전까지는 누나가 군산에서 살다가 이번에 인천으로 올라와서 함께 지내게 됐어요. 쉬는 날에는 주로 둘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요. 가만히 누워 있다가 일어날 시간이 다 돼서 누나가 “밥 뭐 먹을 거냐?”라고 물어보면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요. 특별히 뭔가를 한다기보다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누나랑도 무척 친해 보여요. K-남매인지, 친한 남매인지 궁금해요.
티격태격하면서 싸울 때도 있는 K-남매긴 한데, 지금은 한집에서 같이 지내야 하니까요.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거리낌 없이 지내고 있어요.

야구, 앞으로 오래 할 거잖아요? 훗날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궁금해요.
팬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은퇴하는 날이 오더라도 박지환은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이자 무척 잘하는 선수였다고 기억할 수 있는 선수요!

마지막으로 큰 응원을 보내주는 으쓱이에게 인사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평일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야구장에 많이 찾아와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바쁘실 텐데도 야구장을 찾아와주신 만큼 저희도 꼭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경쾌한 타격과 단단한 수비 능력, 신인 최다인 7연타석 연속 안타 타이기록이라는 유의미한 족적까지. 이렇게 데뷔 첫해부터 박지환에게는 감독, 해설위원뿐 아니라 팬들의 극찬이 향하고 있다. 그리고 쏟아지는 관심에 잠식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을 다스리며 선수생활을 이어 온 그에게, 운명처럼 생애 첫 올스타 출전의 기회까지 찾아왔다. 잊지 못할 데뷔 첫해를 보내는 박지환에게 2024년은 선물과도 같은 해이길 바라며, 2024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유일하게 지명받은 야수이니만큼 야수들의 자존심을 세우는 그가 되길. 10여 년을 건너 찾아온 인천 SSG 랜더스필드 2루의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길 기원해 본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0호 (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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