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백다연과 우승 합작한 '제2의 비너스', 한국에서 날아오른 붕어빵 파워
- 27세 미국 왼손잡이, 높은 타점과 긴 리치,
- 윌리엄스 소환한 닮은꼴 외모, 아직은 미완성

코트 위에서 어떤 선수는 기록보다 먼저 이미지로 각인됩니다. 재다 다니엘(27·미국)이 그랬습니다. 3일 경기 고양시 농협대에서 끝난 2026 NH농협은행 국제여자테니스투어에서 백다연(NH농협은행)과 복식 정상에 오른 그는 첫눈에 비너스 윌리엄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단순히 외모가 닮았다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긴 리치, 높은 타점, 왼손에서 뻗어 나오는 직선적인 스윙, 서브 뒤 곧바로 앞으로 쏟아지는 공격 본능까지. '붕어빵'이라는 표현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대회에 처음 출전한 다니엘은 170cm의 키에 현재 단식 랭킹은 531위(최고 522위), 복식 현재 280위(최고 276위)에 올랐습니다. 세계 1위를 질주한 비너스 윌리엄스와 단순 비교는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과 검은색 드레스 차림은 비너스가 빙의한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왼손잡이라는 점도 오른손잡이 비너스와의 비교를 더 흥미롭게 만듭니다.

다니엘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 State) 소속이던 2022년 NCAA 여자 복식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 우승은 NC State 여자 테니스 역사상 첫 전국 챔피언 타이틀이었습니다. 같은 해 그는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올 아메리칸에 선정됐습니다. 대학 무대에서 이미 탁월한 복식 감각과 승부 체질을 검증받은 셈입니다.
한국에서의 우승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백다연과 호흡을 맞춘 이번 복식 우승은 단순한 하위 투어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무대였습니다. 복식은 반응 속도와 첫 샷의 질이 곧 점수로 이어집니다. 다니엘은 서브와 리턴 이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공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치고 들어갔습니다. 강한 한 방으로 상대를 밀어낸 뒤 다음 포지션을 선점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비너스 윌리엄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너스는 전성기 시절 긴 팔과 높은 타점으로 공을 위에서 찍어 누르듯 처리했습니다. 다니엘 역시 회전량으로 오래 버티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앞에서 맞고 직선으로 밀어붙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포핸드는 라켓이 몸 뒤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공이 뜨는 순간 이미 타점이 앞에 형성됩니다. 서브 동작에서도 임팩트 뒤 몸이 코트 안으로 깊게 들어옵니다. 넣는 서브가 아니라 공격을 여는 서브입니다.
물론 '제2의 비너스'라는 수식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합니다. 비너스는 여자 테니스의 역사를 바꾼 전설입니다. 다니엘은 아직 투어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입니다. 단식 랭킹도 500위권입니다. 상위 무대로 가려면 랠리의 지속성, 수비 전환, 세컨드 서브의 안정감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교가 완전히 과장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닮은 것은 이름값이 아니라 테니스의 방향입니다.
흥미로운 문구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Join me on my Tennis Journey!"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거창한 선언은 아니지만, 지금 그의 위치와 잘 맞는 말입니다. 아직 완성된 스타가 아니라 자신의 여정을 공개하며 한 단계씩 올라가는 선수. 이번 농협 대회 우승은 그 여정에서 꽤 선명한 장면으로 남을 듯합니다.


'붕어빵'이라는 말은 때로 선수에게 부담이 됩니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은 출발선에서는 관심을 만들지만, 결국 넘어야 할 그림자가 되기도 합니다. 다니엘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제2의 비너스'가 아니라 '첫 번째 재다 다니엘'입니다.
그래도 이번 한국 무대에서만큼은 그 별명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백다연과 함께 들어 올린 복식 우승 트로피, 푸른 배경 앞에서 날아오른 왼손잡이의 스윙, 그리고 비너스를 떠올리게 한 강렬한 실루엣. 농협 코트에 남은 잔상은 분명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냥 닮은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닮은 점을 결과로 증명한 선수였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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