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 인출하니 안심”… 중소은행 ‘뱅크런’ 불씨는 여전
워싱턴 지점 문 닫고 사무실 이사
보안요원 “그들 더는 이곳에 없어”
美 예금보호 초강수에 급한 불 꺼
은행주 폭락 따라 상황 예의주시
2월 소비자물가지수 6.0% 올라
17개월 만에 최소폭으로 상승
바이든·민주 ‘트럼프 책임론’ 띄워
“규제 강화법 요건 일부 폐지” 직격
공화당, 증세 가능성 등 거론 맞서
트럼프 “더 큰 대공황 올 것” 비난
투자자 기대감 반영 나스닥 상승
美 경제지 ‘오렌지 카운티’ 언급
“금리 동결·인하 뒤 주식시장 활황”
“사무실 문 닫았어요. 그들은 떠났습니다.”

SVB 계좌 거래 정지가 풀린 13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SVB 워싱턴지점 건물은 예금 인출을 하기 위해 고객이 몰려들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한산했다. 포토맥강이 내려다보이는 31층 건물 21층에 자리 잡은 SVB 워싱턴지점은 이렇다 할 간판 하나 없었고, 출입증이 있어야만 접근 가능했다.
이날 SVB와 뉴욕에 본사를 둔 시그니처은행의 연쇄 폐쇄로 미국 시장을 덮친 줄도산 공포는 전날 연방정부가 고객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 부족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대책을 발표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뉴욕증시 개장 시간에 맞춰 한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수차례 강조하며 공포 확산을 차단하는 데 집중했다.

급한 불은 잡았지만 지방중소은행 등을 중심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사태가 벌어질 불씨는 여전하다. 업계 소식에 정통한 워싱턴 관계자는 통화에서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대해서는 전액 보증 조치를 했지만 다른 지방중소은행의 경우에도 전액 보증 조치가 가능한지 아닌지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연준이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대출 제도를 내놓았지만 제도를 활용할 경우 낙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어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행주는 폭락했다. CNBC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인근 중소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의 주가는 지난주 33% 급락한 데 이어 이날 추가로 61.8% 폭락했다. 웨스턴 얼라이언스 은행은 47%, 팩웨스트 뱅코프는 45.3% 주가가 급락했다. 지역 중소은행인 키코프와 자이언뱅코퍼레이션 주가도 각각 27%, 25.7% 급락했다. 미국의 대표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가도 5.8% 하락했다. 특히 시그니처은행은 지난 10일 하루에만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갔다고 CNBC는 전했다.
한편 미국 노동부는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했다고 14일 밝혔다. 2021년 9월(5.4%) 이후 17개월 만에 최소폭 상승이다. 전월 대비로는 0.4% 올라 8개월 연속 전월 대비 상승폭이 줄었다. 1월 CPI 상승률이 시장 전망치(6.2%)를 웃도는 6.4%를 기록하면서 인플레이션의 견조한 흐름을 나타냈다면, 지난달은 전망치와 일치했고 상승폭도 완화했다. 이에 따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번 은행 사태 등을 고려해 오는 22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치거나 아예 금리 동결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에 더욱 힘이 실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CPI 발표 직후인 이날 오후 10시 현재 금리 0.25% 인상 가능성을 91.5%, 동결 가능성을 8.5%로 전망했다.
◆대선 앞둔 美 정치권, SVB 사태 놓고 책임 떠넘기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2024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판에서 책임 떠넘기기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이후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테스트 대상이 되는 은행의 자산 기준을 2500억달러로 높이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수정안을 통해 500억∼2500억달러 자산 규모의 은행은 테스트를 면제받거나 2년에 한 번 치르게 됐다. 지난해 기준 총자산 2090억달러인 SVB가 이 범위에 든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일제히 경제위기·증세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바이든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트럼프 정부 당시 금융 규제 완화가 SVB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니키 헤일리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SVB 예금 전액 보호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SNS에서 “구제 금융이 아닌 척하고 있다”며 “연방예금보험공사의 기금이 소진되면 결국 납세자들의 부담이 될 것”이라며 증세 공포를 자극했다.
같은 당 잠재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전날 방송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포용성 등을 추구한 SVB의 인사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폭스뉴스에서 “이 은행은 다양성·공평함·평등성(DEI) 등 (좌파) 정치와 같은 것에 너무 관심을 쏟았고 이 때문에 핵심 임무에 집중하는 데서 멀어졌다”고 주장했다.
◆기준금리 속도조절 가능성… 증시 호재 기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결과를 낳아 오히려 주식시장에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미 경제지 마켓인사이더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매체는 1994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 파산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에도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파산의 원인이 됐고, 연준은 금리를 동결했다가 다음해 여름 인하했다”며 “그 후 주식시장은 몇 년 동안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1994년 오렌지 카운티 회계 담당자의 채권 및 파생금융상품 투자 실패로 17억달러(약 2조2200억원) 손실이 발생했고, 오렌지 카운티는 결국 연방정부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미 국채 금리(수익률) 급락도 주식시장에는 호조다. SVB 여파로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미 국채 시장에 모여들자 채권 가격이 올랐고, 이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는 폭락했다. 미국의 2년물 국채 금리는 전날 대비 0.6% 가까이 떨어졌고, 10년물 국채 금리도 3거래일 연속 떨어져 3.58%를 기록했다.
한편 SVB 매각을 시도했다 실패한 미 금융당국이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두 번째 경매를 계획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다만 두 번째 입찰 일정은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앞서 전날 실시된 SVB 매각 경매에 대형 은행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적어도 다른 기관 한 곳이 응찰했지만,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링턴=박영준 특파원 ,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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