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충해 보상 빠진 가을배추 재해보험..시작부터 '삐걱'
올해 8월부터 시범사업 첫 시행
작기 특성상 재해 위협은 ‘미미’
농가들 “실효성 없다” 가입 주저
이상기후로 무름병·꿀통 피해
“보장범위 확대해야” 한목소리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장 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올해 첫 시행된 가을배추 농작물재해보험 시범사업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에서 6만6116㎡(2만평) 규모로 배추농사를 짓는 신연종씨(57)는 8월말 가을배추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안내 문자를 받고 서둘러 농협으로 향했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보장 범위가 태풍·홍수·가뭄 등 자연재해와 조수해·화재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신씨는 “35년째 가을배추농사를 짓고 있지만 자연재해로 피해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며 “무름병 등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병충해 보상이 빠진 지금의 보험은 풍수해보험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을배추 주산지인 문방3리에는 65농가가 있지만 같은 이유로 단 한농가도 이번에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예측하기 힘든 자연재해에서 농가소득 안정을 도모하고 안정적인 농업 생산활동을 뒷받침하는 정책보험이다. 2001년 도입 후 2020년까지 전체 농림업 생산액의 88%에 해당하는 67개 품목이 보험 대상 농작물로 등록돼 있다. 노지배추 가운데 2019년 강원 고랭지배추와 전남 해남 월동배추가 포함됐다. 전체 배추 품목 가운데 49.1%(2021년 기준)를 차지하는 가을배추는 올해 8월16일부터 괴산, 해남, 경북 영양에서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괴산지역 가을배추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면적은 147.8㏊로 지난해 재배면적(598㏊) 기준 24.5%에 불과하다. 2020년 전체 평균 면적가입률 45%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역농협 한 관계자는 “시범사업 안착을 위해 보험 가입을 적극 권유했지만 병충해 보상이 안된다는 사실에 농민들이 가입을 많이 망설였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가을배추 재해보험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적지 않다. 김애수 해남 산이농협 조합장은 “가을배추 작기 특성상 재해보험이 보상하는 재해 대부분이 농사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애당초 피해가 거의 없는 재해 중심으로 설계되다보니 농가들이 가입을 주저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 가입 농가들도 재해 보상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괴산읍 대덕리에서 1만3223㎡(4000평) 규모로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문태복씨(67)는 지난해 가을철 고온과 잦은 비로 무름병 피해를 크게 봤다. 올봄에도 3월말 아주심기(정식) 후 이상저온과 5월말 이상고온·가뭄으로 꿀통 피해가 발생해 큰 손실을 입었다. 문씨는 “최근 2년간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이상기후로 병충해를 크게 봤다”며 “농작물재해보험 취지가 농민들이 예상치 못한 피해에도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인 만큼 이상기후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와 연관된 병충해도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들은 특약을 넣어서라도 보장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씨는 “고추·콩처럼 병충해까지 보상해주는 게 최선이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특약을 추가해서라도 농민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응식 괴산농협 조합장은 “가을배추에 대한 농작물재해보험 적용은 환영하지만 보장 범위가 제한적이라 기대한 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농협 전산망의 농약 구매기록을 활용하면 농민의 병해충 방제 노력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만큼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농작물재해보험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양봉철 영양농협 조합장도 “‘가을배추는 자연재해가 많지 않은데 보험 가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농가들의 볼멘소리가 많이 나온다”며 “보험 가입 확대와 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해 병해충 피해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괴산=황송민, 해남=이상희, 영양=김동욱 기자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