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고척 롯데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955일 만에 마운드로 돌아온 안우진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진짜 영웅은 따로 있었다. 안우진이 1이닝을 던지고 내려간 뒤 바통을 이어받은 배동현(28·키움)이 6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3연패를 끊어낸 것이다.
시즌 3승째, 리그 다승 공동 1위. 키움이 거둔 4승 중 3승이 배동현의 몫이다. 한화가 2차 드래프트로 내보낸 투수가 키움 에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배동현의 등에 새겨진 61번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2019년 11월, 절친이 떠났다

61번은 원래 고(故) 김성훈의 등번호였다. 2019년 11월 23일, 한화의 유망주 투수 김성훈이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무리 캠프를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광주로 이동했다가 다음날 새벽 건물 9층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이다. 경찰은 CCTV 분석 결과 실족에 따른 사고사로 결론 내렸다.

김성훈은 KIA 김민호 수비코치의 아들로, 2017년 2차 2라운드로 한화에 입단해 2018년 7월 1군에 데뷔했다. 2019시즌 15경기에 출전하며 미래를 기대받던 투수였다. 배동현과는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 살며 우정을 쌓아온 경기고 동기생이자 절친이었다.
61번 값어치 하겠다고 약속

배동현은 2021년 한화에서 첫 선발 데뷔전을 치른 뒤 "성훈이 등번호의 값어치를 할 수 있게끔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61번은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올 시즌 2차 드래프트로 키움에 이적하면서도 61번을 고집한 이유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화에서 못 받은 기회, 키움에서 잡다

배동현은 한일장신대를 졸업한 2021년 2차 5라운드 42순위로 한화에 입단했다. 그해 20경기에 등판했지만, 이후 1군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2024년 퓨처스리그에서 29경기 평균자책점 0.30을 기록했는데도 1군 콜업은 없었다. 결국 올 시즌을 앞두고 2차 드래프트 3라운드로 키움에 넘어왔다.
키움에서 4선발 기회를 얻은 배동현은 바로 결과를 냈다. 개막 후 4경기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65. 16⅓이닝 동안 볼넷은 단 2개뿐이다. 등판할 때마다 팀의 연패를 끊으며 '연패 스토퍼'로 자리 잡았다.
"우진이 뒤를 지켜주고 싶었다"

이날 배동현은 선발이 아닌 두 번째 투수로 올라갔다. 시속 160km를 뿌린 안우진 뒤에 등판하는 건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배동현은 개의치 않았다.
"선발투수로 준비할 때와 두 번째 투수로 준비하는 부분이 차이가 있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오늘은 우진이의 복귀전인 만큼 우진이의 뒤를 지켜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안우진도 경기 후 "내가 선발로 나가서 동현이 형 선발승이 또 안 되는 것 같아서 죄송했는데, 동현이 형이 괜찮다고 먼저 말해주고 이해를 잘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배동현은 "어쩌다 보니 팀의 연패를 계속 끊고 있는데, 다음에는 연승을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