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한 금액만 "무려 200억이 넘는다는 트로트 계 대모라고 불리는" 여가수

하춘화, 63년 무대 위 인생과 200억 원 기부의 기록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살아있는 전설 하춘화. 1961년, 만 6세의 나이에 데뷔해 어느덧 63년째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는, 단순한 장수 가수를 넘어 ‘기록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마이클 잭슨이 만 5세에 데뷔하기 전까지 하춘화는 세계 최연소 음반 출반 가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60년 넘는 세월 동안 정식 음반에 수록·발매된 곡만 2,600곡이 넘고, 누적 공연 횟수는 8,500회를 돌파했다.

이 모든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만큼 압도적이다. 그러나 하춘화의 진짜 가치는 ‘기록’이 아니라 ‘나눔’에 있다. 지난 50여 년간 하춘화가 기부한 누적 금액은 무려 200억 원을 넘어선다.

📌 하춘화는 63년째 무대에 서며 200억 원이 넘는 기부를 실천한 기록의 아이콘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나눔의 DNA’

하춘화가 어린 나이부터 가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 하종오의 영향이 컸다.

하종오는 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뿐 아니라,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몸소 가르쳤다.

하춘화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받은 이 가르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며, 자신이 실천한 기부와 봉사의 공을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 돌린다.

실제로 하춘화는 자신이 얼마나 기부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나누기 위해 주어진 돈’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 하춘화의 나눔은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삶의 신념이다.

고향에 세운 학교, ‘하춘화 고등학교’의 탄생

1976년, 19세의 하춘화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인 전남 영암군에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영암에는 고등학교가 없어, 학생들은 광주나 목포로 유학을 가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딸에게 “함께 학교를 짓자”고 제안했고, 두 부녀의 뜻에 영암 출신 인사들의 지원이 이어졌다.

그렇게 설립 인가를 받고 1977년 개교한 학교가 바로 ‘영암낭주고등학교’다. 개교식 당일, 하춘화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하 공연을 펼쳤고, 2만여 명의 시민이 운집해 감동을 나눴다.

덕분에 영암 주민들은 지금도 이 학교를 ‘하춘화 고등학교’라고 부른다.

📌 하춘화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에 고등학교를 세우며 지역사회에 큰 기여를 했다.

50년 넘는 기부, ‘나누기 위해 주어진 돈’

하춘화의 기부는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10대 때부터 시작된 기부와 봉사는 50년 넘게 이어졌고, 누적 금액이 200억 원을 넘는다.

하춘화는 “한 번도 이 돈이 내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나누기 위해 주어진 돈”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기부한 금액을 정확히 알지 못할 만큼, 기부와 나눔을 생활화해왔다.

이런 태도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다.

📌 하춘화의 기부는 50년 넘게 이어져온 생활 속 나눔의 실천이다.

기록을 넘어선 ‘나눔의 아이콘’

하춘화가 세운 기록은 숫자만으로도 놀랍다.

2,600여 곡의 음반, 8,500회가 넘는 공연, 그리고 200억 원이 넘는 기부금.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남긴 것은 ‘나눔의 정신’이다.

하춘화는 “내가 가진 건 모두 나누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며, 기부와 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보여줬다.

그는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게 돌리며, “아버지의 가르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 하춘화는 기록을 넘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진정한 아이콘이다.

‘하춘화 고등학교’와 지역사회의 변화

영암낭주고등학교(일명 하춘화 고등학교)는 지역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고등학교가 없어 유학을 떠나야 했던 학생들은 이제 고향에서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하춘화는 개교식에서 2만 명의 시민들과 감격을 나누며,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지역사회 리더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이후에도 하춘화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하춘화 고등학교는 지역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부는 내 삶의 일부’…하춘화의 겸손과 신념

하춘화는 자신이 이룬 모든 기록과 기부에 대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가르침과 주변의 도움 덕분”이라며 겸손을 잃지 않는다.

그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평생 실천해왔다.

하춘화의 삶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 그리고 겸손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 하춘화는 겸손과 배려, 나눔의 신념을 평생 실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