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서 어느덧 40년 … 상업사진도 예술이라고 믿었죠"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 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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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전 앞둔 김용호 사진가 인터뷰
광고 전시·판매되는 유일 작가
이어령·백남준·조수미 사진에
장르 경계 초월한 독창적 행보
최근 '내부자를 위한 광고' 도전
"타인 시선으로 '나' 바라볼 때
사람은 또 다른 '나'로 재탄생"

일찍이 김남조 시인은 이렇게 썼다. '그의 사진은 강렬하고 묵시적이다. 그는 사진가이기보다 사진사상가인지 모른다.'

상업사진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초극하며 그 사이(間)에 자기만의 결을 만들어낸 독보적인 창조자. 40년 가까이 패션잡지, 문화예술인, 기업광고 등 분야에서 '신비스럽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대중과 소통한 크리에이터. 광고사진이 갤러리에서 전시·판매되는 국내 유일한 사진가 김용호 얘기다.

에세이 사진집 '포토 랭귀지'를 출간하고, 3월 창원에서 대규모 사진영상전을 앞둔 김용호 사진가를 지난 18일 잠원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사진가의 끝 글자 '가(家)'에서 오는 느낌이 좋습니다. 자기만의 '류(類)'를 지향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 같아서요. 사진작가 대신 사진가란 말을 주로 쓰는 이유입니다."

사진가로서의 김용호의 시간은 약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께 작업한 '하리케인' 카탈로그는 그의 다시 없을 히트작이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그가 찍은 남긴 사진은 지금 봐도 혁명적이다. 이후 김용호의 카메라엔 문화예술인 백남준·박서보·박정자·조수미·조성진과 연예인 김혜수·이영애·장동건·이정재가 담기기도 했다. 다소간의 과장이 허락된다면, 적어도 한국인 절반 이상은 그가 뷰파인더로 보았던 피사체와 같은 이미지로 유명인 외양을 기억한다.

현대카드 브랜드 이미지 작업으로 시도된 김용호 작가의 2012년 사진 '화이트 테이블'. 욕망의 테이블 중앙에 카드가 놓여 있다.

"장르 구별하지 않고 창조적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왔습니다. 커머셜(상업)을 베이스로 시작하다 보니 스타일이 다양한 편이죠. 상업사진이라도 순수예술적으로 접근하되 '뭔가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한 걸음씩 왔습니다."

다양성이 진화하면 독창성이 된다. 그의 근과거 작품으론 '현대카드 레드카드'를 꼽을 수 있겠다. 현대카드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고 카드 플레이트와 이미지의 시각적 완성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레드카드 플레이트에 적용할 신소재도 생소했던 '리퀴드 메탈'이었다.

"카드사 디자인실에서 리퀴드 메탈을 발견하기 전엔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현장에서 주물을 보고 난 뒤 결정한 사진들이죠. 상업사진의 답은 언제나 클라이언트의 책상에 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이미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죠."

사진가 김용호의 순수예술 작업으로는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이 인간이 아니었을 경우를 상상한 채집된 몸, 명상하는 몸 등을 보여준 2007년 대림미술관 '몸' 전(展)을 비롯해 '모던걸 신여성', 연꽃밭 물 속에서 물 위의 연(蓮)을 찍은 '피안(彼岸)' 등이 있다.

장르의 경계를 초월해 스스로 장르가 된 그가 몰입 중인 작업은 '인버타이징 다큐멘터리'다. 외부에 제품을 팔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기업은 이제 회사 직원을 첫 소비자로 이해한다. 인버타이징은 구성원, 즉 내부자를 위한 광고다. 이 분야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현대차 충돌 테스트 현장에서 수많은 자동차가 부딪쳐 부서진 벽을 추상회화처럼 담아낸 김용호 작가의 2013년 사진 '절차탁마'.

"기업 이미지 사진을 작업할 땐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특히 추구합니다. 큰 기업일수록 구성원은 한 부분으로 일할 뿐이지 자기 분야 바깥의 큰 흐름을 보기 어렵잖아요. 사진을 보며 '우리 회사가 이런 모습이었나' 하고 스스로를 인식하게 됩니다. 결국 타인(사진가)의 시각으로 구성원인 '나'를 본다는 건데, 남에 의해 자기를 볼 때 사람은 '나'를 다시 알게 됩니다. 자기 재인식을 통한 재탄생이죠."

40년 만에 간판을 내린 힐튼호텔의 마지막 모습도 지난달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호텔 인수 측에서 의뢰한 사진으로, 언젠가 아카이브 전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KT, 시몬느도 그가 작업했고, 연세대 교정의 윤동주기념관은 수년간의 작업으로 연세대 출판부에서 사진집이 나왔다.

특히 작년 가을엔 서울에선 사진영상전 'MADE IN CHANGWON : M623GNN392'를 열었다. 한 알의 쌀이 식탁에 올라올 때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농부의 땀, 뜨거운 태양과 풍부한 물, 서늘한 바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수많은 노동의 결과물로 드디어 식탁에 오르는 것처럼, 지금의 LG전자가 있기까지 함께한 노동의 산물에는 결코 단순한 비용만으로 지불할 수 없는 숭고함을 표현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가마솥처럼 뜨거운 반응에 올 3월 말 이 전시의 확대 전시를 논의 중이다.

"사실 'M623GNN392'은 양문형 냉장고의 모델명이에요. LG전자 의뢰로 제품 테스트 공간인 '챔버'에 들어갔는데, 테스트를 위해 무한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을 오래 쳐다봤어요. 완성을 위한 반복은 그 자체로 미학적이에요. 39분2초짜리 영상으로 수련 혹은 명상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창작이라고 그는 말한다. "순수한 기록이란 오직 대자연밖에 없겠지만, 따지고 보면 대자연조차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흉폭한 자연과 평화스러운 자연이 상이하게 표현됩니다. 사진은 절대적으로 창작의 영역입니다."

셔터를 눌러온 지 40년. 그러다 보니 사진가 김용호에게 전해지는 클라이언트의 전언은 대개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요청이다. 겉보기에 그는 무한한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장 두렵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재량껏 해달라는 요청은 곧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걸 보여주세요'라는 말과 동의어에요. 어떤 상황이라도 창작자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예산이 적다, 악천후였다, 누가 날 힘들게 했다 등은 예술가가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에요. 어떤 삶이든 불만은 성공하고 난 뒤에 말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저는 오직 '포토 바이(photo by) 김용호'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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