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첫 월드컵 개막식에 선 정국… FIFA는 왜 K팝으로 문 열었을까

윤수정 기자 2022. 11.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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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정국이 저기 선 게 실화야?”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월드컵 공식 사운드트랙 '드러머스'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뉴스1

지난 20일 오후(현지 시각) 카타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 무대 직후 소셜미디어에서 각국 언어로 이어진 반응.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막내 정국(본명 전정국·25)이 한국 가수 최초로 해외 월드컵 개막식 무대에 섰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선 “중동 지역 첫 월드컵 개막식에 왜 K팝 스타가 섰을까?”란 물음표도 이어졌다.

◇현대차 때문? 정국 콕 집은 피파(FIFA)

이날 정국은 월드컵 공식 주제가 ‘드리머스(Dreamers)’를 열창했다. 2절 후반부터 카타르 인기 가수 파하드 알 쿠바이시(41)가 등장해 함께 가창하긴 했지만, 사실상 곡의 대부분을 정국이 화려한 독무를 추며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이 곡은 특히 지난 19일 이번 월드컵의 네 번째 공식 주제가로 공개된 것. 당시 정국의 목소리로만 녹음된 음원이 발매 13시간 만에 전 세계 102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국 가수가 월드컵 공식 주제가 제작에 협업이 아닌 단독 가창자로 참여한 첫 사례였다. 개막식 직후 미국, 일본 등 해외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는 ‘월드컵’이 아닌 ‘정국’의 이름이 1위에 올랐다.

일각에선 전례 없는 정국의 무대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20일 ‘디 앤서(The Answer)’ 등 일본 외신이 보도한 정국의 개막식 공연 기사에는 “월드컵 스폰서인 현대자동차의 영향 덕분에 정국이 개막식 무대에 오른 것”이란 일부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렸다. BTS가 지난 9월 이번 카타르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의 광고 모델로서 ‘세기의 골 캠페인 송’ 음원을 발매했고, 이 과정에서 현대차의 월드컵 조직위에 대한 입김으로 정국의 개막식 무대 또한 성사됐단 주장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피파(FIFA) 측은 한 달 전쯤부터 현대차를 거치지 않고 하이브 본사, 하이브 미국 지부, 하이브 산하 BTS 전담 레이블인 빅히트뮤직 등을 다양하게 직접 두드리며 정국 섭외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피파 측은 특히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BTS 멤버 중 정국을 콕 집어 섭외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K팝-월드컵, ‘다양성’ 맞춤형

평론가들 사이에선 피파가 정국에게 러브콜을 보낸 게 ‘다문화’ ‘다양성’ ‘평화’ 등 이번 월드컵에 내 건 모토를 신경 쓴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 월드컵 개막식과 폐막식을 맡은 이탈리아 출신 연출가 마르코 발리치는 앞서 “개막식에서 다문화, 다양성, 평화를 강조해달라는 카타르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기획 의도에 다문화와 다양성 존중, 친환경 등 화두에 목소리를 내 온 BTS와 팬덤 아미(ARMY)의 그간 행보가 잘 맞아떨어졌단 것이다.

흥행 측면에서도 BTS와 정국의 이름은 개최국인 카타르와 중동 문화권 뿐 아니라 북미 등 세계적인 음악 시장 인기를 동시에 충족시킬 카드로 꼽힌다. 그간 카타르는 BTS가 신곡을 낼 때마다 지역 아이튠즈 음원 차트 성적에서 1위를 자주 차지한 곳. 멤버 정국의 이름은 미국 K팝 팬덤 내에서 ‘대중이 익히 아는 대표 이름’을 뜻하는 은어 ‘하우스홀드 네임(Household name)’으로 불린다. 지난달 찰리 푸스와 낸 협업곡 ‘레프트 앤 라이트’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K팝 아이돌로서는 최장 기간(17주) 연속 이름을 올렸고,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2021)’, 미국 훌루(Hulu) 방영 시트콤 ‘하우 아이 멧 유어 파더(2022)’ 등 각종 북미권 인기 방영물에서 대사로 이름이 언급돼 와서다.

개막식 직전까지 축구 경기장 건설 이주 노동자 사망 사건, 동성애 불법 정책 등으로 지속적인 인권 문제 지적을 받은 카타르 정부와 월드컵 조직위 입장에서 K팝이 가장 포용력 높은 선택지였을 거란 해석도 있다. BTS는 특히 2019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관중 6만 규모의 스터디움 공연을 연 최초의 비아랍권 가수이기도 하다. 당시 무슬림 여성 수만 명이 수도 리야드의 킹 파드 인터내셔널 스터디움에서 히잡과 아바야(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 전통 복장)를 착용한 채 BTS 음악을 즐겼고, 외신들은 “BTS가 문화의 벽을 깼다”고 보도했다. 그 전까지 사우디에선 이 같은 공연은 커녕 축구 경기장 입장조차 여성들에게 금지됐었다.

김도헌 평론가는 “K팝 스타와 팬덤은 폭넓은 세대와 인종을 포용하는 메시지를 자주 던지는 반면 민감한 정치적 갈등 주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한다”며 “축제의 장을 만들기엔 가장 부담이 적고, 최적의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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