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이스라엘 갈등… 실향민들의 집으로 변신한 낡은 호텔
이스라엘과 가까운 레바논 남부 마르와니 지역의 높은 언덕엔 '몬타나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푸른 대지 주변에 세워진 인상적인 3층짜리 건물이다.
이곳 호텔은 몇 년 전 경매에 넘겨진 이후 완전히 버려진 상태이지만, 로비의 대리석 바닥, 넓은 수영장, 철로 된 난간 등은 그대로 남아 한때 이곳이 화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년 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레바논 당국은 이 호텔의 소유주와 합의해 이곳을 격리 시설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호텔 소유주는 다시 한번 당국과 합의해 이 호텔을 실향민 임시 거주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몇 달 전, 이곳 호텔은 국경 지역에서 몰려든 50여 가구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한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적대 행위로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다.
‘헤즈볼라’는 영국, 미국 등에선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시아파 단체로, 레바논 내 최대 군사 세력이다.
헤즈볼라는 현재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원하고자 이스라엘을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공습 및 포격을 가하며, 이 지역에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이스라엘-레바논 양쪽 국경 지역의 주민 수만 명은 살던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레바논 측 실향민은 약 9만 명에 달한다. 그중 거의 대다수가 친지의 집에 머물거나 집을 임대한 상태다. 그리고 나머지는 몬타나 호텔과 같은 시내에 머물고 있다.
한편 추운 날을 감싸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자 아이들이 몬타나 호텔 수영장 옆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축구를 하거나, 라켓 게임을 즐기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다수의 아이들이 사태 이후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있으나, 매일 아침 학교 발전기가 꺼지기 전 몇 시간 동안만 가능할 뿐이다.
이곳에서 만난 파티마 또한 원래대로라면 6학년에 진학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경 근처 오데이세 지역 출신인 파티마의 학교는 폭력 사태가 시작되면서 새학기 학생 등록도 받지 못했다.
파티마는 “어느 날 아빠가 집에 오시더니 우리보고 다음 날 아침 집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울면서 짐을 챙겼다”고 회상했다.
이제 파티마는 부모님, 남자 형제와 한방에서 함께 지낸다. 다행히 방은 제법 넓고, 퀸사이즈 침대 하나와 욕실이 마련된 구조다.
사실 파티마와 가족들은 이곳 호텔에 정착하기까지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현재 호텔에서 여러 단체의 일을 돕고 있는 파티마의 아버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곳에 오기 전 네다섯 군데 옮겨 다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진 오직 신만이 아시겠죠. 안타깝게도 지평선 너머엔 돌아갈 수 있다는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50대 후반의 여성 마나헬 역시 오데이세 출신이다. 마나헬은 그곳에 두고 온 자신의 집이 멀쩡한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마을은 완전히 텅 비었습니다. 지금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죠.”
마나헬은 “(집이) 돌더미로 변해버린 건 괜찮아도 두고 온 추억이 가장 소중하다. 매우 고통스럽다”면서 최악의 상황이 오진 않을지 두렵다고 했다.
호텔 복도에선 ‘손님’ 들이 무리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국경 근처 각기 다른 마을에서 온 이들은 모두 실향민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이제 호텔 방 번호로 자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이들은 저마다 살던 마을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살 곳을 잃었다는 문제 외에도 불안정한 상황과 언제 안전을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또한 레바논 남부 출신 주민들을 괴롭힌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갈등은 점점 더 이들에게 가까워져 오고 있다.
지난 2월 19일, 이스라엘 군은 마와니예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가지예 지역을 공습했다. 이 충격파는 레바논 남부와 그 너머까지 전해졌다.
해당 장면을 담은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시민들은 이번 전쟁이 국경 지역과 그 주변에 국한되지 않고 확전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게다가 해당 사건 5일 전, 레바논 남동부 나바티예에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일가족 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날 밤, 도시에 살던 주민들 다수가 이곳 몬타나 호텔로 피난을 왔다. 바닥에 깔아 놓은 얇은 매트리스 한 장에 의지해 밤을 보냈다. 이들 중 다수가 대부분 다음날 떠났지만 언제든 더 많은 이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
한편 살람 바드레딘은 마을 70곳 이상이 자리한 알-자흐라니 지역의 ‘재난 관리 위원회’의 책임자다.
바드레딘은 적대 행위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 누구도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며칠 또는 몇 주 정도면 끝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적대 행위가 크게 확대됐습니다. 분쟁 지역은 이제 단 한곳이 아닙니다.”
바드레딘은 “상황이 심각해지면 질수록 실향민 숫자도 늘어난다”면서 “비상 계획도 수시로 업데이트되면서 부담이 크다. 언제나 상황을 재평가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번 갈등이 일어나기 전 레바논의 경제 상태는 전례 없는 위기에 빠져 있었다.
현재 여러 단체들이 나서 실향민들을 돕고 있다.
BBC 취재진은 호텔 방문 당시, 실향민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한 비정부기구 소속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또 다른 단체는 호텔 내에 진료소를 세웠으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단체도 있었다.
적십자사도 직원을 파견해 재난과 지진에 대처하기 위한 인식 개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집을 잃은 주민들에겐 다른 종류의 위험이 이미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