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데 반짝였고, 깨끗한데 어두워진 고향 마산 이야기

이서후 기자 2025. 12. 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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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찾은 소설가 (하) 김기창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 <마산>
과거와 달라진 바다에서 영감
지역연구자·시인 만나 얼개 짜

각 시대 상징 인물 4명 중심
도시 속 우울 서사로 그려내
“열린 도시로 바뀌길 바라”

우연히도 최근 묵직한 소설가 두 명이 마산을 찾았다.

마산은 항구와 공장이 공존하며 번영했고, 번영 속에서 노동과 이주, 가난과 연대의 기억을 품었던 도시였다. 그러나 창원시 통합 이후 마산은 행정구역 안의 한 지역으로 정리되며, 자기 이야기를 잃었다. 이런 시점에 신경숙과 김기창이라는 두 소설가가 마산을 찾은 건 우연이라 하기엔 의미심장하다.

10월 30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온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은 열여섯 살 소녀가 고향과 가족을 떠나 맞닥뜨린 도시의 삶이 담겨 있다. 산업화 시대 경제성장 주인공이었지만 주변부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던 '여공'이라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외딴방은 개인의 기억이자 동시에 도시 변두리에 놓였던 수많은 노동자의 방이기도 하다. 마산 역시 국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외딴방'들을 품고 있던 장소였다.

11월 제56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기창의 소설 <마산>은 아예 마산이란 도시 자체가 주인공이다. 각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마산의 골목과 항구를 누비며 축적된 시간의 결을 어루만진다. 소설에서 마산은 과거가 아니라,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로 호출되며, 사라졌다고 여겨진 이름과 장소가 문장을 통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마산은 과거형이 아니라, 다시 말해져야 할 이야기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편소설 <마산>으로 제56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기창이 마산 산호동 오랜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우리는 마산 앞바다 '똥물' 이야기를 하며 같이 웃었다.

"그때 마산에서 학교 다녔으면, 돝섬에 소풍 자주 갔잖아요. 배 타고 가면서 바닷물이 튀는 걸 안 맞으려고 피하고 했던 기억이 선명해요. 진짜 바닷물 더러웠죠."

지난주 경남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마산을 찾은 소설가 김기창(47)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창원NC파크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마산이 고향인 그는 지난달 장편소설 <마산>(민음사)으로 제56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 마산에서 초중고를 나왔기에 마산과 관련해 같이 이야기할 게 많았다. 둘 다 집과 학교만 오가던 성격이라 마산을 휘젓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옛 창동 풍경처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때 마산 최고 번화가였던 창동에는 그렇게 자주 가진 않았어요. 어머니랑 어릴 때 부림시장에 간 기억은 있어요. 창동은 고3 때 제대로 알게 됐죠. 영화 보러 주로 연흥극장에 갔는데, 주변으로 극장이 몇 곳 더 있었잖아요."

더러운데 반짝이는, 맑은데 어두운

모나코, 방콕 등 외국 도시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 김기창이 이번에는 고향인 마산이라는 도시를 소재로 한 계기는 마산 앞바다였다. 마흔 무렵 그가 마산에서 다시 살아볼까 하고 마산에서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매일 해안도로를 따라서 걸으면서 옛날보다 바다가 정말 맑아진 걸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마치 마산의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바닷물은 더러웠는데, 바다는 환했거든요. 왜냐하면 밤에도 수출자유지역 공장이 항상 돌아가고 있고, 상선들도 돌아다녔으니까요. 어릴 때는 어시장 앞 등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진짜 많고, 상가도 불빛이 반짝거렸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활기가 있었어요. 다시 마산에 와서 보니 마산 앞바다가 굉장히 깨끗해졌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너무 어두운 거예요. 인적은 줄어들고 밤에 불빛도 없는, 그래서 많이 쓸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더럽지만 밝은 바다, 맑지만 어두운 바다. 이 이상한 대비는 그에게 마산을 소재로 소설을 써보자는 마음을 품도록 했다.

이렇게 쓴 소설에는 각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4명 나온다. 1974년의 동미는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 공장에서 각성제 '타이밍'을 먹으며 일하는 노동자다. 1999년의 준구는 IMF 외환위기 여파로 마산에 홀로 남아 살아간다. 2021년의 은재와 태웅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찬수는 동미의 이복동생이자 창동에서 24년째 엘피바(LP bar) '월영'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장편소설 <마산>으로 제56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기창이 마산 산호동 주택가 골목에 서 있다. /이서후 기자

소설 구성에 도움을 준 이들

1999년의 준구는 실제 그가 경험한 시대의 인물이니 그렇다 치고, 시대가 다른 인물과 사건을 소설로 구성하려면 따로 취재를 해야했다. 김기창은 마산에서 우연히 좋은 분을 많이 만나 자료 조사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절약됐다고 했다.

"친구 중에 경남대 앞에서 바를 운영했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창동에 진짜 오래된 바가 하나 있는데, 그 사장님들 여기 토박이니 한 번 찾아가 봐라 그러더라고요. 그게 창동에 있는 해거름이었어요. 찾아가니 대표님 두 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그분들 덕분에 박영주 선생님과 우무석 시인을 소개받아 만날 수 있었죠."

박영주 전 경남대학교 박물관 비상임위원은 지역사 연구자고, 우무석 시인은 3.15의거와 부마항쟁을 생생한 목소리로 담은 시집을 낸 이다. 특히 박 연구자로부터 실질적으로 소설의 얼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제가 이렇게 부탁을 드렸거든요. 근대부터 마산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한 열 몇 개 정도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느냐고요. 그랬더니 지도를 펼치시고 차곡차곡 설명해 주시며 열심히 한 번 해보라고 하셨어요."

마산이라는 도시를 탐구한 허정도 건축사의 블로그 <허정도 건축사 도시 이야기>도 많이 참고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2부 제목이 '술과 꽃의 도시'인데, 이는 허 건축사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이다.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방법
장편소설 <마산>으로 제56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기창이 마산 산호동 주택가 골목에 서 있다. /이서후 기자

그의 소설을 읽고 더러 마산을 너무 어둡게 그린 거 아니냐, 우울하게 만든 게 아니냐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주로 마산을 잘 알거나 마산이 고향인 이들이 그런 말을 한다. 이에 김기창은 '비극은 슬픔을 통해 새로움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실제로 너무 우울하게만 그리면, 지금 마산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 분들한테 누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염려를 하기는 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뭔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있고, 그것을 서사로 드러내면 그걸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두움을 그리는 건 '어두워져라'는 저주가 아니라, 이런 부분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겼다고 이해하면 좋겠어요."

카페를 나온 우리는 산호동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상권을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가면 낡은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다.

마산이라는 도시 역시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김기창의 소설 속 인물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마산으로 돌아온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삶을 이어가는 선택은, 이 도시가 여전히 품고 있는 어떤 가능성을 말해준다. 김기창은 마산의 미래가 결국 '바깥으로 열려 있는 도시'로서의 면모를 되찾는데 달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 친구 중에도 부산에 살다가 마산으로 다시 돌아와서 자리 잡으면서 살아가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어쩌다 마산에 왔을 때 창동에 가보면 이주노동자를 많이 보게 돼요. 예전에는 남자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가족 단위로 돌아다니는 걸 자주 보게 돼요. 마산의 전성기가 과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 '열린 도시'에서 비롯한 것처럼 이렇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마산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서후 기자