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후 ‘첫 글’ 공개… 외할머니와의 추억 다뤄

오은선 기자 2024. 10. 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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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첫 글이 공개됐다.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돌아본 짧은 글이다.

한강의 새 글은 15일 밤 발행된 이메일 구독 형식의 무크지(책과 잡지의 성격을 지닌 비정기간행물) '보풀' 3호에 실렸다.

이에 한강은 이번 호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흰머리를 깃털에 비유해 '깃털'이라는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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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첫 글이 공개됐다.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돌아본 짧은 글이다.

한강의 새 글은 15일 밤 발행된 이메일 구독 형식의 무크지(책과 잡지의 성격을 지닌 비정기간행물) ‘보풀’ 3호에 실렸다. 한강은 보풀에서 동인으로 활동하며 ‘보풀 사전’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보풀은 올 8월 한강을 비롯해 음악가 이햇빛, 사진작가 전명은, 전시기획자 최희승 등 4명이 함께 만든 무크지다.

이번 보풀 3호의 주제는 ‘새’다. 이에 한강은 이번 호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흰머리를 깃털에 비유해 ‘깃털’이라는 글을 적었다.

아래는 ‘깃털’의 전문.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11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의 '한승원 문학 학교'에서 회견을 열고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것은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사고를 친 것'"이라며 웃으며 한강 작가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모녀의 모습. (한승원 작가 제공)/뉴스1

깃털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

외갓집의 부엌 안쪽에는 널찍하고 어둑한 창고 방이 있었는데, 어린 내가 방학 때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제일 먼저 그 방으로 가셨다.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어서 먹어라. 내가 한입 베어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

외할머니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큰아들이 태어난 뒤 막내딸을 얻기까지 십이 년에 걸쳐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동그랗게 틀어올려 은비녀를 꽂은 사람. 반들반들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혼자 외가로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올라오던 아침, 발톱을 깎아드리자 할머니는 ‘하나도 안 아프게 깎는다…(네 엄마가) 잘 키웠다’고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쓸었다. 헤어질 때면 언제나 했던 인삿말을 그날도 하셨다. 아프지 마라. 엄마 말 잘 듣고. 그해 10월 부고를 듣고 외가에 내려간 밤, 먼저 내려와 있던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볼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잡고 병풍 뒤로 가 고요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 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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