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쌀 시장 개방 여부를 두고 양국의 발표가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백악관은 “한국이 쌀을 포함한 미국산 상품에 대한 역사적인 시장 접근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강조했지만, 한국 정부는 “추가 개방은 없다”며 즉각 반박했습니다.

이번 논란은 7월 말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관세 협상 결과 발표에서 비롯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 완전히 개방할 것이며 자동차, 트럭, 농업 제품 등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7월 31일(현지시간)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도 “한국은 자동차와 쌀을 포함한 미국산 상품에 시장을 개방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내놓았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귀국 직후 “쌀과 관련해 추가 개방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고, 대통령실 대변인 강유정은 “농축산물 시장의 99.7%는 이미 개방돼 있으며 남은 0.3%를 더 열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세부 검역 절차나 통관 과정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겼지만, ‘시장 개방’이라는 표현에는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온도 차의 배경에 양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미국은 농산물 시장 개방을 협상의 성과로 강조해 자국 농업계와 정치권의 지지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한 무역 성과를 부각할 이유가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내 농업계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쌀은 농업 보호의 상징적인 품목으로, 추가 개방 논의만으로도 농가와 여론의 강한 저항이 예상됩니다. 정부가 “검역 절차 개선” 정도로 협상의 성격을 축소 해석하는 것은 이런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협상 내용의 모호함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미국은 “역사적인 시장 접근”이라는 포괄적 표현을 사용한 반면, 한국은 개방 폭과 품목을 명확히 한정해 발표했습니다. 실제 협상 문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일한 합의 사항을 두고도 해석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번 협상에서는 한국이 미국 산업 활성화를 위해 3,500억 달러(약 455조 원)를 투자하고, 2028년까지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한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관세율은 자동차를 포함해 15%로 조정됐습니다. 다만 투자 수익의 90%가 미국 정부에 귀속된다는 백악관 설명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은 펀드 운영 과정에서 확정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쌀 시장 개방 논란이 향후 관세 협상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는 “양국의 발표가 다르다는 것은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미국이 언제든 추가 요구를 꺼내 들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한편, 국내 농가의 반발도 커지고 있습니다. 사과 재배 농가 등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는 국내 농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지난달 31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향후 쌀 시장 개방 여부는 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입장 차이는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미국이 향후 협상에서 추가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발표 해석 차이를 넘어,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민감한 현안을 둘러싼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부딪힌 결과로 풀이됩니다. 향후 정상회담에서 얼마나 명확한 합의가 이뤄질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