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진짜들을 위한 진짜, 벤츠 E 450 4매틱

과거 E세그먼트 세단의 파워트레인은 자연흡기 6기통 엔진이 기준이자 근본이었다. 아득히 머나먼 이야기는 아니다. 2010년만 하더라도 E세그먼트 세단은 자연흡기 6기통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오직 많은 양의 휘발유를 쏟아 부어 힘을 얻는 낭만의 시대였다. 아쉽게도 자동차 제조사는 목을 조여오는 배기가스 규제와 높은 연료효율을 향한 소비자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실린더 2개를 싹둑 잘라냈다.

오늘날 6기통 엔진의 자리는 직렬 4기통 2.0L 터보가 꿰찼다. 6기통 엔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건 아니다. 고성능 또는 보다 럭셔리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재료로 주목 받고 있다. BMW 5시리즈가 전자라면,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후자에 가깝다. 이번에 만난 E 450 4매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격은 무려 1억2300만원으로 가장 기본 트림인 E 200 아방가르드보다 4910만원 더 비싸다.

시각적 경험은 여느 E-클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인치 멀티스포크 알로이 휠과 스티어링휠 디자인을 빼면 E 450 4매틱만의 차별점은 없다. 남들과 다른 E-클래스 기대한 이들은 다소 서운할 수 있다. 과시가 목적이라면 돈을 조금 더 보태 S-클래스를 구매하는 편이 현명하다. E 450 4매틱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단 오롯이 나를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자동차다.

특히 S-클래스의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주행성에 눈이 가지만 차체 크기가 부담스럽다면 E 450 4매틱이 제격이다. 차체 길이만 하더라도 S-클래스보다 20cm 이상 짧다(롱휠베이스와 비교하면 차이는 30cm로 크게 벌어진다). 덕분에 E-클래스는 좁은 길 운전에 부담이 적다. 게다가 E 450 4매틱에는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기본이다. 주행 상황에 따라 뒷바퀴를 최대 4.5도 꺾어 회전반경을 줄이거나 민첩성을 끌어올린다.

파워트레인은 S 450 4매틱과 같다. 직렬 6기통 3.0L 터보 엔진에 9단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벤츠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곁들여 성능과 연료효율을 개선했다. 최고출력은 이전 세대보다 14마력 높고, 연비는 9.7km/L에서 10.5km/L로 올랐다. 힘은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을 품은 E 300 4매틱(258마력, 11.6km/L)보다 월등히 세지만 연료효율은 큰 차이 없다. 실제 주행을 해봐도 공인연비는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도심 주행 시 연비는 7~8km/L로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E 450 4매틱의 진짜 장기는 플래그십을 빼닮은 주행성에 있다. E 450 4매틱은 51kg∙m의 최대토크를 1800rpm부터 쏟아낸다. 덕분에 가속을 위해 페달에 무게를 실어도 기어를 쉽게 바꿔 무는 법이 없다. 묵직한 펀치력은 마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듯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포근하며 풍요롭다. 승차감 또한 마찬가지다. 네 발에 묶은 에어서스펜션은 울퉁불퉁한 소보로빵 위에 생크림을 펴발라 부드럽고 달콤한 경험을 선물했다.

똑같이 생긴 롤렉스라고 해도 소재에 따라 가격은 극과 극을 달린다. 스틸을 두른 모델 가격이 1500만원이라면, 화이트골드는 6000만원이 넘는다. 시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그저 똑같은 모델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만은 분명히 안다. 이 시계가 가진 가치를, 그리고 이를 소유할 수 있는 나의 가치를. E 450 4매틱은 화이트골드 롤렉스나 다름없다. 굳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직 내가 그 가치를 알고 누리면 그만이다. 진짜들을 위한 진짜 E-클래스다.

SPECIFICATION

1억2300만원

I6 3.0L 터보 | 381마력 | 9단 자동 | 4.5초 | 10.5km/L | 165g/km

FOR 6기통 엔진과 에어매틱 서스펜션의 조합은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

AGAINST 여느 E-클래스와 차별 없는 디자인. 뽐내려고 산 소비자들은 서운할 수도…

이현성 사진 이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