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왜 ‘명박사’를 믿었나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는 느낌이다. 명태균씨 관련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이 입장을 밝혔는데, 개운하지가 않다. 명태균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당시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 자택에 셀 수 없이 방문했으며 중요한 여러 정치적 조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설명은 윤 대통령이 명태균씨를 국민의힘 입당 전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가 소개해줘 자택에서 만났고, 이후 ‘국민의힘 정치인’ 역시 함께 찾아와 만났을 뿐이고, 선거 과정에 관계를 끊었으며 취임 이후에는 연락한 일이 없다는 거다. ‘명태균씨가 자택을 방문한 일도 없고 따로 만난 일도 없다’는 내용이 아니라는 게 일단 놀랍다.
김종인 “명태균이 김건희 여사 바꿔주더라”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는 당시 당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이준석 의원은 2024년 10월9일 채널에이(A)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자신은 명태균씨를 소개한 일이 없으며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명태균씨가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본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도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처음 식당에서 만날 때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가 동석했다고 밝혔고, 동아일보와 한 통화에선 식사 약속을 잡을 당시 명태균씨가 전화를 걸어온 뒤 김건희 여사를 바꿔주더라고 증언했다. “그 사람들은 상당히 친밀한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로 ‘명태균씨는 우리 쪽 사람이 아니다’란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명태균씨를 허풍쟁이로 묘사해온 여당 사람들 주장이 우스워진다. 더군다나 명태균씨는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일부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검찰이 나를 수사하면)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할 것”(채널A),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안 나온 거야, 지금. 그러다가 입 열면 진짜 뒤집히지”(JTBC)라는 등의 엄포성 발언도 내놓았다. 권력에 경고를 보내면서도 사실상 보호를 요청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법한 대목인데, 용산을 포함해 보수 진영 전체가 이런 일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여의도를 오래 다닌 사람들 입장에선 ‘현타’가 오는 모양이다. 가령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10월8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업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검증된 컨설턴트나 잘 알려진 여론조사 업체도 많은데 왜 이런 인사가 주류 정치의 핵심에 관여하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다.
실제 명태균씨는 정식 학위는 없지만 ‘명 박사’로 불렸다고 하는데, 동아일보 인터뷰에 의하면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걸 다 가서 해결하고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발언은 과장일 거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명태균씨를 ‘명 박사’라고 불렀다는 얘기는 이준석 의원을 포함해 복수의 인사가 전하는 바다. 단순한 호칭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앞서 ‘자괴감’의 맥락과 연결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뭘 믿고 ‘명 박사’에게 해결사 역할을 주문한 것일까?
역대급 반지성적 정권의 탄생
첫째 단서는 ‘실적’이다. 동아일보의 10월7일 보도에 따르면 2021년 4월 보궐선거 전후로 국민의힘 내엔 “명씨와 인연 맺지 말라”는 얘기가 공유될 정도였다고 한다. 부담스러운 위험인물로 이미 찍혔다는 얘기다. 그런데 단 몇 개월 만에 명태균씨는 유력 대선 후보의 책사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21년 6월, 이준석 의원의 국민의힘 대표 당선을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 명태균씨는 ‘내가 이준석 대표를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이준석 대표를 만든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정치를 막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겐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둘째 단서는 ‘세계관’이다. ‘실적’이 그렇더라도, 명태균씨가 책사나 해결사 노릇을 하려면 결정권자가 ‘검증된 컨설턴트’와 ‘명 박사’에게 동일한 위상을 부여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즉, 의혹이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인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그런 세계관의 소유자일 확률도 높아진다는 거다. 이렇게 학위나 공식적 연구 결과, 업력이 직관과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노하우,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조사 수치로 대체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문 용어로 ‘반지성주의’라고 한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윤석열 정권은 그 어떤 정권보다도 반지성적인 기반 위에서 출발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전 정권을 향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그 ‘반지성주의’다.
반지성적 정권의 출현은, 우리 공동체의 정치적 토양 때문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기득권의 지성적(?) 엘리트들이 분발하면 그 토양을 일부라도 바꿔나갈 수 있으련만, 이 정권에선 어렵다. ‘역대급’ 여소야대를 만든 총선 결과도 권력 핵심부의 세계관을 바꾸진 못했다.
최근 여의도 담론이 마치 깔때기에 흐르는 물처럼 ‘탄핵’으로 모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권력이 변화를 거부하는데, 논리적으로 어떤 다른 수단이 있겠는가? 이에 대한 여당의 방어 논리는 애초 ‘탄핵 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여당은 ‘탄핵 논의는 그 자체로 반헌법적’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논리를 즐겨 쓴다.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자는 논의를 반헌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탄핵을 논의하자는 것 자체를 헌법에 위배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여당의 논리가 징후적이다. 더 이상 ‘탄핵 사유가 없다’고만 하기는 어려워진 게 아닌가?
변화 거부하는 권력에 ‘기승전 탄핵’
그러다보니 ‘2016년’을 연상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당시 정세는 여당의 내분이 결정적이었다. 모든 의혹의 중심인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던 친한동훈계는 이제 사실상의 공개 활동 중단까지 촉구하고 있다. 일부 인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의 기소 필요성도 주장했다. 그래야 특검 거부 논리가 선다는 취지다. 한동훈 대표도 이러한 주장에 공개적으로 동조했다. 심상찮은 당내외의 여론을 이제야 의식하는 것인지 대통령은 재보궐선거 이후 한동훈 대표와 독대하겠다고 했는데, 솥의 압력을 얼마나 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이제 오랜 격언을 다시 꺼내 볼 때인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반환점을 채 돌지도 않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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