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동안인데 17살 딸아들을 둔 엄마인 여배우
(Feel터뷰!) 쿠팡플레이 '가족계획'의 배두나 배우를 만나다
극 중 감정을 배제하는 훈련을 받은 인간 병기 한영수를 연기한 배두나를 29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전 세계의 감독이 찾는 글로벌 배우로 자리매김한 배두나는 긴장보다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성실히 인터뷰에 응했다.
"영수는 감정을 삭제당한 듯 크게 동요하지 않는 무뚝뚝함으로 시종일관 엄마로 존재한다"며 "연기할 때 감정 변화가 크지 않아 반갑다가도 혈흔이 잦아 참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영수는 가족의 일, 특히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면 가차 없이 180도 돌변하는 살벌함도 보여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엄마 같지 않지만 엄마여야 하는 잔혹한 얼굴을 꺼낸 든 배두나는 대체 불가라는 단어를 증명하는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릴만했다.
<가족계획>은 그래서 특별하다. 마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와 같은 블랙 코미디적 분위기와 가족애로 똘똘 뭉친 히어로 <인크레더블>의 느낌이 풍긴다.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시리즈는 혈연으로 뭉친 가족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족의 탄생>이 떠오르고, 시치미 뚝 떼는 씁쓸한 웃음과 잔혹성, 독특한 가족 구성원의 존재감은 <조용한 가족>과 겹친다.
엄마 역할을 책으로 배운 이상한 엄마
-독특한 세계관의 장르성이 큰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많이 웃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슬프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당시에는 통쾌한 게 해보고 싶었는데 무척 파격적이고 자극적이라 출연을 결정했다. 블랙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두 감독님이 투입되면서 B급 코미디다워졌다. 감독님이 현장 별명이 ‘피 많이’였을 정도다. (웃음) 가짜 피인데도 너무 많이 나와서 힘들었다. 호러, B급 전문인 김곡, 김선 감독님의 장점이 투영돼 잘 섞인 결과물이 나온 거 같다. 감정선을 연기할 때는 김정민 크리에이터(작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막히고 모를 때마다 연락해서 영수의 과거 이야기나 여러 가지를 물어봤었다”
-영수는 상대의 뇌를 장악해서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브레인 해킹이랑 기술 보유자다.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도 있고 완전히 남게 할 수도 있다.
“영수가 특수 교육대에서 받은 훈련은 상황을 목격하는 사람까지 ‘자, 주목!’하면 최면을 당하게 된다. 브레인 해킹 할 때 눈물이 떨어지는 설정을 추가하게 되었는데 소품(티어스틱)에 기댈 수 없어 진짜 울 수밖에 없었다. 25년 연기 인생의 눈물의 다 제 감정을 넣어 운 거다”
-인간병기였던 영수는 엄마 코스프레가 힘든 건가. 영수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영수는 모범적인 엄마랑은 확연히 다르다. 특수 교육대에서 남자들은 싸움을 배울 때 영수는 고문을 배웠다. 브레인 해킹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인간관계, 싸움, 심지어 엄마인데 밥도 못한다. 책으로 배워 학습한 좋은 엄마의 이상향을 위해 노력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서 있지만 할 줄 아는 게 없다. (웃음) 아침 식사로 우유에 시리얼을 넣어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써 미소를 연습하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 대체로 무표정, 무반응이지만 아이들에게 일이 생기면 입술을 깨무는 정도로 약간의 표정 변화가 있다”
-영수 캐릭터의 빌드업 과정이 궁금하다.
“영수의 전사를 작가님께 물어보면서 다듬었다. 추측한 것과 현장에서 느끼는 것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어 나갔다. 영수의 엄마 서사, 지훈 지우에게 집착하게 된 결핍을 고민하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 결핍과 결점이 있고 빈틈 많은 사람들이다.
영수가 아주 어렸을 때 끌려갔다고 생각했고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이 보이는 아이들을 선별했다고 추측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 영수인 거다. 16세까지 모든 사회생활이 없이 특수 교육대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것밖에 안 하던 사람이다. 결국 탈출하면서 데리고 나온 아이는 영수의 대리자 같은 존재라서 집착하게 된다”
-영수의 능력이 초능력이란 설정인가.
“녹화분을 보여주는 이유기도 하다. 강성(백윤식)이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자’며 보여주는 건 가족이라면 숨김이 없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다. 그 능력이 한번 일을 시작하면 범위를 정할 수 없다는 신선한 설정이다.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그대로 심어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느낌으로 가는 거다.
저는 영수가 십몇 년 만에 재능을 펼치게 되었으니 신나지 않았을까 싶은 감정으로 해석했지만 조율 과정에서 빠졌다. 애초에 크리에이터가 그린 그림대로 가길 원했다. 3,4회 때 나오는 브레인 해킹 장면에서는 초반과 다른 모습으로 보일 거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평소에는 잠자코 있지만 가족의 위기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철희 역의 류승범과 부부, 부모 호흡을 맞춘 소감은 어떤가.
“철희는 저런 남편이 실제로 있을까 싶던 멋진 남자였다. 6회 때 나온다. 영수가 탈출할 때 가족 같은 존재는 철희였을거다. 15년 넘게 한 가족으로 엮여 있으니 팀 같은 공동체의 느낌이 컸을 거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한 팀의 모습, 평범한 가족 같은 탈을 쓴 이상한 가족의 모습이다.
승범 씨와 꼭 한 번 연기해 보고 싶었다. 둘 다 독특한 색깔의 지닌 배우니까 그동안 한 작품에서 만날 일이 많지 않다. <가족계획>이 대단한 블록버스터도 아닌데 선뜻 출연해 준다고 해서 좋았고 결말도 잘 살려줘서 감사했다. 늘 현장에서 맑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밝게 만드는 좋은 사람이더라. 남을 배려하는 모습, 귀엽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 가족이 되어가는 소재가 요즘 화두다. 오래전 <가족의 탄생>이나 최근 <조립식 가족>, 바다 건너 <어느 가족>처럼 대안 가족의 여러 형태로 보인다.
“굳이 혈연이 아니더라도 대안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에 늘 끌렸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지지하고 믿는 사람이라 이번 작품도 와닿았다. 그들은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정의로움 때문만도 아니다. 그저 가족이 다치는 게 싫어서 시작한 일이다. 대의가 아닌 그야말로 소의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 (연쇄살인, 디지털 성범죄, 학폭)가 떠오르는 소재도 만족스러웠다. 어떤 결핍에 의해 달려가는 것일까 궁금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가족이라 해도 결핍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 지훈 역의 로몬, 딸 지우 역의 수현과 호흡은 어땠나. 그동안 엄마 역할을 했지만 초등학생 정도였다. 다 큰 사춘기의 자녀는 처음이지 싶다.
“맞다. 많아 봤자 7-8살 정도였는데 갑자기 다 큰 아들, 딸이 ‘엄마’라고 부르는데 당황스러운 감정이 진심으로 튀어나오더라. (웃음) 수현이는 데뷔작인데 떨지 않고 연기하는 모습에 놀랐다. 저 나이 때는 개미 목소리였던 거 같은데.. 요즘 애들은 확실히 카메라에 익숙한가 싶었고 또 잘해서 부럽더라. 참 다재다능한 아이다. 로몬이는 착하고 귀여웠다. 현장에서 내내 지훈 버전의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왜 그런 거 있잖냐. 은은하게 돌아 있는 미소. (웃음) 촬영 끝나면 배우, 모델 로몬으로 돌아와 있어서 역할에 충실히 노력했구나 감탄했다”
민낯같지만 분장 시간 가장 오래 걸려..
-평소 모니터링을 잘 하지 않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달리자는 게 없으니까. (웃음) 대부분 감독 예술의 영역이니. 제가 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촬영 때는 열심히 찍지만 결과물이 생각과 다르게 나오는 아쉬움이 들까 봐 안 보는 경우도 있다. (웃음)”
-감정을 많이 소비해야 하는 배역은 이후 후유증이 남게 마련이다. 역할과 일상의 온오프를 잘하는 편인가.
“촬영 끝나면 잘 빠져나오는 편이다. 다만 공허한 역할이었던 <공기인형>에서는 후유증이 오래갔다. 마지막에 공기가 빠져서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장면이었는데 제가 심적으로 힘들었을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지 싶다. 이후에는 빨리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게 훈련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다작을 못 했을 거 같다. <비밀의 숲>이나 <킹덤> 같은 시즌제 작품을 오히려 빨리 세계관에 들어가고 빠지는 게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비결이라면 비결인데 어릴 때부터 의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협찬받은 옷보다 제가 입던 생활감 있는 옷을 좋아해 늘 피팅 해보고 구매해서 제 옷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 역할에 몰입하도록 현장에서 분장과 의상의 도움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온오프가 잘 되는 거 같다”
-넷플릭스의 원조 딸로 알려졌지만 지난 <레벨문>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이모라며 겸손함을 표했다. 그만큼 넷플릭스 코리아가 생기기 이전부터 참여한 1세대이자 여전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현역이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작품으로는 처음이다. 다양한 장르, 역할을 해왔지만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가.
“딸이란 수식어는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 진출하기 전부터 <센스8>이란 작품을 하기도 했고, 한국 첫 진출작도 <킹덤>이라 돈독해진 거 같다. 다양한 플랫폼을 경험해 보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쿠팡이 기획에 참여한지는 몰랐고, 크리에이터님이 시나리오를 처음 쓰고 쿠팡플레이가 가장 관심을 보이며 열열하게 좋아했다고 들었다. 하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그렇다고 안 하고 싶은 장르도 없다. <가족계획>같은 작품을 해봤으니, 이제는 조용한 역할을 해보고 싶긴하다”
-<가족계획>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가장 메이크업을 오래 한 작품이다. 15분에서 20분이면 대부분 끝나서 남성 배우보다 메이크업 시간이 짧았다. 이번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라 전적으로 분장, 의상팀에게 의지했다.
주근깨 설정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에 1시간 10분 동안 주근깨 분장을 했었다. 그런데 일상적인 메이크업처럼 보이더라. (웃음) 너무 힘을 줘서 미세 혈관이 터진 적이 있었는데 그 느낌도 좋다면서 그다음 장면부터 터진 미세혈관 메이크업까지 추가돼서 시간이 더 걸리는 거다. <레벨문> 때도 1시간이 안 걸렸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메이크업에 가장 신경 쓴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웃음) 그만큼 마음도 쓰이는 작품이지 싶다”
한편,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은 29일 1,2회를 시작으로 매주 오후 8시에 공개된다.
글: 장혜령
사진: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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