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응급의료 큰 위기 없었지만…“환자들 다시 상급병원 쏠릴 수도”

이정연 기자 2024. 9. 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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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응급실 환자 작년비 31%↓
분산 유도·본인부담금 인상 탓
충청도 임신부 강원도 이송 등
전국 곳곳 응급실 긴급 상황도
일부 대형병원 응급실에 군의관이 투입된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구급차를 타고 온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한가위 연휴에도 응급의료 체계가 우려와 달리 큰 혼란 없이 운영됐다. 중증 환자를 담당하는 응급실에 환자가 쏠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분산을 유도한 덕이다. 다만 당직 병의원이 적었던 추석 당일을 전후로 전국 곳곳의 응급실과 응급환자의 전원을 연결하는 상황실에선 위태로운 장면이 포착됐다.

18일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추석 당일인 17일 문을 연 당직 병의원은 2223곳이었다. 한가위 연휴 기간 가장 적은 규모다. 대부분의 당직 병의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혹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열었다. 이 때문에 추석 당일 늦은 오후와 저녁에 발생한 환자들은 병원을 찾는 데 혼란을 겪어야 했다.

17일 오후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만난 주아무개(48)씨는 70대 후반의 어머니와 동행했다. 평소 건강하던 어머니가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주씨는 “뇌 관련 질환일까 싶어서 일단 집 근처에 가장 큰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응급실 밖에서 대기하던 그는 연신 전화를 해댔다. 주씨는 “혹시 바로 처치가 안 될까봐 다른 병원도 찾고 있다”며 “지금까지 서너 군데 전화를 걸었는데, 처치와 입원이 가능한 곳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사는 진아무개(37)씨는 추석 당일 늦은 오후 팔을 다쳤다. 전화를 10군데 정도 돌려 갈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선 “오시는 건 상관없지만, 대기 시간이 얼마나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진씨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을 요즘 농반진반으로 했는데, 급한 입장이 되니 정말 심란하다”고 말했다.

추석 당일 극심한 교통체증 우려로 환자 이송에 소방헬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17일 충청 지역에서 한 임신부가 복통을 호소했지만 주변에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없었다. 강원도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한 걸 확인해, 임신부는 교통체증을 피해 소방헬기로 이송됐다.

중증 응급 환자의 이송, 의료기관 간 전원 등을 연결하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도 긴박한 상황이 잇따라 전해졌다. 18일 국립의료원과 광역응급의료상황실 등에 따르면, 16일 저녁 충북 옥천에서 한 60대 남성이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폐에 피가 고이고, 복부가 파열돼 흉부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 5개의 협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옥천의 한 병원은 주변 병원에 전원을 알아봤지만 계속 거절당하자 결국 광역응급의료상황실(광역상황실)에 연락했다. 광역상황실은 전국에 병원을 수소문했고, 16일 밤 10시30분께 서울에 있는 한 외상센터가 수용 의사를 밝혀와 환자를 옮길 수 있었다. 6개 광역상황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을 16일 저녁 8시부터 17일 저녁 8시까지 꼬박 24시간 지킨 차명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은 “의-정 갈등이 아니었다면 더 가까운 외상센터에서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 덕분에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 위기 상황이 곳곳에서 빚어졌지만, 이번 연휴 전체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크게 줄었다. 이날 보건복지부가 낸 ‘응급의료 관련 통계’를 보면, 추석 연휴인 지난 14~17일 전국 411개 응급의료기관의 하루 평균 내원 환자 수는 2만7505명으로 지난해 추석 연휴(지난해 9월28일~10월3일, 3만9911명)보다 31.1% 줄었다. 경증에 해당하는 ‘케이타스’(KTAS·한국형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도구) 4~5등급 환자는 14~17일 하루 평균 1만6157명으로 지난해 추석 연휴(2만6003명)보다 37.9% 줄었다.

경증·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방문 감소는 13일부터 적용된 본인부담금 인상 등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추석 당일 저녁 고미진씨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의 한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았다가 10만원이 훌쩍 넘는 진료비를 냈다. 고씨는 “응급실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 돈이 없으면 병원도 제대로 갈 수 없으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 본인부담) 비용 문제나 진료가 제한될까 싶어 대형병원의 응급실을 가야 하는데 의원에 와서 치료를 해달라는 환자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며 “문제는 이런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못 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선 이런 이유로 연휴 이후 증세가 악화한 채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 것을 우려했다. 이형민 회장은 “연휴 뒤 상태가 나빠진 환자들이 대거 병원을 찾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휴 기간 2차 병원이나 병의원으로 분산됐던 환자들이 다시 대학병원 등 상급병원으로 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연 이정훈 천호성 임재희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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