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억짜리 포수가 홈런 1개?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살아보니 버텨온 시간이 결국 사람의 밑바닥이 된다는 걸 안다.

기쁠 때는 그 시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뭔가 잘 안 풀릴 때, 속이 바짝 타들어 갈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 시간이 발밑에 깔려 있다는 게 느껴진다. 버텨온 것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걸.

2009년, 박동원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히어로즈라는, 당시 선수단 버스도 제대로 못 굴리던 팀의 신인 포수. 포지션은 포수인데 포수답게 쓰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 마스크를 쓸 자격을 증명하는 게 먼저였던 시절. 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캠프 불펜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고 또 받았다. 그리고 또 받았다.

포수는 야구에서 가장 외로운 포지션이다. 18.44미터 마운드 끝에서 날아오는 공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경기가 끝나면 등에 새겨지는 건 투수의 이름이다. 포수는 지워진다. 잘 막아도 당연한 것이 되고, 한 번 삐끗하면 그게 전부가 된다.

그 외로운 포지션에서 박동원은 오래 버텼다.

히어로즈 시절 그가 쌓아온 것은 단순히 홈런 숫자가 아니었다.

공격형 포수라는 수식어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포수는 기본적으로 수비가 먼저다. 투수 리드, 블로킹, 도루 저지, 경기 흐름을 읽는 눈. 그 모든 걸 갖추고 나서야 타격이 보너스로 붙는다. 박동원은 그 보너스 타격이 리그 정상급이었다. 포수가 20홈런을 친다는 건, 외야수가 30홈런을 치는 것과 비슷한 무게다. 체력 소모와 집중력 소진이 가장 극심한 포지션에서, 그는 꾸준히 방망이를 돌렸다.

2022년, 그는 KIA로 옮겼고 그해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LG가 손을 내밀었다. 4년 65억. 당시 구단은 말했다.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고. 거창한 표현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LG 투수진은 좋았다. 타선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무언가 큰 경기에서 흔들리는 경험이 있는 리더가 없었다. 박동원은 그 빈자리였다.

2023년, LG는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박동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투수 하나하나의 버릇을 꿰고 있었고, 포스트시즌의 공기가 어떤 건지 알고 있었다. 젊은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흔들릴 때, 그가 타임을 걸고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화의 결과는 남았다. 우승 트로피로.

그리고 2025년, 다시 한 번.

LG는 두 번째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박동원은 22홈런, 76타점을 쳤다. 포수가 22홈런을 친다는 사실이 얼마나 희소한지는, KBO 포수 홈런 리스트를 한 번만 훑어봐도 안다. 그 숫자는 프로 16년을 버텨온 사람이 만들어낸 숫자다.

그래서 지금의 슬럼프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6년 5월 현재, 33경기 타율 0.208. 홈런은 1개. 박동원이라는 이름 앞에 붙기 어색한 숫자들이다. 시즌 전 차명석 단장이 공개적으로 비FA 다년 계약 의사를 밝혔지만, 그 이야기는 조용히 사라졌다. 시즌이 시작됐고, 계약 소식은 없었다. 가을에 FA 시장에 나온다는 말만 흘러다닌다.

공 하나가 빠지면 협상 테이블이 좁아진다는 걸 선수들은 안다.

박동원도 알 것이다. 33경기 동안 담장을 넘긴 공이 단 하나였다는 걸. 시즌 전 20홈런 목표를 세웠는데, 지금 페이스면 그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라는 걸. 뜻대로 안 되는 방망이가 얼마나 속을 긁는지, 그 감각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박동원은 지금 슬럼프 중이지만, 출전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매 경기 투수 뒤에 서서 경기를 이끌고 있다. 포수가 타격이 안 풀린다고 앉아서 쉴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다. 몸 어딘가가 버텨주는 한, 마스크를 내려놓지 않는 게 포수의 숙명이다.

본인도 안다. 송구 메커니즘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공을 짧게 던지게 된다는 걸. 이미 공개 인터뷰에서 그걸 인정했다. 감추지 않았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문제를 알고, 고치고 있다고 했다. 그 솔직함이 16년 프로의 방식이다.

시즌은 아직 4개월 반이 남아있다.

야구에서 4개월 반은 긴 시간이다. 타자는 한 달 만에 타율을 0.080 끌어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그만큼 떨어뜨리기도 한다. 5월 타율 0.186이던 선수가 9월에 타율 1위를 달리는 일이 이 리그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홍창기가 같은 슬럼프를 겪고 있어서 팀 타선이 더 삐걱댄다. 두 명이 동시에 안 풀리니 기회가 올 때마다 맥이 끊긴다. LG가 2연패를 노리려면 결국 이 두 사람이 살아나야 한다. 팀도 안다. 선수들도 안다. 박동원도 안다.

그래서 지금 그가 마스크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홈런 하나 더 치고 싶다는 욕심이 아닐 것이다. 제 폼을 되찾고 싶다는 것. 팀이 기회를 잡을 때 내가 끊지 않고 싶다는 것. 그리고 가을에 FA 시장에 나서는 그날, 올해가 아쉬운 시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65억짜리 계약이 어떻게 쓰였냐는 질문에 LG 팬들은 우승 트로피 두 개를 가리킨다.

포수 포지션에서 두 번의 우승을 만든 선수에게, 5월 홈런 1개로 무언가를 단정하는 건 이르다. 포수는 원래 타율로 기억되는 포지션이 아니다. 마운드 위에서 흔들리던 투수가 얼마나 다시 잡혔는지, 빅이닝을 막은 투구가 몇 번이었는지, 그런 숫자들이 박동원을 설명한다.

지금 숫자들이 나쁜 건 사실이다. 하지만 16년을 살아남은 포수가 5월에 무너지는 걸 본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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