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KIA 타이거즈에 없던 것 중 하나가 ‘9회말’이었다.
홈경기날 9번의 공격을 할 필요도 없이 KIA는 당연하게 9회초 수비를 끝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곤했다.
매일 새로운 승리 주역이 탄생했고,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느라 덕아웃을 부지런히 찾았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았던 시즌이었지만 올 시즌은 이기고 있어도 이길 것 같지 않은 경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길 수 있었던, 이겨야 했던 경기들을 번번히 놓치면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졌다.
올 시즌에는 투수, 뒷문이 없다.
30일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두산전 결과는 패배보다 더한 무승부였다.
베테랑 양현종이 고군분투하면서 5.1이닝 1실점으로 선발 역할을 했지만 팀의 7연패는 끊지 못했다.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성영탁이 1사 1·3루에서 등판해 1.2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냈지만 승리 투수는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1점만 만들어내면 됐던, 승리를 위한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했던 11회말 무사 만루에서 KIA는 3개의 잔루만 추가했다.
이날 홈으로 돌아오지 못한 주자는 무려 14명이나 됐다.
안타 하나, 볼넷 하나가 부족해서 패배와 다름없는 무승부가 남았지만 사실 KIA의 고민은 마운드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지난 시즌 KIA가 무시무시한 화력으로 우승까지 내달렸지만 투수들 특히 불펜의 힘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결과였다.
KIA에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됐던, 좌완이 귀했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골라쓸 수 있는 ‘좌완 불펜’이 가동됐다.
전상현과 장현식이 찰떡 호흡으로 9회까지 끌고 가주면 마무리 정해영이 승리를 위한 아웃카운트를 책임져줬다.
물론 여차해서 실점을 하더라도 승부를 뒤집어 줄 수 있는 타선이 있다는 믿음은 불펜진에는 또 다른 힘이었을 것이다.
선발진의 부상 도미노로 한 번에 4명의 선발진이 동시에 이탈하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불펜진은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우승 순간을 맞았다.
올 시즌에도 ‘불펜’은 KIA를 우승후보로 분류하게 하는 힘이었다.
‘마당쇠’ 역할을 해줬던 장현식이 FA 선수로 이적은 했지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조상우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빈틈을 채우는 것 같았다.
시즌 시작 전까지 마운드 부상 이탈도 없었고, 우승 경험도 했던 만큼 KIA의 뒷문은 올 시즌에도 건재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시즌을 연 첫날 김도영의 부상을 시작으로 ‘이래도 되나’ 싶은 야수진의 부상 릴레이가 이어졌다.
투타의 손발이 맞지 않았고, 중량감 있는 타자들의 줄부상에 가려서 그렇지 마운드에도 치명적인 부상이 나왔다.
지난해 71경기에 나와 55.2이닝을 소화해 줬던 곽도규가 무너졌다.
지난 시즌과는 다른 피칭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곽도규는 결국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곽도규는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9경기를 끝으로 올 시즌을 일찍 마감했다.
KIA 좌완 불펜진의 또 다른 축이었던 최지민에게도 꾸준함이 숙제가 됐고, 이준영이 올 시즌에도 버티고 있지만 함께 역할을 해주던 후배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버거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103.1이닝을 책임졌던, 우승 조연 황동하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부상이었다.
황동하가 5월 8일 인천 원정 숙소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허리뼈 2번, 3번 횡돌기 골절.햄스트링을 중심으로 다양한 근육 부상 선수들이 발생하면서, 근육 부상에 관한 의학 용어에는 익숙해진 KIA 팬들에게도 낯선 부상이었다.

윤영철과 양현종의 동반 부진으로 고전하던 시즌 초반 ‘5선발’ 경쟁을 했던 황동하에게 다시 시선이 쏠렸다.
황동하는 5월 7일 키움과의 경기에서 세 번째 선발 등판을 소화해, 5이닝 2피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KIA 마운드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지만, 다음 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정읍 인상고의 에이스로 황동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KIA 투수 황동하로 마주한 첫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23년 스프링 캠프가 끝나고 시범 경기에 앞서 KIA의 자체 연습경기가 준비됐다.
퓨처스 선수단으로 구성된 블랙팀과 1군 캠프단으로 짜인 화이트팀의 경기가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됐다.
블랙팀의 황동하가 마운드에 올랐다.
황동하가 자신의 이름을 각인 시키는 데 많은 공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김규성-김도영-김호령을 처리하는 데 14개의 공만 필요했다.
황동하의 피칭이 끝난 뒤 나는 바로 전력분석팀 테이블로 달려갔다.
공을 잡자마자 공을 뿌리던 황동하의 퀵 모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전력분석팀을 찾게 한 또 다른 선수가 있었다.
역시 블랙팀 선수로 나선 곽도규였다.
좌완 스리쿼터가 뿌리는 공을 보고 스피드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력분석팀을 찾았다.
이날 곽도규의 최고 구속은 148㎞였다.
그렇게 눈여겨봤던 두 선수는 예상대로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면서 자리를 잡았고, 우승 멤버가 됐다.
다시 황동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황동하는 특별할 게 없는 투수였기에 ‘템포’를 생존 무기로 삼았다고 했었다.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던 2023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스위퍼’를 새 무기로 삼았다.
아쉽게도 황동하의 스위퍼는 아직 꺼낼 수 없는 비밀 무기다. 캠프 불펜 피칭장에서 처음 시도했던 스위퍼가 포수 한참 앞에 꽂히는 바람에.
지난 캠프에서는 ‘몸’이 황동하의 키워드였다.
의도적으로 몸을 불리는 경우가 있고, 관리 부족으로 몸이 부는 경우도 있는데 스프링캠프에서 본 황동하의 모습은 전자였다.
“몸이 좋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에 황동하는 눈을 반짝이면서 “주변 사람들도 다 몸 좋아진 것 같다고, 준비 잘해 온 것 같다고 하셨다. 나름대로 준비해 왔는데 뿌듯하다”며 웃었다.
2024시즌을 보내면서 체력적인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황동하는 부지런히 겨울을 보냈고, 또 한 단계 성장을 해서 새 시즌을 준비했다.
하지만, 많은 노력 끝에 또 다른 가을을 준비했던 황동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상 부위는 80% 가량 회복됐고, 캐치볼을 하는 정도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직 교통사고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알토란 같던 황동하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지는 KIA의 여름, 황동하가 모처럼 동료들을 만났다.
7월 30일 챔피언스필드에 황동하의 커피차가 등장했다.
황동하의 생일을 축하하고, 건강하게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팬이 보내준 커피차였다.
재활 훈련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커피차를 찾은 황동하는 “처음 받는 커피차”라면서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봤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수줍게 자신의 커피차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동료들을 마주한 황동하는 생일 축하 인사와 위로의 인사를 동시에 받았다.
행복했던 생일이지만 한편으로 가장 슬픈 생일이 됐다.
‘한 번’의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위해 황동하는 고민하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잊지 못할 2024년을 보낸 황동하는 또 다른 간절함으로 2025년을 준비했고, 다시 또 애타게 마운드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그 ‘한 번’을 위해 땀과 눈물을 쏟고 있다.
그 많던 투수는 어디 갔을까? 정말 사라진 것일까?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