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의 사나이' 후안 소토는 괜찮을까

후안 소토(26)의 계약은 다시 봐도 충격적이다.

지난 겨울 FA 자격을 얻은 소토는 뉴욕 메츠와 15년 7억65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로 1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소토는 2029년 이후 옵트아웃 조항을 갖고 있는데, 메츠가 이 권한을 막으려면 2030-2039년 책정된 연봉 4600만 달러를 5000만 달러로 올려야 한다. 여기에 만약 소토가 수상 보너스까지 수령하면 총 규모는 8억 달러가 넘어간다.

후안 소토, 오른쪽은 스캇 보라스 에이전트 (게티이미지코리아)

소토의 계약은 지불유예 금액(디퍼)도 없다. 지불유예는 현금 가치가 하락한다는 측면에서 선수가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한다. 당장 구단의 자금 융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7억 달러 계약의 98%가 지불유예인 오타니가 대표적이다.

소토는 계약금만 7500만 달러를 챙겼다. 이번 시즌 연봉도 6187만5000달러에 달한다. 올해만 1억3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는 4월초 발표된 개막전 팀 연봉에서 11팀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참고로 최저 연봉 마이애미의 개막전 연봉은 6389만3725달러다(팀 연봉 20위 캔자스시티 1억2960만6656달러).

메츠는 소토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 소토의 가족들까지 신경 쓰는 정성을 보였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지나치다'는 반응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진
소토는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가 됐다. 자격은 있었다. 19세에 데뷔할 때부터 정상급 성적을 올렸다. 이듬해 워싱턴 내셔널스의 창단 첫 우승도 견인했다. 아직 MVP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늘 MVP 후보로 여겨진 선수였다. 지난해 양키스에서 41홈런 109타점을 기록한 건 소토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도 알려줬다.

2018-24 조정득점생산력 순위

176 - 애런 저지
158 - 후안 소토
153 - 오타니 쇼헤이
151 - 무키 베츠
147 - 프레디 프리먼


선수 몸값은 성적으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시장 상황이 더 중요하다. 자금력을 갖춘 팀들끼리 경쟁이 붙어야 한다. 소토는 메츠와 양키스, 다저스, 토론토 등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양키스도 16년 7억6000만 달러 수준의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토가 천문학적인 돈을 받아낼 수 있었던 건 실력과 주변 환경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소토는 몸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쳐야 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듯, 큰 돈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개막하기 전부터 그런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례로 메츠는 애리조나, 탬파베이와 더불어 아직 MVP를 배출하지 못한 팀이다. 뉴욕 언론은 창단 후 63년간 누구도 풀어주지 못한 메츠의 한(恨)을 소토가 풀어주길 기대했다.

문제는 소토의 출발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개막전에선 안타와 볼넷 두 개, 다음 경기에서는 홈런까지 신고했다. 그러나 작년하고 달리 폭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시즌 첫 54경기에서 소토는 타율 .309 14홈런, OPS 0.977을 기록했다. 반면, 올해는 타율 .228, 홈런 8개 OPS도 0.756에 머무르고 있다.

후안 소토 (구단 SNS)

허슬 논란도 있었다. 타격 직후 열심히 뛰지 않는 모습이 불을 지폈다. 메츠 전담 캐스터 개리 코헨이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소토는 지난주 화요일 보스턴 펜웨이파크 경기에서 그린 몬스터를 직격하는 타구를 날렸다. 장타성 타구였지만, 소토가 뒤늦게 뛰면서 단타에 그쳤다. 이 장면을 본 코헨은 "그는 항상 열심히 뛰지 않는다. 이건 정리가 필요한 부분(He’s not running hard all the time and this is something he really needs to clean up)"이라고 비판했다.

소토의 주루 플레이는 종종 도마 위에 올랐었다. 잡힐 것 같은 타구는 1루 베이스로 달리는 도중 포기할 때도 있었다. 이전 사례들까지 나오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카를로스 멘도사 감독이 직접 진화했다. 멘도사 감독은 소토가 아직 '26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소토는 이전하고 달라진 무게감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식의 말을 했다. 이 때문인지 타석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셔플 동작'도 하지 않았다(투수를 노려보며 자세를 가다듬는 행동). 소토가 온전히 경기를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건 소토가 극복해야 될 부분이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선수가 그에 상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면 비판은 감당해야 한다. 잘못된 결과에 과정을 탓하는 건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억울하지 몰라도, 그게 현재 소토의 위치다.

양키스
소토의 성적 하락이 더 두드러지는 건 양키스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소토를 놓친 양키스는 집중 투자에서 분산 투자로 전략을 바꿨다. 타자 한 명에 올인하는 대신 타선과 선발, 불펜을 골고루 채웠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5월 중순 소토는 이적 후 처음으로 양키스타디움을 방문했다. 물리적으로 멀리 떠나진 않았지만, 뉴욕의 다른 팀으로 가면서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졌다. 당연히 소토를 향한 야유가 빗발쳤다. 관중석에는 "소토가 누구냐"는 팻말이 보였다.

소토가 누군지를 묻는 건 소토가 그립지 않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소토 없이도 양키스가 잘 나간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소토를 잃은 애런 저지를 걱정했지만, 저지는 보란듯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4할 타율을 비롯해 타격 7관왕에 도전할 기세다.

저지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소토가 누볐던 양키스 외야에는 코디 벨린저가 합류했다.

벨린저는 첫 22경기 타율 .177에 허덕였다.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점점 본색을 드러냈다. 아버지 클레이 벨린저가 우승을 이뤘던 팀에서 자신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후 26경기 성적은 타율 .340 6홈런, OPS 1.034였다. 양키스는 심지어 트렌트 그리샴까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소토를 완전히 기억에서 지웠다.

소토와 벨린저는 맞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소토는 서브웨이 시리즈 내내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타석에서는 10타수 1안타에 그쳤다. 볼넷은 4개나 골라냈는데,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코디 벨린저 (구단 SNS)

벨린저는 시리즈를 지배했다. 11타수 7안타, 홈런 2개와 7타점을 쓸어담았다. 시리즈 승패가 결정되는 3차전에서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만루홈런도 터뜨렸다. 특히 이 타구가 소토의 머리 위를 넘어가면서 양키스타디움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소토는 고개를 숙였고, 벨린저는 고개를 들었다.

양키스 서브웨이시리즈 만루 홈런

03/6/29 : 마쓰이 히데키
04/6/28 : 마쓰이 히데키 (2)
06/7/03 : 알렉스 로드리게스
10/6/21 : 마크 테세이라
14/5/13 : 브렛 가드너
20/8/31 : 개리 산체스
24/6/26 : 애런 저지
25/5/19 : 코디 벨린저


이 상황은 소토를 더 위축시켰다. 이후 8경기 30타수 4안타, 타율 .133에 불과하다. 메츠에게 양키스는 무조건 넘어야 하는 적이다. 소토를 등에 업고 양키스를 누르는 것이 메츠가 바란 그림이었다. 그러나 소토는 메츠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소토의 성적이 체감적으로 더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반전
소토에게 '오버페이' 화살이 쏠리는 건 기여하는 부분이 한정됐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수비를 하지 않지만,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온다. 또 출루하면 주자로서 보여주는 스피드가 탁월하다. 하지만 소토는 공격을 제외하면 수비와 주루는 평균보다 떨어진다. 이번 시즌 7도루/0실패로 선전하는 중이지만, 애당초 스피드가 강점인 선수는 아니다.

수비는 더 심각하다. 타구 판단이 늦고, 타구 처리 과정도 둔하다. 수비 지표 역시 크게 떨어진다. 실점 방지 여부를 측정하는 디펜시브런세이브(DRS)는 통산 -14,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를 매기는 OAA도 통산 -28이다. <스탯캐스트>가 종합적으로 산출하는 수비 득점 가치에서도 이번 시즌 우익수 최하위다.

2025 우익수 수비 득점 가치

8 :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3 : 애런 저지 외 4명

-5 : 후안 소토
-5 : 닉 카스티야노스
-5 :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소토는 공격에서 돋보여야 하는 타자다. 공격에서의 아쉬움을 다른 면에서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한 시즌 개인 최다 도루를 노릴 수 있는 페이스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도루는 조심해야 한다. 도루에 능한 선수가 아니라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석에서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루상에서 무리하면 위험 수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토가 반드시 바꿔야 하는 건 득점권 성적이다. 타석에서의 임팩트는 득점과 직결된다. 주자가 있을 때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지난해 양키스에서 소토는 주자가 있을 때 타율이 .325, OPS가 1.050이었다. 주자가 득점권일 때는 타율 .345, OPS 1.143으로 더 좋아졌다. 저지가 고립되지 않도록 해결사 역할을 잘해줬다.

웃음을 되찾을까 (구단 SNS)

하지만 올해는 주자 있을 때 86타수 13안타(.151) 득점권에서는 46타수 6안타(.130)로 성적이 더 나빠졌다. 득점권에서 친 홈런도 하나밖에 없다.

2025 득점권 OPS 하위 (50타석)

0.499 - 호세 알투베
0.481 - 후안 소토
0.469 - 마이클 메시
0.459 - 맥스 케플러

*득점권 OPS 1위 애런 저지 1.354


소토가 생산한 타구의 질이 나빠지지 않은 점은 다행이다. 평균 타구속도 93.7마일로 여전히 강하게 타격하고 있다. 실제 타율은 .228지만, 타구의 질로 계산된 기대 타율은 .297, 기대 장타율은 .576다. 타구의 질만 보면 소토는 달라지지 않았다.

BABIP는 소토의 불운을 암시한다. 올 시즌 BABIP가 .243로 낮은 편에 속한다.

BABIP가 리그 평균 혹은 통산 기록보다 크게 낮으면 타자에게 운이 없었다고 해석한다. 올해 리그 평균 BABIP는 .290, 소토의 통산 BABIP는 .302다. 그러면 안타가 될 수 있었던 타구가 잡혔다고 간주한다. 무엇보다 소토가 변함없이 잘맞은 타구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소토의 성적은 갈수록 회복될 확률이 높다.

메츠의 리더 프란시스코 린도어는 위기에 놓인 소토에 대해 "사람들은 장기 계약을 1년 단위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건 15년 계약이다. 그는 메츠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될 것(He’s going to be one of the greatest Mets to play in this organization)"이라고 격려했다. 멘도사 감독도 "감독으로서 그를 둘러싼 잡음들을 차단하겠다(It starts with me as a manager. My job is to block that noise)"고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너도 나도 부담을 덜어주려는 모습은 소토에게도 큰 힘이 된다.

스프링캠프 첫 날 소토는 "유니폼만 달라졌을 뿐, 나는 후안 소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처럼, '소토다움'을 얼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미운털을 뽑아내고 화려한 백조로 거듭날 수 있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