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갈등 깊어질수록 바빠지는 한덕수 총리, 왜?

이원석 기자 2024. 10.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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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 국회에서 맞짱 뜨는 노익장 한 총리에 尹 신뢰 깊어져…심야 전화 잦아
韓은 20명 의원 만찬으로 친한계 세 과시…일각에선 “헤어질 결심” 흘러나와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최근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서로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양쪽 진영 일각에서 동시에 발신되고 있다. 다만 '김건희 문제'로 촉발된 여권 공멸의 위기감이 짙어지면서 두 사람이 일단 일대일 만남을 갖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독대 시점이 재보궐 선거가 있는 10월16일 이후로 잡히는 바람에 선거 결과에 따라 공멸을 재촉하는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만남 자체가 불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두 사람 간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양측은 자기 사람을 많이 만들고 충성심 강한 집단으로 다지기 위한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윤 대통령의 관심과 애정이 부쩍 높아지고 있어 화제다.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과 복수의 정부 소식통들은 "윤 대통령이 요즘 가장 편안해하고 마음을 주는 사람들 중 한 명으로 한덕수 총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국무총리(왼쪽), 정진석 비서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요일마다 주례회동…"尹 가장 편안해해"

윤 대통령이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등 용산의 참모들 외에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사람이 한 총리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월요일마다 오찬을 겸한 주례회동을  하고 있다. 그 외에 현안이 있으면 추가로 만나는 데다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시로 통화를 한다고 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뒤 거야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국회에서 75세 한덕수 총리가 정면대결하는 모습을 윤 대통령이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총리는 의·정 갈등 문제 등과 관련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과의 충돌을 피하지 않으며 '공격적 방어'를 했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한동훈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료 개혁 문제에서 정부 기조를 뒷받침해 주지 않고 있다. 그럴수록 윤 대통령은 한덕수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 대통령실 참모진들을 더 의지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봤다. 대통령실의 고위 참모는 "한동훈 대표도 윤 대통령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존중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의료 개혁 같은 대통령의 시그너처 정책을 끝까지 지켜주는 일을 한덕수 총리가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총리의 노익장 투혼은 국무회의 구성원인 장관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게 용산 대통령실의 평가다.   

국회에서 강성 면모를 보이는 한덕수 총리지만 김대중 대통령 때 청와대 경제수석, 노무현 대통령 때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 덕분에 야권 실력자들과 개인적 친분이 깊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대패 뒤 총리 교체를 검토했다. 그러나 누구를 지명하더라도 거야의 인준 투표를 통과하기 어려운 데다 한 총리에 대한 신임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어 교체설은 쑥 들어간 상태다. 이에 따라 지금과 같은 대결 정국이 지속될  경우 한 총리가 대통령과 임기 5년을 함께하는 1987년 이래 최장수 국무총리가 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여당 내 친윤계 인사들도 한동훈 대표 취임 이후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당장 지도부 내에서부터 한 대표에 대한 견제가 빈번하다. 김재원·인요한·김민전 최고위원이 친윤계로 분류된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한동훈 대표보다는 윤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 있어 한 대표와 미묘한 긴장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친윤계 중진으로 한동훈 대표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5선의 권성동 의원이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한 대표의 독대 요청 논란에 대해 "언론 플레이가 너무 잦다"고 쓴소리를 했다. 최근 한 대표가 주최한 친한계 모임에 대해선 채널A 《정치 시그널》에서 "당 대표가 되는 데 도움을 준 의원들을 불러서 식사하는 건 왕왕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광고하면서 식사 모임을 가진 건 본 적 없다. 친한계 의원끼리 만찬을 했다는 보도 등은 자칫 당에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김종혁 최고위원이 9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당 부활과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상현·강승규 등 친윤 의원은 40여 명

국민의힘 현역 의원 중 친윤계로 분류되는 인사는 40명 안팎으로 분석된다. 친윤계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을 비롯해 윤상현·권영세·김기현 의원 등 중진, 강승규·강명구 의원 등 대통령실 출신들이 대표적이다.

여권 일각에선 친윤계가 점차 약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어찌 됐든 여당 대표는 한 대표이고 아무래도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 지지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점점 친윤이라고 분류되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박정훈 의원은 10월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친윤계라는 건 20~30명밖에 안 되고 어느 쪽으로도 힘을 싣지 않는 중도계 분들이 40명 이상"이라며 "앞으로 점점 그분들이 한 대표의 생각과 싱크로(일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친윤계의 세 약화를 의식해서일까. 윤 대통령이 최근 여러 현역 의원 등 당 관계자들을 관저로 불러 만찬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현역 의원을 비롯해 최근 윤 대통령이 불러 관저에 다녀왔다는 당내 인사가 상당히 많다"고 귀띔했다. 지난 9월엔 윤 대통령이 윤상현 의원, 인요한·김민전 최고위원을 초청해 만찬을 가진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른바 '미래 권력'으로 지칭되는 한동훈 대표 쪽 사람들의 세가 불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동훈 대표가 10월6일 현역 의원이 다수 포함된 20여 명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한 것은 세 과시 측면이 크다. 그간 당내, 특히 친윤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원내에 친한계는 거의 없다'는 목소리가 컸는데, 보란 듯이 이를 반박한 것으로 풀이됐다. 마침 10월4일 부결된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서 여당 내 이탈표가 4표 나온 상황이어서 시점이 묘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동훈계 20명 만찬'으로 세 과시

만찬 자리에선 향후 한 대표와 당이 나아갈 방향, 여러 현안 대응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로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훈 대표는 참석자들에게 "물러나지 않겠다. 믿고 따라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가 '다음엔 각자 한두 명씩 다 데리고 와서 50명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 대표는 '자주 만나서 소통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여권에선 '친한의 본격 계파화'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만찬 참석자 중 현역 의원은 주로 초·재선에 집중됐다. 초선은 당 청년최고위원 진종오(비례), 조직부총장 정성국(부산 진갑), 수석대변인 한지아(비례), 인재영입위원장 고동진(서울 강남병), 원내부대표 김소희(비례)-우재준(대구 북갑), 국민통합위 부위원장 유용원(비례) 의원 등이 참석했다. 또 김상욱(울산 남갑)·박정훈(서울 송파갑)·김건(비례)·김재섭(서울 도봉갑)·주진우(부산 해운대갑) 의원도 함께했다. 재선은 수석최고위원 장동혁(충남 보령·서천), 사무총장 서범수(울산 울주), 당대표 비서실장 박정하(강원 원주갑) 의원과 김형동(경북 안동·예천)·김예지(비례)·배현진(서울 송파을) 의원이 참석했다. 중진 의원으로는 6선 조경태(부산 사하을), 3선 송석준(경기 이천) 의원이 회동에 자리했다.

여권에선 또 원외의 당 지도부인 김종혁 최고위원,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정광재 대변인이 점차 세 확대의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한동훈 계파라는 건 지나친 해석이다. 그러나 당대표인 한 대표를 지지하고 지원할 인사들이 앞으로 더 공개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한동훈계 의원 모임'이 윤 대통령과 친윤계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참석 의원은  "원래 더 빨리 만났어야 했던 걸 여러 이유로 늦추다 이제야 가진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이 의원은 "여권이 위기인데 108명 중 아무 의사 표현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한 대표 입장에서도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윤석열과 한동훈,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 양상은 봉합보다 파열 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요즘 당내 상황을 보면 계파 갈등이 극심했던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표 때가 떠오른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관계도 이미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간 것 같다. 어느 쪽에 설지 입장을 곧 정해야 할 것만 같아 상당히 부담스럽다." 어느 쪽 입장에도 서지 않은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이 사석에서 했던 말이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한 "김건희 여사, 공개 행보 자제 필요"

윤 대통령이 30명 가까이 모인 당 지도부와의 상견례 당시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끝내 거부한 뒤 추경호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만 따로 불러 한 번 더 만찬을 가진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9월30일 한 언론사 창간 기념식 행사를 앞두고 대통령실 쪽에서 '윤 대통령의 바로 옆 테이블에 한 대표가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요청을 했고, 이후 달라진 자리 배치표를 확인한 한 대표가 행사 30여분을 앞두고 돌연 불참을 통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두 사람이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과 관련한 한 대표의 메시지도 점점 냉정해지고 있다. 한 대표는 10월9일 김 여사의 공개 행보 자제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논란에 대해 "관련된 분들, 관련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당당하고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발언한 점은 더 의미심장하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명씨를 만난 사실이 드러난 상황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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