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톤다운' 비판에 이복현 "공감대 형성 먼저"
"두산그룹, 계열사 주주 설득해 신고서 새로 내야"
최근 전문가들과 상법 개정을 주제로 비공개 논의를 두 차례 나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재계와의 소통으로 개정 취지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연초부터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해야한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온 이 원장은 정부의 소극적인 기조에 맞춰 입장이 '톤 다운됐다'는 학계의 지적에 이같이 답했다.
밥캣과 로보틱스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포기하기로 한 두산그룹에 대해서는 소액주주와 충분한 소통을 거친 뒤 새로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상법 개정과 관련 "규정을 둔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됐든, 지배주주가 됐든, 일반주주가 됐든 입법 취지에 공감하지 않으면 예상과 달리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선언적인 규정 조차 못 두면 이게 도대체 의지가 있는거냐'는 얘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만 선언적 규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시장과 기업 내지 경영진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복현 원장이 그동안 강조해온 것과 달리 상법 개정에 다소 소극적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학계의 비판이 나오자,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취지의 답변이다.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지난 7월 최상목 경제부총리께서 경제단체 앞에서 (법 개정) 추진 안 하겠다고 한마디 하고 나서 이복현 금감원장도 말씀 횟수도 줄고 톤도 다운한게 아닌가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원장은 "법을 한번만 바꿔서 끝날 일은 아니다"라며 "내년과 내후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소액주주 보호 관련) 내용이 담길 것이고, 이번 행정부가 끝나더라도 이것을 중요 과제로 담는 게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국내주식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재계 요구에 대해서는 연기금에 이를 강요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기업 가치와 시장의 인식이 같이 올라가야 말이 된다"라며 "연기금은 국민 자산을 책임지기 때문에 단기간에 수급을 좋아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최근 사업구조 재편안을 수정한 두산그룹에 대해서는 소액주주와의 소통을 감안해 신고서를 새롭게 제출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두산그룹은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밥캣을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이전하는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했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밥캣-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 계획을 취소했다.
이 원장은 "아무리 그룹이나 기업이 좋은 의도를 갖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적절한 주주 소통이 부족하면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형적 사례"라며 "적절한 형태의 사업 재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당국이나 제3자가 판단하기 보다는 기업에서 잘 판단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주주나 시장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업들이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에너빌리티도 포괄적 주식교환 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 구조 개편과 각사들, 에너비빌리티 신설법인, 로보틱스 합병법인 내지는 자회사인 밥캣 등을 포함해서 소통할 것이라고 (두산 측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두산이 의지가 있다고 보고 사업 모양을 바꾸었기 때문에 사실상 아예 바뀐 형태의 증권신고서를 내야한다"고 했다.
또한 이 원장은 이번 두산그룹 사태로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인수합병(M&A)이 한국 시장에서 사라질지 묻는 질문에 "한국은 제조업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있는 나라이고 기업이 산업환경에 맞게 구조조정을 하면 이를 지원하는 것일 뿐, 우리가 판단하거나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목소리에서 경영진이 청취하는데 오해가 있다면 소통 방식 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다양한 고려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는 자율적인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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