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작가가 말하는, 아이 낳기 좋은 한국은?

김효실 기자 2024. 10. 2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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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아시아미래포럼’ 인문대담
장 작가 “저출생 해법, 법·제도 같은 외형 넘어 내실 이야기할 때”
소설 ‘한국이싫어서’ 저자 장강명 작가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출간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직장인 3년 차, 20대 후반 여성 주인공 ‘계나’가 말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사람대접받고 싶어서” 호주 이민에 도전한다. 청년층 사이에서 ‘헬조선’ ‘탈조선’이 열쇳말로 떠오르던 시기에 화제를 모은 소설이지만, 출간 9년이 지나 개봉한 영화도 여전히 청년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소설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는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인문대담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고달픈 청춘’에 연사로 참석해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와 함께 저출생 현상 기저에 깔린 사회 문제를 짚었다. 장 작가는 “소설을 쓸 당시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 건 2가지인데, 하나는 미래가 매우 불안하다는 점이다. 지금 매우 바빠도 10년 뒤, 20년 뒤 잘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아이를 갖겠지만, 그렇지 않다”며 “부모 세대도 노동 시간이 적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은 ‘이렇게 일하면 집·자동차 등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지금보다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 결혼 뒤 배우자와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로 살 것에 합의한 사실을 밝히며 “(그런 결정에는) 아이가 있는 게 저와 아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대차대조표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이어 “다른 하나는 타인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하는, 모멸감을 쉽게 주는 사회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위해 취재하면서 ‘주방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해도 호주에서 하는 게 낫다, 여기는 사람대접 해주니까’라는 얘길 들었다. 한국사회는 드라마 ‘더글로리’에 등장하는 대사들처럼 타인에게 모멸감 주는 게 잘 발달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인공 계나도 호주 생활 초기 주방 보조로 접시 닦는 노동을 한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엔케이컨텐츠 제공

진행을 맡은 김 교수가 ‘한국을 떠난 남성도 많은데 왜 여성, 특히 20대 여성이 주인공인가’를 묻자, 장 작가는 “한국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지적을 할 때 당연히 20대 여성이 주인공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모멸적 분위기는 젊은 여성이나 남성 다 겪는 일이지만, 계나는 거기에 더해서 ‘좋은 딸’, ‘좋은 며느리’가 되기를 강요당한다”며 “직장에서도 성희롱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황에 놓이는 상황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이 국가를 신뢰하고 미래를 계획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장 작가는 소설을 선보이고 9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소설을 쓸 때는 한국 사회에 대해 분개하는 마음이 컸고, ‘케이’(K)라는 말을 할 때 남사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가수)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술 마시는 세상(웃음)인 것처럼 어디 가서 누구한테 선진국이라고 얘기해도 어색하지 않다”며 “(포럼의 주제인) ‘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케이’(한국식)의 해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2015년 한국에 분개할 때는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이 썩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한국의 민주화·산업화 전략이 일단 법, 제도 같은 겉을 괜찮게 바꾼 뒤 내용물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외형이 다른 무엇을 따라잡아야 할 수준은 아니다”며 “모멸감을 주는 데 탁월한 한국사회를 바꾸는 방법이 ‘모멸금지법’ 제정 같은 거로는 안 되는 것처럼, 이제는 내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한국이싫어서’ 저자 장강명 작가(오른쪽)와 김현미 연세대문화인류학교수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진행을 맡은 김현미 교수도 “(기조 연설자인) 낸시 폴브레 교수도 국내총생산(GDP)으로 의미화하기 어려운 돌봄과 선의 의미를 경제라는 틀 안에서 확장할 수 있도록 공적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며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개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성별, 인종은 물론 여기서 태어날 때 국민이 아니었다는 이유 등등 탄생할 때 위치가 사회적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그래도 이주 경험이 늘고 인권 의식이 확장하면서 탄생할 때의 위치로 차별하지 않는, 인식론적 개선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나타났다”며 “2015년 소설 속 계나의 여정과 작가의 인식 변화가 시간적 연속선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 작가는 ‘좋은 사회’를 향한 대안 모색을 하려면 개인의 ‘좋은 삶’에 대한 상상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소설 속 계나의 성장을 언급하며 “의도적으로 쓴 건 아니지만, ‘좋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결국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 것 같다”며 “계나가 자신이 살 장소, 같이 살 사람, (앞으로) 걸어갈 길 등을 두고 자기 삶을 재구성해나가는 것에 대한 논의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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