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홈런' 카일 슈와버, 오타니의 대항마?

이번 주 LA 다저스와 필라델피아의 맞대결은 '미리 보는 포스트시즌'이다.

필라델피아는 지구 우승을 확정지었고, 다저스 역시 가을야구가 확실시된다. 이대로 포스트시즌 대진이 확정될 경우, 다저스가 와일드카드 시리즈를 통과하면 두 팀은 디비전시리즈에서 격돌한다.

이번 시리즈가 눈길을 끄는 건 또 다른 자존심 싸움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셔널리그 MVP 후보로 거론되는 카일 슈와버(32)와 오타니 쇼헤이(31)가 같은 경기에서 맞붙는다. 여기에 오타니가 투수로도 나옴으로써, 투수 오타니와 타자 슈와버의 정면 승부도 펼쳐진다.

카일 슈와버 (필라델피아 SNS)

홈런왕
슈와버의 홈런 파워는 익히 잘 알려져 있었다. 데뷔 때부터 파워가 일품이었다. 2015년 69경기 16홈런을 때려냈고, 무릎 수술에서 돌아온 2017년에는 30홈런 고지를 밟았다.

슈와버의 진가는 필라델피아에서 발휘됐다. 2022년 필라델피아 첫 해부터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46홈런). 당시 애런 저지가 62홈런을 터뜨려 모든 화제를 독차지했지만, 저지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가 바로 슈와버였다.

이듬해 슈와버는 직전 시즌보다 홈런 하나를 더 추가했다(47홈런). 2년 연속 개인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홈런 생산은 매년 꾸준한 모습이었다. 2017년 이후 지난 8년간 슈와버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친 타자는 저지가 유일했다.

2017-24 최다 홈런 순위

311 - 애런 저지
268 - 카일 슈와버
259 - 맷 올슨
238 - 에유헤니오 수아레스


슈와버의 홈런 역사는 올해 정점을 찍고 있다.

8월29일 슈와버는 역대 21번째 4홈런 경기를 달성했다. 마지막 타석에선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5홈런 경기를 해낼 수도 있었다. 심지어 마운드에 야수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슈와버의 5홈런 경기를 확신했던 롭 톰슨 감독은 "4홈런 경기조차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슈와버는 4홈런 경기로 50홈런까지 단 하나만 남겨뒀다. 그러나 이후 10경기 동안 홈런을 치지 못하면서 시즌 가장 긴 홈런 가뭄에 빠졌다. 톰슨 감독은 "너무 세게 치려고 하다 보니 중견수 방면으로 뜬 타구가 넘어가지 않는다(some overswinging, along with balls lofted to center that just didn’t make it out)"고 설명했다.

슈와버는 '50홈런 아홉수'에서 벗어났다. 9월10일 뉴욕 메츠전에서 7회 스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06년 라이언 하워드(58홈런)에 이은 필라델피아 역대 두 번째 50홈런 타자의 탄생이었다. 홈 관중석에선 "MVP" 환호성이 쏟아졌다.

화답하는 슈와버 (필라델피아 SNS)

50홈런 부담을 덜어낸 슈와버는 지난 일요일부터 세 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고 있다. 다저스타디움에서는 오타니가 보고 있는 가운데 때려냈다.

올해 홈런왕이 누구인지 공표하는 한 방이었다.

2025 내셔널리그 홈런 순위

53 - 카일 슈와버
49 - 오타니 쇼헤이
40 - 후안 소토
34 - 피트 알론소


극복
두 팀의 시리즈 1차전, 다저스 로버츠 감독은 슈와버를 막기 위해 좌완 앤서니 반다를 오프너로 내보냈다. 2년 전이라면 이 전략은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슈와버는 좌완을 상대로도 위협적인 타자다. 슈와버가 반다에게 친 홈런은 이번 시즌 좌완 상대 22번째 홈런이었다.

단일 시즌 좌타자 vs 좌완 최다 홈런

22 - 스탠 뮤지얼(1949)
22 - 맷 올슨(2021)
22 - 카일 슈와버(2025)
21 - 켄 그리피 주니어(1996, 1998)
21 - 배리 본즈(2002)


원래 슈와버는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한 타자였다. 정확성이 매우 떨어졌다. 46홈런과 47홈런을 친 2022-23년에는 연속으로 리그 최다 삼진을 헌납했다(2022년 200삼진, 2023년 215삼진). 2023년에는 타율도 0.197까지 떨어졌다. 탈삼진 투수가 피홈런으로 세금을 치르듯, 홈런 타자도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만 너무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타자 슈와버는 '선구안을 갖춘 공갈포'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난해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개선 여지가 낮아 보였던 슈와버의 타율이 0.248로 좋아진 것이다.

슈와버가 타율을 2할대 중반으로 끌어올린 건 천지개벽이었다. 이는 2할대 중반 타자가 3할을 치는 것과 같았다.

슈와버 좌완 상대 성적 변화

22 [타율] 0.193 [OPS] 0.687
23 [타율] 0.188 [OPS] 0.758
24 [타율] 0.300 [OPS] 0.898
25 [타율] 0.252 [OPS] 0.971


슈와버의 타율 상승은 좌완 상대 성적에서 비롯됐다. 1할대를 맴돌던 좌완 상대 타율이 지난 시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최대 약점을 보완하면서 타격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슈와버는 달라진 비결로 '마음가짐'을 꼽았다. 좌완을 마주쳐도 주눅들지 않겠다고 각오했다. 필사(必死)의 심정으로 타석에 들어선다고 말한 바 있다(You have to be prepared to die). 그 일환으로 C-플랩(flap)으로 불리는 일명 '검투사 헬멧'을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좌완을 상대하는 타석에선 오른손과 왼 손목에 보호대를 더 준비하고 나갔다.

이전보다 철저하게 대비한 슈와버는 좌완 공을 피하지 않았다. 몸쪽 깊이 들어와도 확실하게 지켜봤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타격을 가져가면서 극적인 반전을 연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슈와버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누구보다 슈와버를 믿어준 케빈 롱 타격코치였다.

케빈 롱 코치 (MLB네트워크 캡쳐)

롱 코치는 2021년 워싱턴에서 슈와버와 함께 했다. 그러다 그 해 10월 필라델피아로 이직했고, 슈와버도 2022년 3월에 필라델피아와 4년 7900만 달러 계약을 했다. 슈와버는 자신과 롱 코치를 "천생연분"이라고 표현했다.

롱 코치는 슈와버가 좌완에게 가진 두려움을 없애는 데 신경 썼다. 그리고 좌완 상대 시 반응속도를 높이기 위해 피칭 머신을 다양한 위치와 각도로 두고 활용했다.

롱 코치는 이 훈련이 워싱턴 시절부터 진행됐다고 전했다. 단순히 작년부터 집중 대응해서 좋아진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꾸준히 공을 들인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30대 타자가 고질적인 약점을 고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하지만 슈와버는 포기하지 않고 부딪쳤다. 선천적 재능에 후천적 노력을 더해 뒤늦은 성장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타석에서 파괴력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무리 타점의 가치가 이전 같지 않아도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동시 석권하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슈와버가 올린 53홈런 128타점은 MVP로서 손색이 없는 기록이다.

문제는 달라진 평가 기준이다. 과거에는 MVP의 척도가 홈런과 타점, 팀 성적이었다. 이 기준이라면 슈와버의 MVP 수상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선수가 얼마나 뛰어난 시즌을 보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세부지표를 더 따지고 있다.

만약 마땅한 경쟁자가 없다면 슈와버는 가장 유력한 MVP 후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경쟁자가 오타니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두 선수는 지명타자로 직접 비교가 가능하다.

슈와버 vs 오타니

슈 : 53홈런 128타점 105득점 10도루
오 : 49홈런 93타점 135득점 19도루

슈 : 타율 .244 OPS 0.943 [wRC+] 156
오 : 타율 .281 OPS 1.003 [wRC+] 170

슈 [fWAR] 4.9 [bWAR] 4.8
오 [fWAR] 6.8 [bWAR] 6.3


슈와버는 홈런, 타점에서 오타니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지표들은 모두 오타니가 앞선다. 비중이 높아진 세이버 지표도 오타니가 더 뛰어나다.

오타니 쇼헤이 (다저스 SNS)

오타니는 50홈런 100타점 140득점 20도루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는 슈와버의 50홈런 130타점보다 희귀한 기록이다. 50홈런 130타점은 당장 지난해 오타니도 기록한 바 있다(54홈런 130타점). 하지만 오타니가 노리는 50홈런 100타점 140득점 20도루는 역사상 단 한 명만 해냈다(2007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54홈런 156타점 143득점 24도루).

올해 오타니는 투타겸업 선수로 돌아왔다. 선발 투수 빌드업 과정이 길어지면서 많은 이닝은 던지지 못했다(1승1패 3.75, 36이닝 49삼진). 하지만 <팬그래프> 승리기여도에서 1.4를 올렸다. 투수로 나왔을 때 팀에 보탬이 됐다는 의미다.

올해 슈와버는 수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좌익수로 66이닝만 들어섰다. 그 와중에도 수비 지표는 마이너스였다(DRS -2 & OAA -2).

오타니가 투수로서 기여한 바가 크지 않다면, 슈와버도 수비에서 기여한 바가 크지 않다. 이마저도 오타니는 투수로서 합격점을 받았지만, 슈와버는 수비수로서 낙제점이었다. 수비에서 가산점이 높은 유격수였던 프란시스코 린도어가 지난해 33홈런 91타점에도, 지명타자 오타니의 만장일치조차 막지 못했다.

지난해 오타니는 MVP를 수상한 '최초의 지명타자'였다. 그동안 없었던 50홈런 50도루가 결정적이었다. 슈와버도 지명타자로서 MVP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역사상 나오지 않은 '특별함'으로 어필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임팩트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와버의 올 시즌은 대단한 성공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넘어서는 것 못지않게 과거의 나를 넘어서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슈와버는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고, 덕분에 한 단계 더 진화한 홈런 타자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