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은 본래 설렘을 안고 향하는 목적지여야 한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뒤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고, 표를 구하는 순간부터 이미 전쟁과 같은 과정이 시작된다. 예매 창이 열리자마자 사라지는 좌석, 정가의 몇 배가 붙은 가격표와 함께 암시장에서 수많은 티켓이 버젓이 거래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암표는 단순한 불법 거래가 아니라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회를 빼앗는 존재다. 경기장의 좌석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특정 집단의 이익에 가로막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인기 구단 간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날이나 유명 시구자가 예고되는 날이면 티켓 가격이 원가의 몇십 배까지 치솟으며, 경기보다 시구가 더 큰 이슈가 되는 주객전도의 풍경까지 벌어진다. KBO리그 관중 수가 천만을 돌파하며 새로운 도약을 맞이한 지금, 암표는 사소한 불편을 넘어 직관 문화를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가 됐다. 소중한 경기장의 좌석이 터무니없이 비싼 숫자로만 거래되는 현실, 그 안에 담긴 씁쓸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9월 27일 작성)
에디터 양은빈 사진 삼성 라이온즈

#배보다 큰 배꼽
정가로 판매되는 표들이 매진된 뒤, 시장에는 새로운 가격표가 붙은 좌석이 등장한다. 팬들의 함성과 열기로 가득해야 할 관중석은 어느새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 돼 버렸다. 5만 원짜리 표의 가격은 30만 원까지 치솟고, 시합 자체보다 좌석 가격의 변화가 더 큰 화제가 되곤 한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기 전부터 일부 경기를 대상으로 벌어지던 ‘암표 독점’ 문제는 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현재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공식 예매 창구가 열리자마자 명당이라 불리는 일부 좌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곧장 중고 거래 사이트나 암시장에서 버젓이 다시 등장한다. 이때 다량의 아이디와 불법 예매 프로그램이 동원된 흔적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결과적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현장에서 직관을 즐기려는 팬들이다. 정직하게 자리를 구하려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응원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자리엔 누군가의 불만이 뒤섞이기도 한다.
야구장이 팬에게 주는 즐거움은 단지 경기력에만 있지 않다. 가족과 함께했다는 기억, 친구와 나누는 응원의 순간이 모두 경기장 문화의 일부다. 그러나 암표가 만들어 내는 현실은 이 소중한 경험을 특정 집단의 이익으로 환원시킨다. 경기장은 여전히 환호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뒷면에서는 암표상과 매크로의 벽에 막혀 웃돈을 얹어 줘야만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계산적인 풍경이 자리한다. 정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금액을 책정하고, 간절히 시합 관람을 원하는 팬들의 마음을 악용해 불법적인 이익을 얻는 암표 문제.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왜 이리 당당해?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수많은 야구팬을 들끓게 했다. 티켓을 수십 장 확보해 ‘되팔기’를 진행한 판매자가 자신이 얻은 이익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며 ‘시장의 논리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과는커녕 죄책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팬들에게는 애써 구하려다 놓친 좌석이었고,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던 표였지만 그에게는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자 현금화된 숫자에 불과했다.
이러한 태도는 암표 구조의 민낯을 드러낸다. 암표상에게 좌석은 추억의 공간이 아니다. 선수의 플레이, 구단의 역사, 하나의 팀을 응원하는 팬들과 함께하는 순간 등의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티켓은 오로지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들의 목적은 최대한의 차익을 남기는 데 있다. 팬이 느끼는 설렘과 열정은 그들에게 단 한 줄의 가치로도 기록되지 않는다.
팬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단순히 푯값이 비싸졌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팬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누군가의 이익 계산서 속 항목으로 치환되는 순간, 경기장은 더는 축제의 공간일 수 없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허탈감과 박탈감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정당하게 즐길 권리가 암표상의 탐욕에 의해 빼앗겼다는 사실이 팬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상하게 한다.
사실 부정한 방식을 사용했다는 걸 자랑하는 태도는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암표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아직도 공고히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단과 리그의 시스템은 아직 허점을 안고 있고, 그 틈을 파고드는 이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팬의 목소리가 분노로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하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열정이 장사 수완의 도구로 전락하는 풍경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혜택인가
멤버십 가입과 시즌권 구매 등으로 얻을 수 있는 선예매 혜택이 암표 판매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역시 씁쓸한 현실이다. 특히 프로야구 티켓팅이 치열해지던 시기, 멤버십은 팬들에게 ‘안전망’의 역할을 해왔다. 인기 구단의 경기일수록 정식 예매가 열리면 몇 분 만에 매진되는 게 일상이 됐고, 선예매는 팬들에게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증 수표였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팬들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구단으로서도 멤버십은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는 장치였다.
문제는 이 제도가 팬들의 편의를 넘어 암표 시장의 새로운 통로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는 선예매로 확보한 표를 직접 쓰지 않고 비싼 값에 되팔며 수익을 올린다. 팬을 보호하기 위한 혜택이 오히려 팬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 버린 역설적인 상황. 정작 현장에서 팀을 응원하고 싶은 팬들은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다. 일반 예매가 열리기 전에 좌석이 이미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더 뼈아픈 건, 이 과정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멤버십으로 확보한 표가 버젓이 중고 거래 시장에 올라오고, 정가의 몇 배가 붙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응원권’이라 불려야 할 티켓이 어느새 돈벌이 수단으로 둔갑한 셈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의 몫이다. 경기장의 열기를 함께 느끼고 싶었던 라이트 팬들은 자리를 빼앗기고, 응원 문화의 다양성도 점차 줄어든다. 구단이 만들고자 했던 ‘더 가까운 접점’은 많은 돈을 투자한 일부 팬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되고, 팬과 구단 사이의 신뢰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구단들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1인당 구매 가능한 표의 매수를 줄이거나, 예매 시스템을 개선해 암표 거래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건 정직하게 응원하려는 팬들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고자 하는 경우조차 불편을 겪게 되고, 여러 계정을 동원하는 되팔이 수법은 여전히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팬들을 위한 혜택조차 표 되팔이에 악용되는 건 구단뿐 아니라 리그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심각한 문제다.
#팬을 위한, 팬에 의한
결국, 암표와의 싸움은 단순히 소수의 뻔뻔한 판매자를 잡아내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암표 구매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인의 탐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크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멤버십 제도의 아이러니, 좌석 수급의 불균형, 거기에 예매 시스템까지 허점이 맞물리며 현재의 왜곡된 시장을 만들었다. 팬은 응원하려는 마음만으로는 같은 선상에 설 수조차 없고, 거래 장터에서 웃돈이 얹어진 채 등장하는 티켓에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야구장을 향한 설렘이 계산기의 숫자로 대체되는 순간, 팬들은 야구장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이대로라면 피해는 계속 팬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소수가 얻는 이익이 야구장의 좌석들을 잠식하는 동안, 구단과 리그가 쌓아 올린 신뢰는 흔들리게 된다. 팬의 발걸음이 줄어든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더구나 암표가 일상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자리 잡는다면, ‘야구장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도 붕괴될 것이다. 천만 관중 시대라고 자부하는 KBO리그도, 팬이 떠나기 시작하면 그 영광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이제는 구단과 KBO가 더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때다. 단순히 단속을 강화하거나 1인당 예매할 수 있는 표의 매수를 줄이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구단은 멤버십 혜택을 재조정하고, 티켓 분배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추가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좌석 구역은 멤버십과 별개로 일반 예매로만 판매하는 방식이나, 통상적인 양도라고 인정할 수 없는 되팔이 거래가 확인될 경우 해당 계정에 예매 제한 조치를 가하는 등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팬들이 다시금 ‘공정하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암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다.
야구장의 좌석은 단순한 숫자놀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곳에는 응원과 추억, 그리고 팬들의 열정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기장에서는 그 열정이 돈의 논리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암표와의 전쟁은 부정 거래를 단속하기 위한 단기적인 문제에서 끝나선 안 된다. 팬의 권리를 되찾고, 누구나 정당하게 직관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싸움이 돼야 한다. 구단과 리그가 그 길을 지켜 낼 때 야구장은 다시 팬들의 공간이 될 것이고,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야구 부흥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5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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