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울었다. 그냥 한 사람과 한 안드로이드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렇게 계속 눈물이 났다.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다음을 약속하는 모습에서, 별거 아닌 듯한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슬프던지.
프래그마타는 한참 생각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것들'을 다루지 않는다. 게임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고, 조금만 생각하면 다음이 그려질 정도로 뻔하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이야기를, 프래그마타는 휴와 다이애나라는 두 주인공의 관계와 캐릭터성에 집중해 아름답고 서정적인 연출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배경으로, 정말 이렇게까지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방식의 전투가 10시간가량 진행된다. 누군가는 10시간이라는 플레이타임이 너무 짧다고 할 테다. 하지만 프래그마타라는 하나의 '게임'이 완성되는 데에 10시간은 적절한 시간이다. 짧지도, 과하지도 않다.
프래그마타라는 새로운 게임의 모든 부분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두 주인공에게 몰입하기에 충분한, 그런 시간이다.

다이애나와 휴의 꽉 찬 2인극

그리고 게임이 출시되는 그 시점, 출시 이후의 시점까지도 다이애나는 여전히 이 게임의 가장 거대한 마스코트이자 특징이자 모든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다이애나라는 캐릭터는 분명 이 게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너무나 뛰어난 특징적 요소인 건 분명하다. 다이애나라는 캐릭터가 있기에 결국 게임의 스토리도, 전투의 핵심도, 흐름도, 엔딩까지도 멋들어지게 완성될 수 있었달까.
하지만 프래그마타는 다이애나가 전부인 게임이 절대 아니다.

프래그마타는 너무나 명확하게 휴와 다이애나가 모든 면에서 '공동의 주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게임이다. 스토리에서도, 전투에서도, 조작에서도, 그들이 전하는 그 모든 측면에서 휴와 다이애나는 함께한다. 두 캐릭터가 있기에 프래그마타가 있다.
다이애나가 너무나 특징적인 캐릭터임에 비해 휴는 너무나 평범한 캐릭터다. 하지만 휴라는 인물은 전투에서도, 심지어 스토리에서도 절대 다이애나라는 안드로이드에게 밀려나거나 흡수되지 않았다. 휴가 없다면 다이애나의 캐릭터성은 완성될 수 없다.

프래그마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 주인공이 핵심이 되는 게임이다. 두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고, 두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전투를 이끌어나간다.
게임 내에서 에이트나 초반부 휴의 동료들, 그리고 박사나 연구원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아주 단편적으로 활용될 뿐이다. 게임은 마치 2인극처럼, 그렇게 진행된다. 나머지 이들은 마치 내레이션처럼, 배경의 일부처럼 흘러간다.

10시간가량의 플레이타임 내내 화면 속에서는 둘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둘의 대화가 들려오고, 둘의 전투가 진행된다.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는 다이애나와 휴, 그들의 상황과 그들의 관계에 정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다. 아니, 몰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온전한 몰입감은 프래그마타라는 2인극이 끝났을 때, 그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슴 한 편 어딘가에 저릿함과 만족감과 슬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한다.

슈팅과 해킹의 완벽한 밸런스, 그리고 뛰어난 전투 설계

플레이 과정에서 두 요소는 하나라도 없거나 부족할 시 절대 게임을 온전하게 풀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밸런스 있게 설계됐다. 동적인 요소인 슈팅, 그리고 정적인 요소인 퍼즐은 듣기만 해도 언밸런스하지만, 그 언밸런스함을 프래그마타는 게임의 특징이자 장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적들은 계속해서 공격해오고, 그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해킹도 하고, 슈팅을 통해 치명적인 대미지도 입혀야 한다. 특히 게임이 진행될수록 적은 강력해질 뿐 아니라 공격 방식도 복잡해지고, 그들의 약점을 드러내기 위한 해킹, 즉 퍼즐 요소도 복잡해진다.

다양한 무기를 통해 적의 공격에 빈틈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낸 빈틈에 해킹을 진행한다. 도중에 적의 공격이 날아오면 자연스럽게 회피 후 다시 해킹을 이어서 하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작동할 해킹 노드를 통과해 지나가고, 해킹 완료 후 적의 약점이 드러나면 다시 무기들을 활용해 적에게 강력한 공격을 가하면 된다.
슈팅에 자신이 없다면? 간단하다. 유도탄을 사용하거나 슈팅으로 해킹 대미지를 늘려 더 강한 해킹 공격을 하면 된다. 반대로 퍼즐을 풀어나가는 해킹에 자신이 없다면? 해킹 노드를 통해 슈팅의 대미지를 강화시키는 조합을 선택하면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이 10시간 동안 마치 계단처럼 쭉 올라갈 수 있게 펼쳐진다. 챕터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전투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전투의 조합, 조작 자체를 내게 맞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챕터 내내 그 새로운 요소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에게 가장 맞는 플레이 방식과 조합법도 찾아냈다. 즉, 보스전을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힌트가 챕터 전반에 걸쳐 제공된 것이다.
덕분에 보스전은 분명히 어렵고, 까다롭지만 절대 과하지 않다. 어떻게 보스전을 이끌어나가야 할지, 공략해야 할지,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일단 첫 번째 플레이에서는 게임을 알아보고, 그 모든 플레이 과정에 익숙해진 뒤, 본격적인 심화 과정을 경험하라는 개발진의 의도가 느껴진달까.
전체적인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기에 새로운 난이도를 통해 새로운 게임을 즐기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새로운 무기와 함께 빠른 도전을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마지막 전투 직전으로 돌아가는 선택지도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 과제와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는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플레이스타일? '진짜로' 직접 만들어보세요

조준이 좀 빗나가더라도, 다수의 적이 몰려오더라도, 지금 내가 지닌 무기가 몇 발 남지 않았더라도, 해킹 노드를 거의 다 썼더라도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다.
프래그마타는 플레이어가 전투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전투 그 자체가 주는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배려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장소에는 이미 다양한 무기와 해킹 노드들이 곳곳에 준비되어 있고, 그 자체가 전투 상황에 대한 힌트가 되기도 한다.

슈팅과 해킹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고, 슈팅은 해킹 노드를 생성하고 해킹을 강력하게 해주는 보조 요소로만 활용할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해킹을 슈팅 대미지를 증가시키는 강화 버프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투를 거치며, 게임을 진행하며 자신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측면을 조합을 통해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전투 시스템에 익숙해질 때쯤 심화된 전투 방식을 보유한 적이 등장하고, 또 그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무기가 등장한다. 그중 자신에게 맞는 조합을 찾아내면 이번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이동법과 퍼즐이 등장한다. 그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해 요소와 함께 정화라는 새로운 요소가 짜잔 하고 눈 앞에 나타난다.
어찌 보면 게임 전반의 경험이 '슈팅'과 '퍼즐', 그리고 '이동'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담아냈다고 볼 수도 있다. 프래그마타는 오직 세 가지 요소만으로 10시간이라는 플레이가 전혀 똑같지 않게,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들어냈다. 그리고 심지어 이 모든 게 양쪽 측면으로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새로운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게임 내 존재하는 도전 과제를 위한 별도의 맵을 클리어하거나, 플레이 도중 다시 기존 맵으로 돌아가 놓친 파밍 요소들을 획득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고 마지막 요소까지 등장하는 걸 기다리며 진행하기에는 게임이 만만치 않다.

스토리부터 플레이 경험까지 전반적인 몰입도가 정말 높은 편이기에 중간에 수집을 위해 이러한 흐름을 끊어가는 게 꽤나 아쉽달까. 해당 요소들의 조합에 따라 전투 경험이 너무나 달라지기에, 그냥 이런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메인 흐름을 통해 모두 획득할 수 있었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수집을 하지 않고 그냥 쭉 메인 스토리만 따라가더라도 엔딩을 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어디까지나 수집은 부가적인 요소고, 좀 더 다양한 조합 역시 부가적인 요소다. 메인 흐름만 플레이해도 충분히 다양하고 많은 조합과 전투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픽과 사운드로 완성한 서정성, 그리고 캐릭터

달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을 게임 내 스토리에 맞춰 거대하고 압도적이면서도 황폐하게, 그리고 어딘가 이질적이고 서늘하게 만들어낸 건 물론이고, 어찌 보면 내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배경인 기지를 각 챕터의 내용에 맞춰 디테일을 모두 다르게 구현해냈다.

달의 중력으로 인해 확연히 느려진 휴의 움직임, 훨씬 높고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점프, 먹먹하게 들려오는 소리, 평소보다 천천히 나풀거리는 다이애나의 머리카락 등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정말 뛰어나게 활용했다.
이 우주 공간, 그리고 달의 모습은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게임의 엔딩 시점까지 그 서늘함과 아련함, 모든 요소를 기억에 남도록 이끌어냈다. 한동안 달과 지구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프래그마타가 떠오르고 눈물이 슬쩍 올라올 정도로.

프래그마타의 전반적인 스토리가 한편으로는 뻔하다고 할 수 있음에도, 플레이가 끝난 뒤 한참 동안 크레딧을 바라보며 듀얼센스를 꼭 쥐고 있게 만드는 여운을 주는 건 이런 뛰어난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연출 덕분이 아닌가 싶다.

움직임에 따라 한 올 한 올 흩날리는 머리카락, 즐거운 일이 생기면 활짝 웃으며 그 자리에서 방방 뛰는 귀여운 표정과 목소리, 지구로 가자는 휴의 말에 갸웃하면서도 행복해하는 모습, 그 천진하고 때로는 서글픈 다이애나의 모든 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그래픽과 성우의 연기로 표현됐다.
게임 초반, 다이애나와 휴의 만남이 이뤄지는 순간, 휴가 다이애나에게 이름을 지어준 그 순간 다이애나의 모습은 녹화한 영상을 몇 번을 돌려볼 정도로 귀엽고 천진하다. 이름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 어린 소녀의 정체성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얼마나 기쁘고 벅찬지 그 감정이 오롯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다. 다이애나의 캐릭터성은 그저 '귀엽게'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명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소녀의 모습이지만, 안드로이드로서의 특징이 드러나는 순간 눈동자 등의 외형과 함께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 등도 모두 변화한다. 대화 과정에서도 다이애나는 천진한 목소리로 섬뜩한 문장을 때로 뱉어낸다.
휴의 경우 가장 빛을 발한 건 역시 성우의 연기다. 게임 내내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에 휴의 감정을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건 대부분 목소리를 통해서다. 그리고 이번에 플레이한 한국어 더빙판의 경우 게임의 마지막까지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성우의 연기가 뛰어났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게임이 스토리에서도 플레이에서도 온전한 몰입도를 전달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래그마타는 그걸 해냈다. 100%로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스럽게, 뛰어나게 완성해냈다. 10시간 내외라는 아주 적절한 플레이타임을 통해 스토리와 플레이 경험, 두 가지 요소를 아주 적절하게 끊어냈다.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다이애나와 휴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경험한다. 전투도 그 경험의 일환이다. 슈팅과 해킹이라는 둘의 특징적인 요소가 마치 둘의 관계처럼 하나하나 점점 더 깊게 어우러진다. 그와중에 전투의 재미, 새로움, 몰입도도 뛰어나다.
프래그마타는 스토리도, 전투도, 탐험도 과하게 펼치지 않았다. 덕분에 플레이 내내 모든 면에서 늘어짐이 없다. 두 명의 주연에게 온전하게 집중해 모든 것을 적절하게 풀어나갔다.
스토리의 중심도, 전투의 중심도 오직 다이애나와 휴다. 프래그마타는 그 두 주인공의 너무나 잘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