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 커지는데···‘美보다 먼저 내릴 수 있나’ 고민하는 이유 [조지원의 BOK리포트]
“빠르면 내년 1분기부터 금리 내린다”
인하 쉽지 않아···기대 조정시 변동성↑
근원물가보면 韓 먼저 2% 도달할 수도
美보다 먼저 내릴 수 ‘있다’ 對 ‘없다’
가계부채 놓고도 금통위도 ‘동상이몽’
미국, 유로존, 영국 등 주요국에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금리를 곧 내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위험자산 선호에 힘이 실리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주가 상승, 금리 하락, 달러 약세 등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다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먼저 시장의 기대만큼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금리 인하가 빨라질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10월 들어 물가 상승 폭이 확대된 우리나라의 디스인플레이션 속도도 봐야 한다.
시장에서 기대하는 대로 미 연준이 내년에 빠르게 금리를 내린다면 한국은행은 정책 선택의 폭이 확 넓어진다. 그러나 국내 물가가 미국보다 먼저 안정된다면 한은은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려도 괜찮을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을 어느 정도까지 염두에 둬야 할지도 고민거리다.
현시점에서 몇 가지 의문점을 종합해서 판단하면 미국이 빠르게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고 오히려 한국의 디스인플레이션 속도가 빨라지면서 물가 목표인 2%에 먼저 도달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내년 통화정책 주요 화두는 한은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을 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환율과 외국인 자금 흐름을 봐야 하는데 수출과 경상수지, 그리고 가계부채가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연준, 내년에 4차례 금리 인하” 환호하는 시장 - 영국에 유로까지 들썩
시작은 지난 14일 발표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CPI)였다. 10월 물가 상승률이 3.2%로 예상치보다 낮게 발표되자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금리 인상이 종료됐다고 환호하면서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준이 내년 상반기까진 고금리 영향을 지켜보다가 3분기 인하 신호를 내고 4분기 실제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대세였는데 그보다 반년 이상 빠른 호흡이다. 20일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 연준은 내년 5월, 7월, 9월, 11월에 각각 0.25%포인트씩 네 차례 금리 인하할 가능성이 표시돼 있다.
마침 뒤이어 발표된 영국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4.6%로 전월(6.7%)보다 상승 폭이 크게 둔화됐다. 2021년 10월(4.2%)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번 물가 발표 이후 영란은행의 금리 인상 종료 기대는 92%로 전일보다 4%포인트나 높아졌다. 일부 투자은행(IB)은 영란은행이 내년 6월부터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등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앞당겼다.
유로존 역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9%로 전월(4.3%)보다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유로 역시 2021년 7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물가 성적표를 받았다. 일부 분석기관은 내년 3월까지 유로존의 근원 물가가 2.5%로 하락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 예상보다 빠른 내년 3월부터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국 금리 인하는 정말 빨라질까? - 괴리됐다 조정되며 확대되는 변동성
그러나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만큼 그렇지 않을 것이란 반대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10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4.0%로 시장 예상치(4.1%)보단 낮아졌으나 헤드라인 CPI 상승률(3.2%)보단 크게 높다. 미국의 노동시장이 아직 견조하기 때문에 수요 측 요인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연준이 금리를 한 차례 내리더라도 빠른 속도로 낮추기보단 물가 재상승 가능성을 우려하며 고금리 수준을 오랫동안 유지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연준 내 주요 인사들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절실한 미 연준 입장에서 섣부른 금리 인하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에서 금리 인하 힌트를 찾는 시각도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9~10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최한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한 자리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차기 5년 통화정책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1년 후 발표하겠다고 했다. 물가가 목표 수준인 2%에 도달하더라도 해당 검토가 끝나기 전까지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에도 시장과 중앙은행 간 괴리가 벌어졌다가 다시 조정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변동성만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해 중반까지 시장에선 연준이 연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하다가 8~9월을 거치며 기대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높은 변동성을 겪은 바 있다. 이를 예측이라도 한 듯이 지난달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는 여러 금통위원이 “주요국 통화정책 긴축기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시장의 성급한 완화 기대를 조정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일 박민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IMF에 따르면 미국은 다른 국가보다 고용시장 불균형이 유발한 물가 상방 압력이 5배 이상 높다”며 “디스인플레이션 지속을 위해서는 고용시장 완화가 필요조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고용시장 불균형 해소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채권시장 온기는 쉽게 전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물가는 언제쯤 안정될까? - 디스인플레이션 핵심은 근원물가 움직임
10월 물가가 낮아지며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는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8%로 9월(3.7%)보다 높아졌다. 9월까지만 해도 미국과 물가 상승률이 3.7%로 같았는데 10월은 미국보다 0.6%포인트나 높다. 한국은 물가 정점이 6.3%(2022년 7월)로 미국(9.1%, 2022년 6월)보다 3%포인트 정도 낮았으나 역전된 것이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미국이나 유로존과 다르게 물가가 튄 가장 큰 요인은 농산물 가격이다. 농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8월 5.4%, 9월 7.2%, 10월 13.5% 등으로 이례적으로 추석 연휴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기상여건 악화 등으로 급등했던 농산물 가격이 점차 내리면서 소비자물가도 점차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은 산유국인 만큼 최근 유가 하락이 반영되는 속도가 빠른데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2~3주 정도 시차가 발생하는 것도 물가 하락 속도에 영향을 끼쳤다.
현재 CPI 지표보다 중요한 것은 물가 목표인 2%까지 수렴해가는 속도다. 그러려면 수요 측 물가 압력이 반영되는 근원물가가 안정돼야 한다. 한국의 10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3.2%로 전월(3.3%)보다 소폭 낮아졌다. 대중교통요금 인상에도 고금리 여파로 개인 서비스 물가 둔화 흐름이 나타난 영향이다. 미국(4.0%)이나 유로존(4.2%), 영국(5.7%) 등 주요국보다 2.5~0.8%포인트나 낮다.
아직 불확실성은 남았으나 근원물가가 비슷한 속도로 낮아진다고 한다면 한국이 물가 목표 2%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주요 IB들도 한국의 물가 목표 도달 시기가 2025년 상반기로 유로존(2025년 하반기), 미국(2026년)보다 최소 반년 이상 빠를 것으로 전망했다.
美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을까? - 내년 통화정책 최대 화두
미국의 디스인플레이션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보다 먼저 금리를 내린다면 고민은 없다. 국내 물가 움직임을 충분히 확인하고 움직일 수 있는 정책 여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데 우리나라가 먼저 물가 목표 2%에 수렴하면서 경기 둔화로 금리 인하 필요성이 커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냐’라는 질문에 답을 먼저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후자가 가능성이 더 큰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은 내부에서도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국내 물가만 보고 결정할 수 있다는 측과 먼저 금리를 내릴 경우 환율 불안과 외국인 자금 유출이 나타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측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가 미국 등 주요국 통화정책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지는 경제학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다.
특히 한은의 금리 동결 기조에도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등에 따라 국채금리가 크게 등락하는 등 한미 금리 동조화가 나타나면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을 시장에 맡기면 나머지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리가 미국을 따라가니깐 제약이 생긴 것”이라며 “국내 상황이 나빠지는데 시장금리가 미국을 따라다니면 한은이 자체적으로 금리를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미국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최근 국내 국채금리가 오르내린 것은 미국 국채금리 영향이 분명 있겠으나 그 바탕에는 국내 물가와 성장에 대한 기대가 바뀐 영향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오르고 한은 금통위가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는 등 국내 경제 여건에 대한 기대 변화로 국채금리가 올랐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의견에 따르면 국내 물가가 미국보다 먼저 안정될 경우 충분히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물가가 안정됐다는 자체가 환율 압력이 낮다는 의미인 만큼 대외 여건을 덜 신경 써도 된다는 뜻”이라며 “이때 경상수지가 중요한데 경상수지가 적자이거나 소폭 흑자에 그칠 경우엔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지는 것과 한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한미 금리 차가 확대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고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데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린다면 국내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돼 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금리를 먼저 내리길 기다렸다가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으로 가계부채 얼마나 고려해야 할까? - 갈라진 금통위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기로 했어도 가계부채라는 주요 변수가 남아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경우 금리가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주택 구매와 가계대출 증가가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 영향으로 대출이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가계대출이 통화정책의 주요 변수가 된 것이다. 다만 이는 향후 부동산 경기 흐름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최근 금통위원 간 미묘한 입장 차이가 관찰된다. 가계부채를 최대 변수로 주시하고 있는 금통위원이 있는 반면 이보다는 다른 요인을 더 중시하는 금통위원이 있는 상황이다. 여차하면 금리를 올려서 부채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가계부채를 장기간에 걸쳐서 조정되길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는 셈이다.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가계와 기업대출의 꾸준한 증가 규모는 통화신용정책이 의도한 만큼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금통위원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높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축소를 위한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라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냈다.
반면 한 금통위원은 “누증된 가계부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가계부채 총량보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가계부채 위험에 초점을 맞춰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가계부채의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종합적인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불확실성을 고려해 향후 금리 인상과 인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해당 금통위원은 가계부채에 대해선 금리보단 다른 수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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