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 쉬었지만 더 무서워졌다…밀라노에서 ‘진짜 그림’이 나온다

쇼트트랙은 늘 잔인하다. 조금만 비어도, 조금만 늦어도, 순위표가 사람을 다른 선수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최민정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장면은 “메달 몇 개”가 아니라 “어떤 시간표로 돌아왔느냐”다. 최근 2년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복귀했고, 복귀하자마자 다시 올림픽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무서운 건, 최민정이 “지금 잘 나가고 있다” 수준이 아니라, 올림픽에 맞춰 몸과 레이스 감각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이미 보여줬다는 점이다.

2024년 초까지의 맥락을 보면, 최민정은 한 시즌 동안 대표팀 경쟁과 국제 투어의 흐름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 재충전을 선택한 것으로 정리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쇼트트랙에서 ‘쉬었다가 복귀한 선수’는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감각을 잃고 한동안 헤매는 경우, 다른 하나는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면서 폭발하는 경우다. 최민정은 후자 쪽에 가깝게 움직였다. 복귀 시즌(2024-25)에 들어서자 월드투어에서 개인전 우승이 다시 나왔고, 계주와 혼성 계주에서는 대표팀의 중심축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특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기쁨보다 개인전에서의 아쉬움”을 말하는 선수의 시선은 좀 다르다. 그 말은 곧 “나는 지금 성적이 아니라 올림픽 기준으로 나를 평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회 하나를 이겼다고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에서 필요한 장면이 나왔는지부터 체크하는 유형. 최민정이 늘 그렇게 해왔다.

그리고 2025년 세계선수권(베이징)에서 나온 1500m 금메달이 결정타였다. 사람들은 올림픽을 ‘기대’라고 부르지만, 최민정에게 그 기대는 어느 순간부터 ‘근거’로 바뀌었다. 1500m 금메달로 밀라노-코르티나 2026 올림픽 출전이 사실상 직행 구도로 정리되면서, 한국 쇼트트랙이 매번 겪는 지옥 같은 내부 경쟁에서 가장 큰 문 하나를 먼저 잠근 셈이다. 한국 쇼트트랙은 국제무대에서 메달 따는 것만큼이나 “올림픽에 가는 것”이 첫 관문인 종목이다. 그 관문을 세계선수권 금으로 넘어갔다는 건, 단순히 자격을 얻었다는 의미를 넘어 시즌 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뜻이다. 올림픽을 ‘대비’하는 게 아니라, 올림픽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2025-26 시즌은 올림픽 쿼터가 걸린 시즌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이 나온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이미 종목별 출전권에서 최대치에 가까운 그림이 형성돼 있다. 그러면 논점이 바뀐다. 예전엔 “출전권 확보”가 뉴스였지만, 지금은 “출전권은 충분히 있다, 그럼 누가 개인전에 들어가느냐”가 더 뜨거운 뉴스가 된다. 이 구도에서 최민정의 위치는 분명하다. 종합 포인트 상위권에서 버티고 있고, 무엇보다 1500m에서 ‘현재 폼이 증명된’ 선수가 최민정이다. 쇼트트랙에서 1500m는 단순히 가장 긴 거리라서 중요한 게 아니다. 전술과 체력, 코너 싸움, 순간 판단이 한꺼번에 묻어나는 종목이기 때문에, 여기서 우승한 선수는 “컨디션이 좋다”를 넘어 레이스 자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500m와 1000m의 기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 다만 냉정하게 말하면 500m는 스타트와 라인, 접촉과 판정, 그날의 눈치 싸움이 가장 거칠게 흔들리는 거리다. 1000m는 그보다 더 묘하다. 강자가 강자답게 이기기도 하지만, 전술 한 번 꼬이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는 1000m와 500m가 늘 “한 끗의 스포츠”가 된다. 최민정이 어떤 종목에서 메달을 가져오느냐를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기대가 낮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1500m라는 확실한 축이 있으니, 1000m와 500m의 ‘변수’까지도 기회로 만들 여지가 생긴다.

밀라노 여자 판은 한 명의 절대 강자 시대라기보다, 강자가 넓게 퍼져 있는 시대에 가깝다. 캐나다의 코트니 사로처럼 포인트 상단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보이는 유형이 있고, 네덜란드 계열 스프린터 군단처럼 500m에서 특히 무섭게 압박하는 라인이 있다. 벨기에의 한네 데스멧 같은 선수는 흐름 타면 대회 자체를 흔드는 스타일로 거론되곤 한다. 그리고 이런 국제 라이벌보다 더 현실적인 변수가 하나 있다. 한국 내부의 엔트리 경쟁이다. 한국은 쿼터가 넉넉하더라도, 개인전은 ‘3자리’ 싸움이 된다. “세계에서 누가 강하냐”만큼이나 “한국에서 누가 들어가냐”가 결정적이다. 최민정은 그 싸움을 누구보다 많이 해봤고, 그 싸움의 피로도가 올림픽 레이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잘 아는 선수다. 그래서 올림픽 직행에 가까운 안정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몸만 만들면 되는 시즌 운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귀 변수’도 흥미롭다. 과거 큰 부상 이후 복귀를 시도하는 스타가 올림픽 시즌에 다시 무대에 서면, 판은 확 흔들린다. 특히 네덜란드처럼 선수층이 두꺼운 나라가 복귀 카드까지 끼우면, 500m와 1000m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다. 올림픽은 늘 마지막 3개월이 진짜다. 그때 누가 완성도를 올리느냐가 전부다.

최민정을 이야기할 때 지금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김길리다. 여기서 중요한 건 둘을 단순히 “세대교체” 같은 말로 갈라놓으면 본질을 놓친다는 점이다. 두 선수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지만, 같은 트랙 위에서 동시에 달린다. 계주에서는 함께 완성도를 올려야 하고, 개인전에서는 같은 3자리를 두고 싸워야 한다. 공존과 경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관계다.

김길리는 이미 세계선수권 1500m 금메달리스트로 거론되는 선수다. ‘유망주’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너무 큰 무대를 밟았다. 반면 최민정은 “완성형 전술가”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레이스를 읽는 눈, 순간의 선택, 코너에서의 버티기, 뒤에서 추월 라인을 만드는 타이밍. 이런 것들이 쌓여 있다. 둘이 만나면 어떤 그림이 나오냐면, 한국은 계주에서 더 강해지고, 개인전은 더 치열해진다. 팬 입장에서는 마음이 복잡하지만, 국가 경쟁력만 놓고 보면 이 조합이 사실상 최상이다. 서로를 자극하면서 같이 올라간다.

실제로 혼성 계주에서 금을 따고도 개인전을 더 냉정하게 돌아보는 흐름은 “단체전 성과를 올림픽 메달 설계의 일부”로 보는 시선이다. 팀이 들뜨는 순간에도 중심을 잡는 선수가 있으면, 그 팀은 흔들리지 않는다. 최민정이 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김길리는 그 옆에서 속도를 더하는 선수다. 이 조합이 무서운 이유는, 둘이 한쪽이 무너지면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둘이 서로를 끌어올리며 팀 전체의 레벨을 올리는 구조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세 번째 올림픽”을 이야기하면 보통 감성부터 꺼낸다. 마지막이라서, 의미가 커서, 후회 없이… 물론 그런 마음도 있다. 하지만 최민정의 최근 2년을 보면, 감성보다 먼저 보이는 건 계산이다. 언제 쉬고, 언제 돌아오고, 어디에서 금을 따고, 어떤 방식으로 올림픽으로 들어가는지. 그 과정이 굉장히 현실적이고 영리하다. 그리고 그 영리함이 쇼트트랙에서는 가장 큰 무기가 된다.

밀라노에서 가장 기대되는 종목은 1500m다. 이미 금으로 증명했다. 1000m와 500m는 변수의 바다지만, 변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은 쿼터를 확보했고, 이제 싸움은 “한국 안에서 누가 개인전 주도권을 잡느냐”로 옮겨왔다. 그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최민정은 다시 한 번, 가장 노련한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김길리가 있다. 경쟁하면서 같이 강해지는 조합. 올림픽에서 이런 팀은 마지막에 웃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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