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닉의 헤드폰 앰프, 서스바라 헤드폰을 춤추게 하다

Allnic HPA-10000 OTL/OCL

얼마 전 대한민국 제작사 올닉(Allnic)에서 제안이 왔다. 새 헤드폰 앰프가 나왔는데 하이파이맨의 서스바라(Susvara) 평판 헤드폰도 함께 빌려 드릴 테니 둘을 들어보고 솔직한 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올닉의 거의 모든 앰프와 케이블을 들어보고 서스바라의 명성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당연히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해서 필자의 시청실에서 만난 헤드폰 앰프가 바로 HPA-10000 OTL/OCL이다. OTL/OCL이면 출력 트랜스와 출력 커패시터를 없애 음의 순도를 높였다는 것이고, HPA-10000이면 예전 HPA-5000을 뛰어넘는 플래그십 헤드폰 앰프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HPA-5000과는 외관부터 투입 진공관, 결정적으로 소리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전면에는 위에 커다란 볼륨 노브가 있고, 그 아래 양 사이드에 진공관 상태를 모니터할 수 있는 밸런스 미터를 비롯해, 전원 버튼, 입력 선택 버튼, 5개 입력 표시 LED, 4개의 헤드폰 잭(6.3mm 2개, 4P 밸런스 2개)이 자리 잡고 있다. 후면은 전원 인렛과 함께 XLR 입력 단자 2조, RCA 입력 단자 3조, RCA 프리아웃 단자 1조가 마련됐다.

상판에는 앞쪽에 61단 정임피던스 어테뉴에이터, 뒤쪽에 전원 트랜스, 그리고 좌우 채널별 6개씩 총 12개의 진공관이 도열해 있다. 채널별 신호 흐름 순으로 짚어보면 1차 전압 증폭단에 복합관 7258 1개, 2차 전압 증폭 및 위상 반전, 드라이브단에 쌍3극관 6414(E180CC) 1개, SEPP로 구성된 출력단에 3극관 6C19P 4개가 투입됐다.

올닉 박강수 사장에 따르면 7258은 안에 3극관과 5극관이 들어 있어서 복합관인데, 3극관은 전압 증폭률(뮤)이 20 정도로 높아 전압 증폭을 맡고, 5극관은 내부 저항이 높아 뒤에 오는 드라이브단에 정전류를 공급해준다. 이 5극관은 또한 뮤가 무척 높아 OTL/OCL 구성에 꼭 필요한 피드백 회로 역할을 한다. 뒤에 오는 리크 뮬라드 위상 반전 회로의 공통 캐소드 저항 역할을 하는 것도 7258 안의 5극관이다. 이 밖에 6414는 뮤가 40에 달해 2차 전압 증폭 및 드라이브관, 6C19P는 내부 저항이 400Ω으로 낮아 SEPP 출력관으로 선택했다. 스펙을 더 보면 전압 게인은 28dB, 출력은 10W이며, 20-600Ω 헤드폰에 모두 대응한다. THD는 0.03%(1kHz), S/N비는 -90dB.

HPA-10000 OTL/OCL 헤드폰 앰프에 서스바라 헤드폰을 물려 본격 청음에 들어갔다. 서스바라는 공칭 임피던스 60Ω, 감도 83dB의 평판 플래너 헤드폰으로 주파수 응답 특성은 6Hz-75kHz를 보인다. 소스기기는 솜 sMS-200 울트라, 코드 M-Scaler, 마이텍 맨해튼 Ⅱ DAC를 투입해 룬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먼저 다이애나 크롤의 ‘No Moon At All’을 들어보면 청감상 착색이 1도 없는 상태에서 상당히 스트레이트하고 꾸밈이 없는 음이 나온다. S/N비도 월등히 좋다. 무엇보다 다이애나 크롤이 필자의 머리 위에서 속삭이듯 노래하고, 녹음실 벽에 맞고 돌아오는 목소리 잔향음이 역대급으로 생생히 들린 점이 인상적. 후반부 피아노 고음은 워낙 맑디맑아서 헤드 스테이지가 뻥 뚫린 느낌까지 받았다.

장사익의 ‘대전블루스’에서는 똑 부러진 피아노 소리에 장사익의 내지르는 고음이 올라타니 현기증마저 돋았다. 음이 싱싱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 올닉 박강수 사장이 왜 ‘HPA-10000으로 서스바라를 들으면 정전 헤드폰 같은 고음을 낼 것’이라고 말했는지 비로소 실감 난다. 헤드폰 앰프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기타줄 튕기는 공진음까지 모조리 포착해낸다. 이처럼 음의 출발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는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힐러리 한이 연주한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2번에서는 입체적인 무대와 앞·뒤 레이어가 잘 잡힌 악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헤드 스테이지가 무척 투명하고 재생음에서 개운한 맛이 도는 것은 역시 OTL/OCL 앰프의 특권. 지금까지 듣던 볼륨을 24에서 6으로 팍 줄여도 전체적인 폼이라든가, 대역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다. 61단 정임피던스 어테뉴에이터의 공이다.

위켄드의 ‘Blinding Lights’는 볼륨을 30으로 높여 들었는데 HPA-10000 OTL/OCL이 그동안 숨겨왔던 포텐을 터뜨린다. 저음의 타격감이 상당한데도 귀가 오히려 편안해진다. 정확하면서도 야무진 음이다. 소니 롤린스의 ‘St. Thomas’에서는 드럼이 바로 앞에 있는 듯한 실체감에 깜짝 놀랐고, 색소폰의 저음은 천연세제로 잘 빤 후 뽀송뽀송하게 말린 천 기저귀를 뺨에 댄 듯했다. 알고 보니 이 헤드폰 앰프, 음색 맛집이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한 생상스 3번 오르간 교향곡에서는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이 빚어낸 저음이 마치 커다란 벽처럼 묵직하게 다가왔고, 여린 피아니시모 파트에서는 야들야들한 현악기들의 디테일이 빛났다. 햇과일처럼 싱싱하고 깨끗한 음의 진수성찬이다. 맞다. HPA-10000 OTL/OCL은 서스바라 헤드폰을 춤추게 만들었다. 대단한 헤드폰 앰프에 대단한 헤드폰이다. 글 | 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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